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예모 감독의 '연인'(2004년)은 무협물의 탈을 쓴 애정물이다.
비록 외형은 칼과 권법이 난무하는 무술영화지만 내면은 등장인물들의 얽히고 설킨 애정비사다.
그런 점에서 '연인'은 그의 전작인 '영웅'과 짝을 이루는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무협영화의 틀을 지녔지만 무술은 주제인 협(俠)과 사랑을 부각시키기 위한 소도구일뿐 본질은 아니다.
특히 '연인'의 경우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하다.
'영웅'은 무술의 대가인 이연걸이 나와 실감나는 무술 실력을 과시하지만 '연인'은 와이어 액션에 의존하는 판타지에 가까운 무술을 선보인다.
이처럼 장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유달리 사랑에 집착하다보니 더러 '연인'을 무술은 없고 로맨스만 남은 애정극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 같은 비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장 감독의 기획의도가 무협의 형태를 띤 애정극이었기 때문이다.
작품의 묘미는 등장인물들의 복잡하게 얽힌 관계만큼 어지러운 의중을 짚어내는 것.
장 감독은 등장인물들이 A 아니면 B를 선택해야하는 갈등 국면을 곳곳에 마련해 놓고 관객들을 고도의 심리전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런 점들을 보면 이 작품은 무협영화이기 이전에 애정극이면서 스릴러의 구조를 지녔다.
아울러 눈을 어지럽게 만드는 현란한 색감과 수려한 풍경, 장면에 잘 어울리는 음악 등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내용과 비평이 어찌됐든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드는 아름다운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16 대 9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의 화질은 아름다운 영상을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다.
상영용 프린트를 뜨기 위한 듀프 네거티브나 상영용 프린트로 텔레시네를 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만큼 화질이 떨어진다.
가장 아쉬운 것은 샤프니스.
클로즈업은 그런대로 볼만하지만 중경이나 원경으로 넘어가면 여지없이 샤프니스가 떨어지며 인물의 이목구비를 뚜렷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반면 DTS를 지원하는 음향은 수준급이다.
소리를 따라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서라운드 효과가 탁월하다.
사운드 디자인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깔끔하지 못한 영상이 더욱 아쉽게 다가온다.
<파워 DVD 캡처샷>
파스텔톤의 은은한 색감이 일품인 화려한 의상은 '영웅'의 의상을 담당한 에미 와다의 작품이다.
맹인인 장쯔이가 유덕화가 뿌린 콩이 맞은 북을 소리로 찾아 정확하게 천을 휘날려 두드리는 장면은 감탄이 절로 나올만큼 사운드 디자인이 아름답다.
'영웅'과 달리 이 작품은 대부분 와이어 액션에 의존한다.
장예모 감독의 앵글은 대륙적인 호방함이 느껴진다. 심지어 투 샷 조차도 양 끝단을 최대한 활용해 여유있는 그림을 만든다.
장쯔이의 설정이 맹인이다보니 촉감에 의지해 금성무와 나누는 사랑의 몸짓이 더없이 육감적이다.
야생화가 가득 핀 초원의 결투는 우크라이나에서 촬영. 원래 장 감독은 현지 농부를 시켜 꽃씨를 파종해 키운 뒤 촬영할 계획이었으나 시일에 쫓겨 그러지 못하고 흰 꽃이 핀 벌판을 우연히 발견해 여기에 다른 꽃을 군데군데 심어놓고 촬영했다.
'영웅'처럼 서커스에 가까운 무술을 구현한 인물은 정소동 무술감독.
'와호장룡'을 연상케하는 대나무숲 결투.
유덕화가 몸담고 있는 비밀집단인 비도문의 여두목은 원래 매염방이 캐스팅됐다. 그러나 유방암때문에 그가 합류하지 못하고 2003년 12월에 사망하자 장 감독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해당 배역에 다른 배우를 기용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영화에서는 여두목이 삿갓을 깊게 눌러쓴채 한 번도 얼굴을 내놓지 않는다.
와이드 렌즈를 사용, 수려한 풍경을 더 할 수 없이 아름답게 잡아냈다.
장 감독은 이 작품의 대본을 쓴 후 지인 5명에게 보여줬다. 1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혹평을 했다. 이유는 무협물보다 애정물에 가깝다는 것. 그럼에도 장 감독이 제작을 강행한 것을 보면 사랑이라는 주제가 그에게는 넘어야 할 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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