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1999년)가 개봉한 지 벌써 17년이 지났다. 앳된 소녀 같은 얼굴의 전도연과 젊은 청년의 모습이 역력한 최민식, CCTV도 보이지 않고 휴대폰 조차 흔치 않아 유선전화를 이용해 밀회를 나누는 장면 등에서 지나간 세월의 깊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인 이 작품은 불륜이라는 만만찮은 주제를 다뤘다.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남편이 절망과 분노 끝에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다. 통속극에서 다루는 흔한 소재이고 배반당한 사람의 복수라는 상투적인 흐름으로 이어지지만 결말을 알면서도 과정 자체가 궁금해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이야기를 농밀하게 풀어내고 장면들을 짜임새 있게 엮어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여기에 IMF 이후 실직한 가장들의 불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