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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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그리너웨이의 동물원

울프팩 2014. 6. 22. 23:17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작폼을 좋아하는 이유는 보는 즐거움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미술학도였던 그는 각 장면을 하나의 그림 액자처럼 꾸며낸다.

 

아닌게 아니라, 자신을 가리켜 "영화로 일하는 화가"라고 지칭했을 만큼 그리너웨이 감독은 영상미에 집착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줄거리를 떠나 프레임 하나 하나가 한 폭의 그림같다.

 

하지만 그가 영상으로 그린 그림은 비단 아름다운 그림만 있는 게 아니다.

미와 추, 삶과 죽음 등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영상을 통해 그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세상의 모습을 비춘다.

 

피터 그리너웨어 감독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피터 그리너웨이의 동물원'(A Zed & Two Noughts, 1985년)이라는 희한한 제목이 붙은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내용은 백조 때문에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한 여인과 동물원에서 죽은 동물들의 부패하는 과정을 찍는 쌍둥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를 통해 감독은 서로 대비되는 삶과 죽음, 미와 추가 결국은 자웅동체처럼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그에게 어찌보면 미와 추, 삶과 죽음은 얼룩말의 줄무늬 같은 주제다.

 

즉, 검은 바탕에 흰 줄무늬가 있는 것인지, 흰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것인 지 헷갈리는 얼룩말처럼 삶과 죽음, 미와 추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개념들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에도 등장하는 동물원을 뜻하는 Zoo는 얼룩말을 뜻하는 제브라와 영화 속 쌍둥이 형제의 이름인 올리버와 오스왈드를 의미한다.

 

제목 속에도 존재의 이중성이 들어 있는 셈이다.

가즈런히 쌓아올린 사과와 수술도구처럼 언제나 그렇듯 수(數)에 집착하는 그리너웨이 특유의 질서 감각이 프레임 안에서 빛을 발한다.

 

아름다운 영상은 '차례로 익사시키기' '필로우 북'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건축가의 배' 등 피터 그리너웨이 작품들과 '히로시마 내사랑' '밤과 안개' 등 고전을 찍은 사샤 비에르니 촬영 감독의 솜씨다.

더불어 장엄하면서도 비장미가 감독는 음악은 피터 그리너웨어 감독의 다른 작품에도 참여한 마이클 니먼이 작곡했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좋지 않다.

윤곽선에 계단현상이 나타나고 색감도 깨끗하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짜증나는 것은 작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모자이크다.

피터 그리너웨어 감독 특성 상 헤어누드나 성기 노출이 그대로 등장하는데 이를 만행에 가까운 아주 커다란 모자이크로 가려 버렸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전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화는 백조 때문에 발생한 교통사고에서 비롯된다. 

영화 속에 수시로 등장하는 동물원(ZOO)이라는 단어는 공간적 배경인 동물원과 감독이 소재로 삼은 얼룩말, 쌍둥이 형제 올리버와 오스왈드라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너웨이 감독의 작품들은 다양한 소도구들이 프레임을 가득 메우며 나름 공간적 질서를 추구한다. 

대문짝만하게 등장하는 모자이크. 심하게 눈에 거슬리는 작품 훼손 행위다. 

아름다운 영상은 사샤 비에르니 촬영감독의 솜씨다. 러시아 이민의 후손인 그는 1919년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2001년 파리에서 숨을 거뒀다. 

영화 속 내레이션은 영국의 유명한 방송인이자 동물학자인 데이빗 아텐보로가 맡았다. 그는 자연 관련 여러 작품들에서 해설을 맡았다. 

다리없는 한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쌍둥이 형제는 실제 쌍둥이 브라이언 디콘과 에릭 디콘 형제가 맡았다. 

영화는 동물사체의 부패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삶과 죽음의 극명하게 다른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더불어 이 작품 속에는 그리스 신화 속 레다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는 백조로 변신해 숨어든 제우스의 잠자리를 갖고 2개의 알을 낳는다. 알 속에서 남편인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우스의 아들 카스토르와 제우스의 아들 폴룩스 등 쌍둥이 형제가 태어난다. 

동생 폴룩스는 신의 아들이어서 신들처럼 죽지 않는 존재로 태너았지만 인간의 아들인 형 카스토르는 그렇지 못해 싸움터에서 죽고 만다. 우애가 좋았던 동생 폴룩스가 형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자 제우스가 카스토르에게도 죽지 않는 신의 특성을 일부 넣어주면서 형제는 밤하늘의 쌍둥이 별자리가 돼 인간과 신의 존재를 바꿔가며 땅과 하늘에서 살아갔다.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피터 그리너웨이의 동물원
피터 그리너웨이 / 안드리아 페레올, 브라이언 디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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