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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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블루레이)

울프팩 2014. 1. 4. 12:14

1952년에 에드나 퍼버가 쓴 소설 '자이언트'는 당시 미국 남부사람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남부사람들을 양키의 시각으로 거칠고 무식하며 인종차별적으로 묘사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정작 이를 눈여겨 본 사람은 영화감독 조지 스티븐스였다.
그는 이 소설에 약간의 각색을 거쳐 3시간이 넘는 대작영화 '자이언트'(Giant, 1956년)를 만들었다.

소설과 달리 영화는 대성공이었고, 남부사람들도 좋아했다.
우려와 달리 남부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는 남부 사람들 스스로 인종차별을 극복하는 모습을 통해 당시 미국에 만연했던 인종 갈등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물론 영화가 절대적 기여를 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로서 이런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내 반향을 불러 일으킨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백인의 온정주의에 기대어 인종차별의 벽을 뛰어넘으려는 한계가 있다.
또한 백인들은 토지와 부를 독점한데 비해 그렇지 못한 멕시칸과 흑인 등 유색인종들이 경제활동의 밑바닥을 담당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시대상황과 경제적 한계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이 같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미국에서 대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베네딕트 가문을 둘러싼 드라마틱한 남부의 변화를 잘 다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된 록 허드슨,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리고 영원한 청춘스타 제임스 딘 등 걸출한 스타들의 빼어난 연기가 제대로 빛을 발했다.

이들은 23~29세 등 아주 젊은 나이에 60, 70대 노인 역할까지 훌륭하게 연기했다.
수십 세 이상을 뛰어넘어야 하는 연기여서 어색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이 작품은 제임스 딘의 유작이다.
자신의 출연 분량을 모두 찍은 제임스 딘은 전체 촬영 종료를 앞둔 시점에서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떴다.

그래서 더더욱 이 작품의 의미가 크다.
제임스 딘의 출연작 중 수줍으면서도 반항적인 그의 이미지가 과장되지 않고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제임스 딘 출연작 중 가장 훌륭하다.
더불어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안정된 연출도 돋보이는데, 그는 이 작품으로 제 29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1080p 1.66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실망스럽다.
워낙 오래된 작품이어서 원본의 한계 때문인 지, 전체적으로 지글거림이 두드러지고 윤곽선이 두터운 편이며 링잉도 살짝 나타난다.

음향은 DTS-HD 2.0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감독의 아들과 영화평론가, 각본가 등이 함께 한 음성해설, 감독 소개 다큐멘터리 등이 있는데 다큐멘터리에만 한글 자막을 지원한다.
특히 블루레이 타이틀이 문제인 점은 뒷표지에 부록을 잔뜩 써놓았지만 정작 들어 있는 것은 감독 소개 다큐멘터리 한 편 뿐이다.

나머지는 표지에 소개만 돼 있을 뿐 정작 블루레이 부록에 들어있지 않아 사실상 소비자를 솎인 셈이다.
문제의 부록들은 SE 버전으로 나온 DVD에 모두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DVD SE 버전은 음성해설까지도 한글 자막을 지원한다.
여의치 않았으면 DVD 부록 디스크라도 합본으로 넣어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 못해 여러모로 아쉬운 블루레이 타이틀이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제작에 3년 이상 걸렸다. 투자비가 많이 들 것이라는 이유로 다들 제작을 꺼려, 조지 스티븐스 감독이 나중에 흥행수익에서 보상을 받는 조건으로 제작기간 동안 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일했다. 스티븐스 감독은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아이젠하워 사령부에서 종군기록영화를 찍었다. 유대인 수용소의 참상을 기록한 대부분의 필름은 그가 찍었다.
잘생긴 꽃미남 록 허드슨이 주인공 베네딕트를 연기. 이 역할은 윌리엄 홀든, 존 웨인, 클라크 게이블이 탐을 냈으나 워너브라더스 사장인 잭 워너가 모두 나이가 많다고 거절했다. 록 허드슨은 당시 29세였다.
미모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여주인공 베네딕트 부인을 연기. 처음엔 오드리 헵번과 그레이스 켈리가 거론됐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무산됐다. 테일러는 당시 23세였다.
황량한 텍사스의 느낌을 잘 살린 영상은 텍사스 마르파에서 촬영. 베네딕트의 저택은 마르파에서 50마일 떨어진 워스 에반스 목장에 지은 오픈세트였다. 이곳에서 외관 장면만 찍고 실내는 스튜디오에서 촬영.
석유 갑부가 되는 또다른 주인공 제트 링크를 연기한 제임스 딘. 스티븐스 감독은 이 역할에 영화 '셰인'의 주인공 알란 랏드를 원했으나 감독의 부인이 반대했다. 로버트 미첨과 몽고메리 클리프트도 이 역할 후보로 고려됐다. 당시 딘은 23세였다.
어느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을 딴 마르파는 소 목장을 주업으로 하는 주민 4,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였다. 스티븐스 감독은 주민 150명을 엑스트라로 출연시키며 촬영에 적극 협조를 받았다.
딘이 모는 자동차는 듀센버그 형제가 만든 1924년형 듀센버그. 영화는 소설과 여러 부분이 다르다. 소설은 텍사스에서 시작하나, 영화는 메릴랜드에서 찍은 동부를 먼저 보여준 뒤 텍사스로 건너온다. 광활한 텍사스의 자연으로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다. 관객 뿐 아니라 배우들도 텍사스를 보고 놀랐다.
텍사스의 광활한 풍광과 카우보이들의 세계를 다룬 영상이 볼 만 하다. 또 당시로서는 드물게 미국의 뿌리깊은 인종차별 문제를 잘 다뤘다.
감독이 당시 유행하던 시네마스코프로 찍지 않은 이유는 이 영화가 수평보다 높이가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인 스티븐스 감독은 모든 각도에서 촬영해 필름을 아주 많이 사용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소를 14시간 찍은 적도 있다. 편집도 감독이 직접 했는데, 이 작품의 경우 편집에 1년이 걸렸다.
이 영화에선 제임스 딘이 밧줄을 돌리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이를 위해 딘은 밥 힌켈이라는 텍사스 사람에게 밧줄돌리기를 배워 촬영장 한쪽에서 꾸준히 연습했다.
이 영화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여권신장 영화로 꼽히기도 한다. 정치는 남자들의 전유물로만 여긴 남부사람들의 생각을 꼬집는 테일러의 대사가 나온다. 이 부분은 원작 소설에 없는 내용이다.
당시는 엄격한 검열 때문에 애정 표현이 제한적이어서, 정사 장면을 이처럼 침대 위에 흐트러진 모자와 부츠 등으로 대신 표현했다.
딘이 연기한 제트 링크는 실존 인물 글렌 맥카시를 모델로 했다. 아일랜드 이민자인 휴스턴의 글렌 맥카시는 가난하게 자라 석유로 거부가 된 뒤 1949년 2,100만달러를 들여 텍사스에 샴록호텔을 지었다. 덕분에 맥카시는 타임지 표지에도 등장했고, 이를 본 에드나 퍼버가 그의 얘기를 배경으로 원작 소설을 썼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10대 딸로 나온 캐롤 베이커는 당시 테일러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이 영화로 데뷔한 그는 당시 결혼 4개월된 신혼이었다. 딸이 미인대회 여왕으로 뽑히는 내용은 원작소설에 없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큰아들로 나온 데니스 호퍼. 그는 테일러보다 네 살 어렸다. 원작소설에서 테일러가 연기한 베네딕트 부인은 아주 매력없는 여인으로 나온다. 스티븐스 감독은 '젊은이의 양지'에서 같이 일한 테일러를 캐스팅했다.
멕시칸 청년으로 나온 살 미네오. 그와 데니스 호퍼, 제임스 딘은 모두 '이유없는 반항'에 나왔다. 당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소속사였던 MGM은 워너 영화 출연을 반대했으나 테일러가 촬영을 자처했다. 당시 임신 7개월이었던 테일러가 출산 후 촬영하느라 영화제작이 늦어졌다.
장례식은 영화 '셰인'의 장례식 장면을 흉내냈다. 음악은 러시아 출신 작곡가 디미트리 티옴킨이 맡았다.
파티장 장면은 원작소설과 다르다. 소설에서는 아들이 제트 링크에게 맞는 것으로 끝나고 아버지의 복수는 나오지 않는다. 제작진과 배우들은 촬영 종료를 앞두고 시사실에서 막바지 필름을 보다가 제임스 딘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충격에 며칠간 울며 연기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딘이 텅 빈 파티장에서 연설하는 장면은 딘의 사망 후 닉 애덤스가 목소리를 대신 녹음했다. 스티븐스 감독은 딘이 포르쉐를 산 뒤 사고를 우려해 촬영 중에는 운전하지 못하도록 했다. 딘도 이 약속을 잘 지켰으나 자신의 촬영 분량이 모두 끝나자마자 바로 차를 몰고 가다가 죽었다.
록 허드슨은 몸 안에 패딩을 넣어 나이들고 살찐 모습을 연기. 막판 식당에서 싸우는 장면도 원작소설과 다르다. 소설에서는 베네딕트 부인과 며느리, 손녀만 있다가 식당 주인의 나가라는 소리에 싸움없이 조용히 물러난다.
자이언트 Giant 1956년작
제임스 딘 출연/엘리자베스 테일러 출연/록 허드슨 출연
자이언트 (90TH) : 블루레이
제임스 딘 콜렉션 (3Disc) (90TH) : 블루레이
제임스 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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