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장동건 8

무극

첸 카이거 감독의 '무극'(The Promise, 2005년)은 참으로 망극지통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동양식 판타지를 표방한 이 작품은 시대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국가에서 운명으로 얽힌 4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대결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경극에 나올법한 중국식 갑옷과 중국어를 사용한다는 것 외에 시대와 역사성, 지역성을 상실한 채 표류한다. 볼거리도 마찬가지다. 황당한 만화 수준의 컴퓨터 그래픽은 실사 촬영과 이질감이 확연하게 드러날 정도로 어색하고 치졸하다. 액션 또한 '와호장룡'의 시원한 와이어 액션, '영웅'과 '연인'에서 본 호쾌한 결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을 정도로 단조롭다. 오히려 3류 무협영화만도 못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장동건, 장백지, 사나다 히로유키 등 한,..

친구 (UE)

어제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비를 보면 떠오르는 영화가 두 편 있는데 하나는 프랑스 영화 '빗속의 방문객'이고 하나는 바로 곽경택 감독의 '친구'(2001년)다. 안타깝게도 '빗속의 방문객'은 프랑스에서도 아직 DVD가 출시되지 않아서 다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DVD로 갖고 있기에 비가 간혹 본다. '친구'와 관련해 두 가지 기억이 있다. 모두 사람에 대한 기억이고, 그것도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다. 한 사람은 영화를 찍은 황기석 촬영감독이고, 또 한 사람은 배우 유오성이다. 2003년 여름, 서울 강남의 오피스텔에서 황기석 촬영감독을 만났다. 당시 그가 작업실로 쓰던 오피스텔에 '친구'의 조감독이었던 안권태 감독이 와서 입봉작 '우..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년)는 스타일리시 무비의 전형을 보여준 작품이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옥상 결투 장면과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준 빗속 결투, '전함 포템킨'의 오뎃사 계단 학살을 연상케 하는 계단 살인사건 등에 쓰인 영상들은 한 편의 그림 같다. 이 감독이 그만큼 자신만의 독특한 영상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증거. 악역을 맡은 안성기의 변신과 느물 느물한 박중훈의 표정 연기도 좋았다.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형사들의 리얼 액션도 볼 만한, 드라마와 액션 두 가지를 모두 잡은 수작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SE 판 DVD는 레터박스로 나왔던 일반판과 달리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한다. 화질은 스크래치와 잡티가 보이지만 일반판보다 한결 나아졌다. 오히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