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분노의 포도'라고 할 수 있는 '붉은 수수밭'(紅高梁, 1988년)은 장이머우(장예모)라는 걸출한 중국 감독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그는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로 중국 제5세대 감독의 선두 주자로 떠올랐다. 모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다분히 민족적이며 사회주의적이다. 돈 때문에 양조장을 운영하는 쉰 살 넘은 노총각이자 나병 환자에게 팔려간 젊은 여성(공리)의 이야기다. 시집갈 때까지만 해도 여성은 다분히 일부종사(一夫從事)의 틀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남편의 죽음으로 술도가를 맡게 되면서 여성은 여장부로 변신한다. 남정네들을 이끌고 술도가를 일으키며 급기야 항일 무장투쟁에 나서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여인은 더 이상 봉건적 잔재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