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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나이브스 아웃(4K 블루레이)

울프팩 2021. 3. 14. 00:44

라이언 존슨(Rian Johnson) 감독의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 2019년)은 한 편의 잘 짜인 추리소설 같은 영화다.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전형적인 밀실 추리소설 형태를 따르고 있다.

 

유명한 추리 소설 작가의 생일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가운데 추리 소설 작가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경찰과 함께 유명한 탐정 블랑(다니엘 크레이그, Daniel Craig)이 사건 해결을 위해 투입된다.

 

정통 추리소설 같은 영화

이후 전개는 추리소설의 형태를 따른다.

경찰과 탐정이 그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 증언을 들으며 사건의 얼개를 꿰어 맞추는 식이다.

 

이 가운데 증언의 허점을 찾아 범인을 찾아내는 두뇌 게임이 펼쳐진다.

누구는 거짓말을 할 것이고 누구는 진실을 말하겠지만 과연 이를 가려내는 일은 녹녹지 않다.

 

블랑이 사건을 추리해가는 과정은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가 창조한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인 에큐율 포와로(Hercule Poirot)에 가깝다.

물론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이 만든 탐정 셜록 홈스(Sherlock Holmes)처럼 현장을 둘러보며 증거 수집에도 나서지만 그보다는 진술의 허점을 가려내는 일에 집중한다.

 

이를 위해 감독은 영화 속에 다양한 추리소설과 서스펜스 영화들을 녹여 넣었다.

아가사 크리스트의 유명한 작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 '오리엔트 특급 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사건이 벌어지지만 '바스커빌 가의 개(The Hound of the Baskervilles)'나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연과 원한, 그리고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퍼즐 같은 장치들이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아울러 극의 전개는 '형사 콜롬보(Columbo)'에 가깝다.

처음에 범인을 드러내고 이후 형사가 과정을 찾아내게 만드는 식이다.

 

이때 범인이 무조건 사악하기만 하면 안 된다.

긴장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범인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을 부여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범인이 잡히지 않기를 바라게 만들어야 한다.

'형사 콜롬보'의 성공 요인은 바로 이런 범인의 드라마, 즉 형사가 아닌 범인의 사연에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보는 사람이 심장을 조이는 듯한 긴장감을 맛보게 만든다.

아울러 막판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나 '이창'처럼 극적인 긴장을 고조시킨다.

 

물론 결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추리소설이 그렇듯 교묘한 눈속임 장치인 맥거핀과 반전이 덫처럼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잠시도 쉬지 않고 긴장의 연속을 맞게 된다.

 

이렇게 풀어놓으면 쉬워 보이지만 이런 장치를 구성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공력이 아니면 힘들다.

그런 점에서 라이언 존슨은 훌륭한 추리 작가의 기질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블룸형제 사기단'(The Brothers Bloom)처럼 구성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허술한 작품도 있지만 이 작품만 놓고 보면 훌륭한 작가적 기질이 엿보인다.

연출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미장센 자체가 예술

마치 '바스커빌가의 개'를 연상케 하는 초반 부감 샷으로 저택을 잡은 장면부터 한치의 빈틈도 없이 꽉 들어찬 미장센을 보면 감독이 매 장면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고풍스러운 가구와 그림,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꽉 들어찬 미장센은 장면 자체로 추리 작가의 성격을 유추하게 만들고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여기에 등장인물들의 얼굴에 음영을 드리우거나 눈처럼 특정 부위만 비추는 조명을 사용해 극적인 효과를 연출했다.

그만큼 이 작품은 참신한 스토리와 정극 스타일의 미술과 조명, 카메라 움직임, 긴장감 넘치는 연출이 어우러져 서스펜스의 성을 쌓았다.

 

더불어 캐스팅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거친 007에서 두뇌 플레이에 능한 탐정으로 변신한 다니엘 크레이그부터 갖가지 사연을 지닌 가족으로 등장한 제이미 리 커티스(Jamie Lee Curtis), 돈 존슨(Don Johnson), 크리스 에반스(Chris Evans), 마이클 섀넌(Michael Shannon), 토니 콜렛(Toni Collette) 등이 최적의 조합을 보여줬다.

 

특히 간호사로 등장한 아나 디 아르마스(Ana de Armas)가 돋보였다.

출연 경력이 많지 않은 배우인데도 졸지에 음모의 한 복판에 휘말린 여주인공을 맡아 극을 끌어가는 힘과 집중력을 보여줬다.

 

기대되는 배우다.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화질이 뛰어나다.

선명한 색상이 잘 살아 있고 디테일이 우수하다.

 

바닥에 깔린 카페트의 세세한 무늬와 책상의 나뭇결까지 섬세하게 보일 정도.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강조된 사운드는 아니지만 적당히 채널 안배된 음악과 음향을 통해 극 중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잘 전달한다.

 

부록으로 라이언 존슨 감독과 제작진 해설, 감독의 별도 해설 등 두 편의 음성해설과 삭제 장면, 프리 프로덕션, 캐스팅, 시각효과와 미술, 음악, 편집, 홍보 마케팅과 각본 등 풍성한 내용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모두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바스커빌가의 개'에 어울릴것 같은 저택. 매사추세츠주 중부에서 발견한 집이다. 보스턴에서 남쪽으로 한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액션이나 활극을 배제하고 두뇌싸움에 의존하는 정통 추리극 형태를 띄고 있다. 감독은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알렉사 카메라를 이용해 디지털 촬영을 했다. 그는 원래 색감 때문에 필름 촬영을 선호한다.
거실 장면은 저택 근처에 다른 집을 빌려서 촬영.
오랜만에 보는 제이미 리 커티스. 고전영화의 스타 토니 커티스와 자넷 리의 딸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대령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추리작가, '마이애미 바이스' 시리즈의 스타 돈 존슨이 아들로 나왔다.
탐정 블랑이 피우는 시거는 특별히 길게 보이도록 만들어 달라고 특별 주문했다.
추리작가의 집 내부는 1970년대 탐정영화 '발자국'에서 영감을 받아 꾸몄다.
예전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의 한글 자막에서 '바둑'이라고 표기된 부분이 이번 4K 타이틀에서 '오목'으로 바로 잡혔다.
건물 외곽에 불어있는 넝쿨 지지대는 제작진이 만들어 붙였다.
록시뮤직의 'More Than This', 롤링 스톤스의 'Sweet Virginia' 등 197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삽입곡들도 좋다. 감독은 대본을 쓸때 롤링 스톤스 노래를 찍어 놓았다.
극 중 '제시카의 추리극장'이 TV 화면에 나온다.
감독은 조니 미첼, 닐 영 등 1970년대 유명 가수들 이름에서 배역명을 따왔다.
눈에 띄는 장식물은 공업용 바베큐대에 칼을 붙여서 만들었다.
창문에 젤 필터를 붙이고 야간 장면을 낮에 찍었다. 디지털 카메라여서 낮은 광량에서도 촬영이 가능했다.
감독은 블랑 탐정이 등장하는 후속편을 만들 예정이다. 여주인공인 아나 디 아르마스는 쿠바 출신 배우다. '블레이드러너 2049'에 등장했고 '007 노 타임 투 다이'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