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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심플(블루레이)

울프팩 2022. 7. 4. 00:08

특이한 소재의 영화를 잘 만드는 코엔 형제는 출발부터 독특했다.

조엘(Joel Coen)과 에단 코엔(Ethan Coen) 형제의 장편 데뷔작인 '블러드 심플'(Blood Simple, 1984년)은 인간의 욕망과 오해가 빚는 핏빛 드라마다.

 

아내 애비(프랜시스 맥도먼드 Frances McDormand)가 부정을 저지른다고 의심한 남편 마티(댄 헤다야 Dan Hedaya)는 사립탐정 비저(M. 에멧 월쉬 M. Emmet Walsh)를 고용해 뒤를 캔다.

이 과정에서 탐정 비저는 술집을 운영하는 남편 마티의 돈을 탐내 가짜 증거로 그를 위험에 빠트리고 돈을 가로챈다.

 

아내 애비와 불륜 관계인 술집 종업원 레이(존 게츠 John Getz)는 마티를 위험에 빠트린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애비로 오해한다.

그 바람에 종업원 레이는 연인인 애비를 감싸기 위해 사건을 일으키고, 탐정 비저는 이를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해 이들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만큼 영화는 네 명의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오해하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얼핏 보면 막장 드라마 같지만 불안한 사람의 심리가 빚어내는 갈등과 공포의 드라마를 긴장감 있게 잘 묘사했다.

 

특히 탐정 비저가 연인을 노리고 침입한 과정에서 애비가 벌이는 사투 장면은 극적 긴장감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서로에 대한 오해의 이면에는 사랑과 질투, 탐욕 등 인간의 감출 수 없는 욕심이 숨어 있다.

 

본능 같은 욕심은 사건을 일으키는 기제가 됐고 인물마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이를 해소하는 과정이 서로를 예기치 못한 비극으로 몰아넣는 덫으로 작용한다.

코엔 형제는 어처구니없게 꼬이는 바람에 황당한 상황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웃기면서도 슬픈 블랙 코미디처럼 만들었다.

 

이를 위해 코엔 형제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 같은 기법들을 사용했다.

비극적 사건을 암시하는 과정에 여러 번 등장하는 한 줄에 꿰인 네 마리의 생선은 벗어날 수 없는 욕망의 굴레에 얽힌 네 명의 등장인물처럼 보여 인상적이다.

 

또 쓰러진 사람의 등 뒤로 둔기를 끌며 다가오는 남자의 발을 잡은 장면이나 갈 곳을 잃은 듯 넓은 벌판 한 복판에 서 있는 자동차 등은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심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만큼 코엔 형제는 얽히고설킨 사람의 욕심이 복잡하게 꼬이는 사건을 기발한 드라마로 만드는데 일가견 있다.

 

이 작품은 코엔 형제가 국내에 알려지기 전이어서 극장 개봉을 하지 않고 '분노의 저격자'라는 제목의 비디오테이프로만 처음 선보였다.

이를 2016년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통해 블루레이 타이틀로 다시 선보였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맡은 포에버 영이라는 회사의 케네스 로링은 음성해설에서 초기 판본을 감독과 상의하지 않고 임의로 편집한 제작자에 대해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 바람에 등장인물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잘려 나갔다는 지적이다.

 

1080p 풀 HD의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은 편은 아니다.

입자가 거칠고 지글거리며 일부 장면의 디테일이 뭉개진다.

 

음향은 DTS HD MA 2.0 채널을 지원한다.

부록으로 케네스 로링의 음성해설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그런데 로링의 음성해설은 함량 미달이다.

제작 관련 이야기보다 로링의 개인적 감정과 로봇 개를 출연시켰고 배우들의 땀을 가짜로 만들었다는 둥 웃기지도 않은 쓸데없는 농담을 장황하게 늘어놓아 듣다 보면 짜증이 난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초반 빗속을 달리는 자동차 장면을 차 안에서 찍은 것은 실제 운전한 것이 아니라 정지된 차를 부드럽게 흔들어 달리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뒤 촬영.
이 작품은 제1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코엔 형제는 유명 추리소설가 더쉴 해미트의 하드보일드 추리소설 '붉은 수확'에서 제목을 따왔다. 폭력적 상황에 오랫동안 억눌린 사람들의 혼란과 공포를 묘사한 용어다.
탐정 비저는 1966년형 폭스바겐 비틀을 몰고 나타난다.
이 작품은 베리 소넨필드의 촬영감독 데뷔작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코엔 형제의 '아리조나 유괴사건' '밀러스 크로싱'을 연달아 찍었고 1991년 '아담스 패밀리'를 연출하며 감독 데뷔했다. '미저리'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때'도 그가 촬영했다.
줄에 꿰인 네 마리의 생선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카터 버웰이 맡은 음악도 좋다. 카터 버웰은 이 작품으로 영화 음악을 처음 작업했으며 이후 '브레이킹 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벨벳 골드마인' '위대한 레보스키' '파고' 등 여러 영화의 음악을 맡았다.
조엘 코엔은 뉴욕대에서 영화를, 에단 코엔은 프린스턴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형제가 각본을 직접 쓰고 연출, 편집도 했다. 편집자로 알려진 로드릭 제인스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형제가 내세운 가공 인물이다.
촬영은 8주 동안 미국의 텍사스 오스틴과 휴토에서 했다. 레이의 자동차는 1966년형 뷰익 스카이락이다.
여주인공 애비를 연기한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도 이 영화로 데뷔했다. 원래 애비 역할은 홀리 헌터가 할 예정이었으나 뉴욕 연극 출연과 겹쳐 무산됐다. 헌터는 대신 룸메이트였던 맥도먼드에게 이 작품의 오디션을 보라고 권유했다. 헌터는 극 중 자동응답기 목소리를 녹음했다.
조엘 코엔은 이 작품 촬영 후 1984년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재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