기욤 니클루 감독의 '베일을 쓴 소녀'(La religieuse, 2013년)를 보면 가장 먼저 영상이 정갈하다는 느낌이 든다.

투명한 수채화처럼 깨끗한 색감과 손에 잡힐 듯한 뽀얀 빛, 균형이 잘 잡힌 가운데 적절하게 공간을 채우는 인물과 소품들은 잘 그린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여기에 폐쇄적이며 은밀하기까지 한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수녀들 만의 내밀한 이야기는 충분히 보는 사람의 호기심을 돋울 만 하다.

그래서 그랬을까, 드니 디드로가 쓴 원작 소설 '수녀'는 오랜 세월 금서였다.

 

물론 거기에는 수도원에서 금기시된 수녀들의 부도덕한 행동이 18세기 시대 정신에 어긋난다는 판단과 더불어 종교에 대한 반감, 나아가서는 신권에 대한 도전을 불러 올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깔려 있다.

그런데 비단 이런 문제를 18세기 만의 문제로 볼 수는 없다.

 

작가가 원작을 집필하기 시작한 지 200년이 지난 1966년 자크 리베트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으나 이 또한 2년간 상영금지됐다.

때로는 그렇게 정치적, 종교적, 도덕적 잣대로 재단됐던 이 작품을 21세기 들어 온전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어찌보면 행운이다.

 

기욤 감독은 다시 만든 이 작품을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게 재현하면서 수녀들의 애정행각과 헤어 누드 등을 과감하게 보여줬다.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이 장면을 거르지 않고 고스란히 담았다.

 

내용은 부모 때문에 수도원에 들어가 원치 않은 수녀가 된 처자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수도원을 벗어나고 싶지만 간통을 통해 딸을 낳은 어머니의 죄를 속죄하는 마음에서 묵묵히 참고 견딘다.

 

이는 곧 천주교,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원죄 의식과도 연결된다.

따라서 주인공이 수도원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원죄 의식이 속박하는 삶에서 탈출을 의미한다.

 

결국 작가나 감독이 강조하는 것은  숨막힐 듯한 체제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인간의 강렬한 자유의지다.

이를 연약해 보이고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녀를 통해 표현한 점이 아이러니다.

 

어찌보면 이런 주인공의 모습은 가장 정치적이지 않은 시골처자가 가장 강력한 정치 행위를 달성한 잔다르크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다만 극 중 주인공은 다른 남성이나 신부 등 권력자의 힘을 빌어야 하는 점이 한계다.

 

단아하면서도 정갈한 영상 속에 파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마치 가시를 품은 장미 같다.

그만큼 아름다우면서 힘이 있다.

 

더불어 주연 여배우인 폴린 에티엔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약간 사시인 그의 눈은 아련한 슬픔과 더불어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1080p 풀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은은하고 부드럽다.

칼끝처럼 명료한 윤곽선은 아니지만 디테일이 좋고 공간을 포근하게 만드는 빛이 잘 살아 있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부드럽고 편안한 소리를 들려 준다.

예고편 외에 부록은 따로 없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주인공을 연기한 폴린 에티엔은 1989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연극배우 생활을 했다. 그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주인공을 연기하기 위해 따로 성악을 배웠다.

'백과전서'파로 유명한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인 드니 디드로가 쓴 소설 '수녀'가 원작이다. 작가는 이 책을 1760년부터 집필했다. 그러나 출판은 그가 죽은 뒤인 1796년에 이뤄졌다.

책은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18세기에 금기시된 수도원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루는 바람에 오래도록 금서로 묶였다. 작가도 종교비판적인 내용을 우려해 쉽게 출판하지 못했다.

은은한 촛불 조명이 잘 살아 있는 영상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배리 린든'을 연상케 한다.

숨 막힐 듯한 복장 만큼이나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수녀원장 역할은 루이즈 보르고앙이 연기했다. 180cm의 큰 키를 자랑하는 그는 대학시절부터 사진모델로 활동했고 TV 쇼 진행 및 기상캐스터를 하기도 했다.

그다지 많은 소품과 인물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공간을 가득 메우는 영상을 보여준다. 원작자인 디드로는 부유하며 엄격한 카톨릭 신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검을 만드는 장인이었다.

파격적인 애정 행각을 하는 또다른 수녀원장은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

디드로가 매우 아꼈던 여동생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수도원에 들어가 수녀가 됐으나 28세때 정신질환으로 숨졌다. 디드로 역시 16세때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수도사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 갔으나 뛰쳐 나왔다.

일광이 아름다운 이 장면도 '배리 린든'의 식사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촬영은 이브 케이프가 했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베일을 쓴 소녀
베일을 쓴 소녀 (500장 넘버링 풀슬립 한정판) : 블루레이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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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울프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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