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2021/03 11

귀주이야기(블루레이)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귀주 이야기'(秋菊打官司, The Story Of Qiu Ju, 1992년)는 '국두' '홍등' '붉은 수수밭' 등 그의 전작들과 결이 다른 작품이다. 중국 시골에서 벌어지는 작은 소동을 통해 중국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진지하고 무거웠던 그의 전작들과 달리 페이소스가 짙게 깔린 블랙코미디 풍이다. 천위안빈의 중편 소설 '만가소송'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이 우스우면서도 씁쓸하고 안타까워 마냥 웃고 있을 수만도 없게 만든다. 내용은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알고 지내는 중국 시골에서 촌장과 아낙(공리)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콴시와 미엔쯔 아낙의 남편이 촌장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고환을 걷어차이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남편은 크게 다치지 않아..

인생(블루레이)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인생'(活着, 1994년)은 중국 현대사의 굴곡을 한 사내의 삶을 통해 풀어낸 수작이다. 중국의 유명 작가 위화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푸궤이(거요우, 갈우)라는 사내의 가정을 중심으로 중국 현대사가 안고 있는 질곡을 다뤘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큰 재산을 지녔던 푸궤이의 인생은 중국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새옹지마를 떠올리게 한다. 엄청난 물림 재산을 도박으로 다 날려 알거지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지만 1940년 국공 내전에서 승리하며 장개석 군을 몰아낸 모택동의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뒤 오히려 무산자 신세여서 살아남게 된다. 그의 저택을 차지한 노름꾼은 반동 지주로 몰려 공개 처형당한다. 1960년대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위해 모택동이 주도한..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1990년)는 전작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예상외로 크게 성공하자 제작사인 황기성 사단에서 서둘러 만든 속편이다. 전작의 인기를 업고 가기 위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두 번째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감독은 전작의 각본을 쓴 김성홍이 맡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미연, 김보성이 주연을 맡았고 지금은 유명한 배우들이 된 공형진, 이범수, 최진영 등이 신인으로 출연했다. 음악도 전작처럼 산울림의 김창완이 맡아 주제가를 불렀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전작만큼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서울의 경우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5만3,000명의 관객이 들었다. 전작이 16만 명이 관람해 대박을 쳤으니 그에 비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당시 10만 명 관람이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예나 지금이나 치열한 입시 경쟁은 여전하다. 학생은 물론이고 부모와 교사, 학교 모두 시험을 치르는 당일까지 중압감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우리 사회에 과도한 입시 경쟁의 폐해에 대해 경종을 울린 사건이 1986년에 일어났다. 그 해 1월 서울사대부중 3학년이었던 여학생이 입시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투신해서 생을 마감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고교 진학을 위한 연합고사도 꽤 경쟁이 치열했다. 그 학생은 전교 1등이었는데도 부담이 어찌나 컸던지 유서를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때 학생이 남긴 유서가 신문에 보도되며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난 1등 같은 건 싫은데, 난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이 되기는 싫은데, 난 꿈이 있는데, 난 정말 남을 사랑하며 살고 싶은데, ..

나이브스 아웃(4K 블루레이)

라이언 존슨(Rian Johnson) 감독의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 2019년)은 한 편의 잘 짜인 추리소설 같은 영화다.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전형적인 밀실 추리소설 형태를 따르고 있다. 유명한 추리 소설 작가의 생일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가운데 추리 소설 작가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경찰과 함께 유명한 탐정 블랑(다니엘 크레이그, Daniel Craig)이 사건 해결을 위해 투입된다. 정통 추리소설 같은 영화 이후 전개는 추리소설의 형태를 따른다. 경찰과 탐정이 그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 증언을 들으며 사건의 얼개를 꿰어 맞추는 식이다. 이 가운데 증언의 허점을 찾아 범인을 찾아내는 두뇌 게임이 펼쳐진다. 누구는 거짓말을 할 것이고 누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