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김태우 8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래전 홍상수 감독의 어떤 작품 언론시사회를 다녀온 뒤 호된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나온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하는 그의 끝없는 자기 복제가 지나쳤다고 봤기 때문이다. 적어도 돈을 받고 상영하는 상업 영화 감독이라면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작품을 다시 본다면 그렇게 비판하지 않을 것 같다. 어느덧 자기 복제는 그의 색깔이 돼버렸다. 이제는 망하든 흥하든, 우디 앨런처럼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의 9번째 작품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자기 복제는 여전하다. 심지어 김태우, 고현정 등 그의 전작들에서 등장한 배우들도 계속 출연한다. 이 작품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영화감독이 자신의 선후배들을 만나면서 벌어지..

영화 2009.05.17

해변의 여인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황당하면서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기-승-전-결의 체계를 갖추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일반적인 드라마투르기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갑자기 시작해서 느닷없이 끝난다. 어느 시점을 사건의 시작 또는 절정, 끝이라고 집어내기 힘들다. 그냥 사람들의 하루를 툭 잘라내서 필름에 집어넣은 것처럼 심상한 삶을 보여준다. 이를 혹자는 '일상의 힘'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심드렁한 일상을 영상으로 붙잡을 수 있는 홍 감독의 특기라고 본다. 그의 일곱번 째 작품 '해변의 여인'(2006년)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작품 구상을 위해 서해안으로 떠난 감독이 그곳에서 어느 여인과 겪게되는 일상을 담고 있다. 그 속에서 굳이 의미를 찾자면 덧없는 욕망과 자신에 탐닉하는 이기적인 삶이 보..

얼굴없는 미녀

김인식 감독의 '얼굴 없는 미녀'(2004년)는 1980년 TBC(지금의 KBS2)에서 방영한 드라마 '형사'의 납량특집을 리메이크한 영화다. 당시 이순재가 장미희에게 최면을 걸어 매일 자기를 찾아오게 만들었는데, 사고로 죽은 장미희가 귀신이 돼서도 찾아온다는 오싹한 내용이었다. 영화는 김혜수가 장미희 역을, 김태우가 이순재 역할을 맡았다. 과거 TV 드라마가 공포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영화는 사람의 심리에 무게를 뒀다. 그래서 드라마는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스릴이 있는 반면,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갈등과 방황을 고찰하게 만든다. 좋게 말하면 사색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극장을 찾은 이유는 김혜수의 과감한 노출 장면 때문. 그래도 김 감독의 독특한 영상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