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야쿠쇼 코지 8

갈증(블루레이)

2003년 일본에서 발생한 쁘띠 엔젤 사건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해 7월 17일 발생한 이 사건은 29세 청년인 요시자토 코타로가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4명을 납치해 감금한 사건이었다. 범인 요시자토는 여고생들을 꼬셔서 원조 교제를 시키거나 입었던 속옷과 나체사진을 찍어 팔아먹는 일종의 성매매 알선책이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가 만든 쁘띠 엔젤이라는 성매매 조직이었다. 충격적인 쁘띠 엔젤 사건 이곳에 속한 여학생들은 친구 등 다른 여학생들을 꼬드겨 요시자토에게 연결시켜 주고 돈을 받았다. 즉 쁘띠 엔젤의 여학생들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했다. 여학생들은 다른 여학생 1명을 연결시켜줄 때마다 요시자토에게 3만 엔의 소개비를 받으며 성매매 공범이 됐다. 급기야 요시자토는 가출한 초등학교 여학생 4명..

세 번째 살인(블루레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 번째 살인'(三度目の殺人, 2017년)은 특이한 영화다. 고용주를 죽여 체포된 중년의 공장 노동자 미스미(야쿠쇼 코지)가 형량을 낮추기 위해 사건을 조사하는 변호사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바꾸며 사건을 오리무중에 빠트린다. 마치 일부러 죽으려고 작정한 것처럼 미스미는 유리한 증거나 증언이 나오면 이를 뒤집는다. 심지어 살해된 사장의 딸 사키에(히로세 스즈)가 결정적인 증언을 하겠다며 나서지만 미스미는 이 조차도 거부한다. 이쯤 되면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 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헷갈린다. 도대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영화 속에 진실은 없고 팩트, 즉 사실만 있다. 팩트는 미스미가 사장을 죽였다는 것. 사실은 현상을 보여줄 뿐이다. 현상 뒤에 숨은 의미를 알려면 진..

강령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공포영화 '강령'(2000년)은 공포물이라기 보다 심리 스릴러물에 가깝다. 귀신을 보는 여인이 어느날 실종된 소녀의 사건에 휘말리면서 부부가 겪게 되는 공포스런 상황을 다뤘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공포물에 가깝지만, 귀신이나 괴물이 아닌 사람의 심리상태를 통해 공포감을 유발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렇다보니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기괴한 형체나 소리보다는 매 순간 벌어지는 긴장 상황이 가슴을 졸이게 만든다. 그만큼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작품.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괴담의 내용을 벗어나지 못하고 영상 또한 다른 작품들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불러 일으키는 점이 한계다. 특히 계단을 올라오는 형체의 모습은 영락없이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링'을 연상케 한다. 실..

큐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사람들에게 내재된 공포와 불안감을 잘 표출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명성을 드높여준 '큐어'(1997년)도 마찬가지. 흔히 공포물로 분류되는 이 영화는 공포보다는 스릴러에 가깝다. 내용은 X자의 커다란 흉터가 남아 있는 시체들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연쇄 살인의 배후를 캐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는 특이하게 귀신이나 괴물이 아닌 평소 사람들이 드러내지 않는 복심, 즉 속마음으로 공포를 유발한다. 사람들은 최면술이 걸린 상태에서 은연 중 자신의 속마음에 따른 행동을 벌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사람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속내가 결국은 공포의 원천이 된다. 기요시 감독은 이를 영상으로 잘 표현했다. 특이한 것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생각과 현실을 교차 편집해 보여주면서 등장인물들의 불..

쉘 위 댄스 (블루레이)

1960년대말부터 70년대초 20대였던 일본 전공투 세대들은 당시 치열한 삶을 살았다. 1980년대 우리네 전대협같은 기구였던 전학공투회의, 즉 전공투 세대들은 도쿄대 점거농성 등을 벌이며 어떻게 살것인가로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이들은 198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철저한 성장의 논리에 파묻혀 세상에서 잊혀진 세대가 됐다. 오히려 1991년부터 시작된 주식과 부동산 경기침체로 일본이 소위 '잃어버린 10년'으로 부르는 장기불황에 빠져들면서 40대가 된 전공투 세대들은 가장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영화 '쉘 위 댄스'(1996년)는 바로 이러한 전공투 세대의 허무를 담고 있다. 언뜻보면 춤이나 배우는 한가로운 중년의 이야기를 다룬 것 같지만, 사실은 전공투 세대인 40대들의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