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송선미 5

강변호텔(블루레이), 홍상수 김민희 이야기를 보다

'강변 호텔'(2018년)은 홍상수 감독의 23번째 장편 영화다. 그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이렇다 할 사건 없이 이상한 대화로 흘러가는 심드렁한 내용이지만 제71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제56회 히혼 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 남우주연상 등 해외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다만 이번 작품이 약간 다른 것은 남녀 간의 강박적 사랑에 목을 맸던 예전 작품들과 달리 한 사람의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죽음에 이르는 여정 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홍 감독의 특징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일반적인 작품이라면 병에 걸리거나 자살로 내몰릴만한 우울한 일들을 겪는 등 인물을 둘러싼 죽음의 징후가 보일 텐데, 이 작품 속 주인공은 그야말로 멀쩡하게 있다가 느닷없이 죽음을 맞는다. 그..

두사부일체(블루레이)

윤제균 감독의 코미디는 거침이 없다. 재미있어서 흥행이 될 만한 소재는 욕설이든, 주먹질이든, 질펀한 농담이든 가릴 것 없이 가져다 붙인다. 무턱대고 붙이면 난잡할텐데 있어야 할 위치를 윤 감독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코미디는 거칠면서도 재미가 있다. '낭만자객'을 제외한 '두사부일체'(2001년)와 '색즉시공'은 아예 작정하고 웃기는 코미디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윤 감독의 데뷔작인 '두사부일체'는 사학비리에 조폭 코미디를 접목한 작품이다. 자료 조사를 통해 부조리한 교육현장의 비리를 적나라하게 꼬집은 부분은 나름대로 감독의 메시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만화 '차카게 살자'를 표절한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지만 확실하게 웃음 전달에 성공했다. 덕분에 개봉 당시 평단의 예측을 깨고 ..

밤의 해변에서 혼자(블루레이)

홍상수 감독의 19번째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년)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기도 한 여배우 김민희와 감독의 스캔들 때문에 더 관심을 끌었다. 김민희가 연기한 주인공 영희는 공교롭게 현실처럼 유부남인 감독과 불륜의 사랑을 나누는 사이다. 그렇다보니 영화 내용과 현실이 겹치면서 더 주목을 받았다. 이를 의식하고 만들었는 지 모르겠지만 극 중 여주인공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겠다는 다짐이 마치 힘든 현실에 대한 인정과 수용을 내포하는 듯해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 점 때문에 이 작품이 욕을 먹기도 하지만 스캔들과 작품을 굳이 연결시켜 보지 않으면 작품 속 여주인공의 힘든 사랑이 올곧게 부각된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스캔들 때문에 유럽으로 떠난 여주인공이 자신을 추스르는 내용이고 ..

북촌방향

이 영화, 참 기이하다. 어디서나 봄직한 일상의 소소함 속에 생각할 거리를 던졌던 게 그동안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라면 그의 12번째 영화인 '북촌방향'(2011년)은 전작들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조각그림처럼 흩어진 평이한 삶의 단면들이 같은 점이라면, 뒤틀린 시공간은 다른 점이다. 영화 속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기 힘들다. 선배(김상중)를 만나기 위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온 영화감독(유준상)이 북촌이라는 동네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 부대끼는 내용은 언뜻보면 하루 동안 이야기 같으면서 며칠 사이 벌어진 일 같기도 하다. 그만큼 영화 속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보니 시간의 배열도 혼란스러워 인과관계도 분명치 않다. 즉, 귀퉁이가 닳아서 두루뭉실한 퍼즐 조각처럼 어떤 ..

해변의 여인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황당하면서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기-승-전-결의 체계를 갖추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일반적인 드라마투르기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갑자기 시작해서 느닷없이 끝난다. 어느 시점을 사건의 시작 또는 절정, 끝이라고 집어내기 힘들다. 그냥 사람들의 하루를 툭 잘라내서 필름에 집어넣은 것처럼 심상한 삶을 보여준다. 이를 혹자는 '일상의 힘'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심드렁한 일상을 영상으로 붙잡을 수 있는 홍 감독의 특기라고 본다. 그의 일곱번 째 작품 '해변의 여인'(2006년)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작품 구상을 위해 서해안으로 떠난 감독이 그곳에서 어느 여인과 겪게되는 일상을 담고 있다. 그 속에서 굳이 의미를 찾자면 덧없는 욕망과 자신에 탐닉하는 이기적인 삶이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