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공포 9

천년호

한 켠에 쌓아 둔 DVD 타이틀 속에서 이광훈 감독의 '천년호'(2003년)를 발견했다. 아마 제작사에서 받아 놓고 미처 보지 못한 모양이다. 제목만 보면 신상옥 감독이 1969년에 만든 동명의 공포물이 생각 난다. 당시 신 감독의 '천년호'는 시체스 영화제에서 황금감독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고,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한 작품이다. 신라 진성여왕이 짝사랑한 장수를 차지하기 위해 그의 부인을 성 밖으로 내쫓아 호수에 빠져 죽게 만드는데, 여기에 천년 묵은 여우의 원혼이 씌워 복수하는 내용이다. 이 감독의 '천년호'는 바로 신 감독의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이 감독은 한국의 전통적인 귀신 이야기인 천년호를 고대 전설이 깃든 판타지물로 슬쩍 바꿨다. 우선 천년 묵은 여우를 뜻하는 원작의 제목을 천년 묵은 호수를 ..

장화,홍련 (블루레이)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2003년)은 참으로 묘한 영화다.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탐미적인 아름다움이 곳곳에 도사린 작품이다. 제목은 계모에게 구박받는 장화 홍련의 전래 설화를 연상케 하지만, 모티브만 빌려 왔을 뿐 내용은 설화와 다르다. 뒤틀린 가족관계가 가져오는 긴장을 통해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사건의 윤곽을 모호하게 처리해 끊임없이 궁금하게 만든다. 그만큼 영화는 공포와 스릴러의 분위기를 지녔으며서도 엄마 잃은 자매의 슬픔을 간직한 가족 영화이기도 하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아름다운 미술이다. 인물의 의상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배경의 강렬한 색감과 꽃무늬 벽지와 가구의 배치 등이 하나의 정물화를 보는 것처럼 눈길을 사로 잡는다. 여기에 극단적 콘트라스트를 추구해..

악마의 씨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수작 '악마의 씨'(Rosemary's Baby, 1968년)는 영화보다 책으로 먼저 만났다. 1970, 80년대 검은 색 표지가 특징이었던 손바닥만한 동서추리문고에서 '로즈마리 베이비'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당시 읽기 힘든 세로쓰기 문고판인데도, 악마숭배자들이 평범한 여인을 유인해 악마의 자식을 임신하게 만드는 내용이 어찌나 충격적이던지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흥미진진한 이 작품을 쓴 주인공은 걸출한 추리소설 작가 아이라 레빈. 그는 많지 않은 작품을 썼지만 데뷔작 '죽음의 키스'부터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스텝포드 와이프'까지 모두 뛰어난 작품성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영화화됐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악마의 씨'는 제목 그대로 악마 숭배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하..

인베이젼

1956년에 나온 돈 시겔 감독의 '신체강탈자의 침입'은 외계인의 공포를 다룬 훌륭한 B급영화였다. 우리가 익히 아는 ET같은 괴상한 생명체나 괴물이 아닌 사람의 모습과 식물의 씨앗이라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알 수 없는 공포를 다룸으로써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잭 피니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의 성공 이후 필립 카우프만과 아벨 페라라도 리메이크를 했고, 2007년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이 '인베이젼'(The Invasion, 2007년)이라는 제목으로 3번째 리메이크를 했다. 이 작품은 외계 생명체가 바이러스로 돌변해 인간의 몸 속에 침투해 사람의 성격을 바꿔놓는 내용이다. 즉 몸은 그대로지만 속은 어제와 다른 성격을 지닌 완전 새로운 존재로 돌변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앞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