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캐리 (블루레이)

울프팩 2013. 12. 5. 19:36

비현실적인 내용을 다루는 공포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의 작품도 마찬가지.

그런데 그의 작품들 중 '쇼생크탈출'이나 '스탠 바이 미' '미저리' 등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잔뜩 배어 있는 작품들은 예외다.
오히려 그런 작품들은 희생자 못지 않게 공포의 대상인 주인공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강하게 묻어 난다.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캐리'(Carrie, 1976년)도 마찬가지.
공포물이라기보다 어느 학교에서나 있을 법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물에 가까운 이 작품은 사람들로부터 공포의 대상이 된 주인공이 더 희생자처럼 보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강한 연민과 아픔을 느끼게 한다.

초자연적 현상을 제외하면 주인공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이 꽤나 사실적이어서 설득력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작품은 상당 부분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경험했다기보다 보고 들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녹아 있다.
스티븐 킹은 아기때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는 바람에 홀어머니가 온갖 고생을 하며 생계를 꾸리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

킹도 갖은 고생을 했다.
어려서부터 갖가지 잡일을 했고, 대형 세탁소 점원, 건물 경비원, 공립학교 교사 등을 전전했다.

이 작품에는 그가 세탁소 점원과 교사 일을 할 때 보고 들은 일들이 섞여 있다.
종교에 광신적으로 빠져든 어머니 아래서 세상과 단절된 채 자라는 딸, 세상물정을 모르는 소녀를 괴롭히는 학교 친구들, 아이들의 일에 제대로 관심을 쏟지 못하는 교사들의 모습 등은 킹이 같이 일하면서 겪은 사람들을 바탕으로 했다.

미국식 왕따와 비뚫어진 종교관 등을 초능력의 힘을 빌어 풀어낸 킹의 스토리텔링이 새삼 돋보이는 작품.
그렇다고 원작만 훌륭한 것은 아니다.

이를 긴장감 높은 영상으로 풀어낸 팔머 감독의 연출력 또한 원작 못지 않게 뛰어나다.
특히 캐리가 복수를 가할 때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는 장면은 역설적으로 숨막히는 긴장감을 늘이는 효과가 있어서 가슴을 졸이며 보게 만든다.

더불어 캐리 역을 맡아 눈을 희번득이며 무섭게 훑어보던 씨씨 스페이식의 명연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피노 도나지오가 맡은 서정적인 음악도 비감어린 분위기를 돋구었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지 않다.
지글거림이 심하고 윤곽선이 명료하지 않다.

중경, 원경에서는 눈 코 입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디테일이 떨어진다.
또 일부 장면은 화질이 뿌옇가 탁하다.

음향도 DTS-HD 5.1 채널을 지원하지만 서라운드 효과는 거의 없다.
부록으로 배우들 인터뷰, 제작과정, 뮤지컬 소개 등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글 자막이 전혀 없다.

블루레이 타이틀로서는 여러가지로 부족하지만, 무삭제 헤어누드가 나오는 등 원작이 손상없이 수록돼 반갑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공포물이라기 보다 가슴아픈 성장영화다. 학교 장면은 3군데서 찍었는데 배구코트와 락커룸은 팔리세이즈고교, 체육관 화재장면은 세트, 체육관 바깥 장면은 헤모사비치 등에서 촬영.
이 작품은 의외로 성적인 은유가 강한 작품이다. '드레스 투 킬'처럼 훔쳐보는 듯한 여성의 옆모습부터 마치 성기를 연상케 하는 샤워노즐까지 다양한 성적 메타포가 깔려 있다.
생리를 처음 알게 된 여학생의 공포와 이를 놀림감으로 삼는 여학생들의 행위를 통해 왕따 학생의 비극을 예고한다. 팔머 감독은 스티븐 킹 원작에 최대한 가깝게 영화를 만들었다.
각각 따로 찍은 장면을 하나로 합친 영상. 팔머 감독이 당시로서는 독특한 영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 취한 방법이었는데 합친 부분이 뭉개지며 티가 난다.
캐리를 따라가며 놀리는 자전거 탄 소년은 팔머 감독의 조카인 카메론 팔머. 이 작품은 스티븐 킹의 소설 중 처음 영화로 제작된 작품이다.
캐리의 집은 미술감독 잭 피스크가 필라델피아 아트스쿨을 다닐때 살던 꼭대기 방을 포함해 방 3개짜리 작은 집을 토대로 내부를 만들고, 외부는 산타폴라 주변을 돌다가 발견한 집을 참고로 했다.
캐리가 벽장에 갇힐 때마다 기도 드리는 조각상은 예수의 십자가가 아닌 화살 맞은 성세바스찬의 상이다.
캐리를 놀리는 음모에 가담하는 토미 로스 역할은 윌리엄 카트가 맡았다. 이름은 낯설지만 그는 19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절대 잊지 못할 TV시리즈 '날으는 슈퍼맨'(1981년)의 바로 그 웃긴 슈퍼맨으로 나온 배우다.
윌리엄 카트가 우연히 줏은 가방과 의상 때문에 초인이 된 '날으는 슈퍼맨'은 내용도 재밌었지만, 조이 스카베리가 부른 주제가 'Believe or Not'이 아주 좋았다. 그 노래가 수록된 LP를 아직도 갖고 있다.
'디스코의 왕' 존 트라볼타가 조연으로 출연. 이 작품 이후 그는 '토요일밤의 열기' '그리스' 등에 잇따라 주연을 맡으며 디스코 왕으로 등극했다.
팔머 감독과 조지 루카스는 함께 '캐리'와 '스타워즈' 오디션을 공동 진행했다. 그 결과 수를 연기한 에이미 어빙과 토미 로스 역의 윌리엄 카트는 '스타워즈'의 레이아 공주와 루크 스카이워커로 각각 캐스팅됐다.
'스타워즈'의 레이아공주를 연기한 캐리 피셔는 원래 '캐리'의 캐리로 캐스팅됐다. 그러나 캐리 피셔는 누드 씬 때문에 '캐리' 출연을 거절했고, 팔머는 씨씨 스페이식을 마음에 들어해 '캐리'와 '스타워즈'의 배우들이 바뀌게 됐다.
촬영을 맡은 마리오 토시는 마치 오페라같은 분위기처럼 찍기를 원했다. 커다란 러그 앞에 촛불 조명만 켜놓은 채 두 사람이 어둠속에 희미하게 빛나는 영상은 마리오 토시의 솜씨다.
팔머 감독은 원래 에이미 어빙을 캐리 역할로 생각했으나 씨씨 스페이식을 보고 나서, 어빙에게 급우인 수 역할을 맡겼다.
졸업파티가 열리는 체육관은 세트다. 토미와 캐리가 춤 출 때 나오는 노래 'Born to Have It All'은 에이미 어빙의 여동생 케이티 어빙이 불렀다.
씨씨 스페이식은 이 작품의 미술감독인 잭 피스크와 1974년에 결혼했다. 극 중 캐리가 뒤집어쓰는 돼지 피는 옥수수시럽에 식용 색소를 첨가해 만들었다.
눈을 부릅뜬 표정만으로도 공포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캐리의 표정과 그의 염력에 당하는 사람들을 분할화면으로 표현한 방식 또한 당시로선 이채롭다. 학교 이름인 베이츠고교는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의 주인공 노먼 베이츠에서 따왔다.
캐리의 염력으로 파괴되는 존 트라볼타의 자동차는 67년형 셰빌 SS 396 하드탑이다.
'엑소시스트'의 무서운 소녀 린다 블레어, '600만불의 사나이' 리 메이져스의 부인이었던 파라 파세트, 멜라니 그리피스도 캐리 역 선발을 위한 오디션을 봤다. 파라 파세트는 당시 TV 시리즈 '미녀 삼총사' 출연과 겹쳐 포기했다.
땅 속으로 꺼지는 집은 2분의 1 크기로 만든 미니어처를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구덩이 속으로 끌어내리며 촬영.
실제 모녀인 프리실라 포인터와 에이미 어빙이 극중 수와 엄마역으로 출연. 에이미 어빙은 198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결혼해 89년까지 살면서 아들을 낳았다. 이 작품은 어빙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올해 킴벌리 피어스 감독이 다시 리메이크 했다. 캐리 역은 '킥 애스'의 힛걸인 클로이 그레이스 모레츠가 맡았고, 엄마 역은 줄리언 무어가 연기.
STEPHEN KING 스티븐 킹 1
스티븐 킹 저/한기찬 역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캐리 : 블루레이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씨씨 스페이식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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