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공형진 9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래전 홍상수 감독의 어떤 작품 언론시사회를 다녀온 뒤 호된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나온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하는 그의 끝없는 자기 복제가 지나쳤다고 봤기 때문이다. 적어도 돈을 받고 상영하는 상업 영화 감독이라면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작품을 다시 본다면 그렇게 비판하지 않을 것 같다. 어느덧 자기 복제는 그의 색깔이 돼버렸다. 이제는 망하든 흥하든, 우디 앨런처럼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의 9번째 작품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자기 복제는 여전하다. 심지어 김태우, 고현정 등 그의 전작들에서 등장한 배우들도 계속 출연한다. 이 작품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영화감독이 자신의 선후배들을 만나면서 벌어지..

영화 2009.05.17

몽정기

정초신 감독의 '몽정기'(2002년)는 성장기 청소년들이 한창 가질 만한 성적 호기심을 다룬 성장 영화다. 중학생들이 교생을 둘러싸고 꿈꾸는 성적 판타지가 주된 내용이다. 주제가 주제인만큼 내용은 화장실 코미디로 흐른다. 2002년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1988년을 배경으로 다룬 이유는 요즘 아이들이 훨씬 더 조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의 발달로 초등학생때부터 성적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셈. 그래서 80년대 후반 아이들을 택한게 아닐까 싶은데, 그러고보면 그 시대 아이들이 더 순진했던게 아닐까 싶다. 하긴 그때는 인터넷도 없었고, 기껏해야 빨간 책으로 통하던 야한 만화나 소설 나부랭이,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도색..

태극기 휘날리며 (SE)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를 보면 '친구' '형사'를 찍은 황기석 촬영감독이 생각난다. '태극기...'를 보고 강남의 사무실로 그를 찾아간 적이 있다.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 영화는 멀미가 날 정도로 어지러운 이유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온 유학파인 그는 대뜸 실크 스크린 때문이라고 했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보통 부드러운 영상을 얻기 위해 실크 스크린으로 햇빛을 걸러내면서 촬영한다.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물론이고 '게이샤의 추억' 같은 영화는 엄청난 야외 세트를 몽땅 실크 스크린으로 덮었다. 그런데 국내에는 엄청난 크기의 실크 스크린이 없다. 돈 때문이다. 당시 가장 큰 실크 스크린은 황기석 감독이 갖고 있던 40미터짜리였단다. 40미터..

미스터 주부퀴즈왕

신인감독 유선동의 데뷔작인 '미스터 주부퀴즈왕'(2005년)은 제목이 말해주듯 6년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가사 일을 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남자가 집에 있으면 논다고 생각하기 십상인데, 영화는 이 또한 당당한 취업이기 때문에 주부라고 주장한다. 실업자가 줄지않고 조기 퇴직하는 사람이 많은 시점에 세태를 적절히 반영하는 소재를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용두사미라고 했던가, 재치있고 설득력있게 풀어가던 이야기는 후반부에 가서 힘을 잃는다. 특히 한석규와 신은경이 3주 우승을 눈 앞에 두고 사랑타령으로 빠지는 대목은 너무 작위적이다. 골 문앞까지 공을 잘 몰고가서 문전처리를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공을 날려버려 허탈하게 만드는 축구를 보는 것 같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