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2021/04 8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블루레이)

홍원찬 감독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19년)는 해외판 '아저씨' 같은 영화다. 살인청부업으로 먹고사는 전직 비밀공작원 인남(황정민)이 엄마를 잃고 장기밀매 조직에게 납치된 아이를 찾기 위해 태국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하필 인남이 의뢰를 받아 죽인 야쿠자 두목에게는 잔혹한 킬러 동생 레이(이정재)가 있다. 복수심에 불타는 레이는 태국까지 인남을 쫓는다. 인남은 태국의 장기밀매 조직과 레이 모두에게 추격을 당하면서 힘든 싸움을 벌인다. 뛰어난 싸움꾼이 납치된 아이를 찾기 위해 단신으로 장기밀매 조직과 싸우는 얘기는 '아저씨'와 닮았다. 다만 싸움의 스타일과 스케일이 다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인남은 '아저씨'의 원빈이 목욕탕에서 보여준 화려한 개인기 액션과 달리 총싸움과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잔혹..

세상의 모든 아침(블루레이)

알렝 코르노(Alain Corneau) 감독의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 1991년)은 비올라 다 감바가 얼마나 매력적인 악기인지 알려준 영화다. 아울러 조르디 사발(Jordi Savall)이라는 위대한 연주자를 재발견한 작품이기도 하다.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7세기 프랑스에서 활약한 작곡가 겸 뛰어난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였던 생트 콜롱브(Monsieur de Sainte Colombe)와 그의 제자였던 마랭 마레(Marin Marais)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7현을 활로 연주하는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는 첼로의 원형으로 알려진 악기로 지금의 첼로보다는 크기가 약간 작다. 당시에는 꽤 인기 있던 악기였으나 이후..

소살리토

예전에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출장을 갈 때마다 자주 들렸던 곳이 바닷가 마을 소살리토다. 금문교에서 다리만 건너면 나오는 가까운 곳이어서 즐겨 찾았는데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다양한 집들이 들어선 부촌이다. 소살리토는 높다란 건물과 도회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샌프란시스코와 달리 유럽 마을 같다. 고풍스러운 중세도시 같다는 뜻이 아니라 높은 빌딩이 빼곡히 들어서거나 구획 정리가 잘 된 미국 도시 느낌이 덜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바닷가에는 요트들이 즐비하게 정박해 있고 언덕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로들을 따라 갖가지 상점과 여러 모양의 집들이 들어서 있다. 예전에는 이 곳에 헤밍웨이를 비롯해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미술품이나 공예품 등을 파는 상점들이 여럿 보였다. 샌프란시스코와..

언힌지드(블루레이)

데릭 보트 감독의 '언힌지드'(Unhinged, 2020년)는 일상 속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더 실감 나는 영화다. 이 영화는 바쁜 출근길에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출발하지 않는 앞차를 향해 경적을 울렸다가 끔찍한 보복 운전을 당하는 여성 운전자 얘기다. 그런데 보복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저 길을 막아서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여성 운전자의 휴대폰을 빼앗아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살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쯤 되면 사이코패스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를 지나친 영화적 상상력이라고 흠잡기 힘든 것은 언론 보도를 통해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잔혹 보복 범죄를 심심찮게 보기 때문이다. 게임으로 만난 여성이 만나주지 않는다고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사건이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미래의 미라이(블루레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未来のミライ, 2018년)는 첫 장면에서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부감 샷으로 펼쳐지는 도시의 풍경이 마치 항공사진을 보는 것처럼 정교하고 세밀하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면 수채화처럼 아련한 느낌을 주는 색감의 그림들이 편안하게 펼쳐진다. 이 속에서 움직이는 캐릭터들은 사실적으로 그린 배경과 달리 둥글둥글하고 간략하게 선처리를 한 전형적인 만화풍 그림체다. 이 점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 '늑대아이' 등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사실적인 풍경 속에서 움직이는 만화 같은 캐릭터들이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를 강조한다. 내용은 4세 소년이 갓난아기인 여동생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다뤘다. 부모의 관심이 온통 아기에 집중되면서 철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