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 2편의 작품에서 알 수 있듯 허진호 감독의 영화는 참으로 단아하다. 그러면서도 인생의 쓴 맛을 다 알아버린 노인네의 주름처럼 힘든 세파의 흔적이 여기저기 묻어난다. 다만,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안으로 꾹꾹 눌러 담는 것이 허진호식 멜로의 특징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죽음을 앞둔 청년이 소리 죽여 울듯, '봄날은 간다'에서 배신의 아픔을 흐르는 바람결에 두 팔 벌려 털어내는 청년의 평온한 얼굴처럼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한 번쯤 술주정을 하며 주변사람들을 괴롭힐 만도 한데, 떠나간 여인의 뺨을 갈겨줄 만도 한데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러지 않는다. 바로 표정을 알 수 없는 고양이의 단아함 같은 점이 허진호 영화의 매력이요, 미덕이다. 그런데 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