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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갑자기(블루레이)

울프팩 2023. 7. 15. 14:26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약한 고영남 감독은 100편이 넘는 작품을 연출한 다작 감독이다.

총 제작편수가 105편이어서 임권택 감독보다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작품은 거의 없다.

그만그만한 대중 영화들을 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1981년 개봉한 '깊은 밤 갑자기'는 단연 그의 연출력이 빛나는 공포물이다.

이 작품은 한국적 정서의 공포를 기괴한 영상과 사이키델릭한 음악으로 잘 표현했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적 정서란 무속신앙을 말한다.

내용은 부잣집 곤충학자(윤일봉)의 집에 어린 미옥(이기선)이 가정부로 들어오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뤘다.

 

당연히 학자의 아내 선희(김영애)는 한 집에 사는 미옥을 질투하고 시기한다.

그러면서 미옥이 가져온 무당 인형을 둘러싼 사건이 벌어진다.

 

무속 신앙과 연계된 무당 인형을 공포의 소재로 활용하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여인의 시기와 질투를 잘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성채처럼 고립된 집에서 가정부와 안주인 등 두 여자가 대립하는 기본 구조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떠올리게 한다.

 

높은 다락방을 이용한 장면 등 '하녀'를 참고했을 만한 장면들이 눈에 띈다.

기본 구조는 '하녀'와 흡사하지만 여러 장면 묘사에서 고 감독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특히 거실을 내리찍은 부감샷과 누워 있는 장면, 만화경 장면 등을 자주 활용해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상황을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다.

 

고인이 된 김영애가 한창때 미모를 뽐내며 강박에 시달리는 안주인 역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여기에 이기선 또한 과감한 노출과 섬뜩한 표정 연기로 극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

 

이처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고 감독의 뛰어난 연출과 영상 등이 잘 어우러진 이 작품은 한국 공포영화에서 단연 손꼽을 만한 수작이다.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16 대 9 화면비를 지원한다.

 

화질은 복원이 잘 돼서 비교적 좋은 편이다.

샤프니스가 높아서 윤곽선이 또렷하고 색상 또한 선명하다.

 

다만 화면 하단과 왼쪽 귀퉁이 등 일부분에 더러 미세하게 필름에 묻은 이물질이 간혹 보인다.

음향은 LPCM 2.0을 지원한다.

 

부록으로 정성일 평론가의 해설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프랑스 르노에서 만든 '르노4'가 등장. 이 차는 르노가 1961년에 생산한 배기량 603~1,108cc의 경차다. 시트로엥의 2CV와 아주 비슷해서 시트로엥이 표절 소송을 했다. 르노는 1992년 이 차의 생산을 중단했는데 아직도 동유럽 등지에서 볼 수 있다. '서울 0'이라는 이 장면의 차량 번호판에서 알 수 있듯 국내에도 수입됐다.
1960년생인 이기선은 1979년 TBC 탤런트로 데뷔해 KBS 'TV문학관'과 MBC '베스트셀러극장' '3840' 유격대' 등 1980년대 드라마에 많이 나왔다.
만화경 렌즈를 활용해 촬영한 장면.
두 마리 뱀이 마주보는 듯한 희한한 조형물 사이로 보이는 김영애의 모습이 마치 위협받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거대한 성채 같은 곤충학자의 집은 주변과 고립된 환경이어서 여인들에게 밀실이나 마찬가지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샷이 자주 등장.
가정부가 갖고 들어온 기이한 목각 인형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소재다.
타일로 만든 욕조가 붙어있는 예전 부잣집들의 전형적인 욕실. 고영남 감독은 1964년 29세 나이에 '잃어버린 태양'으로 감독 데뷔했다.
곤충학자로 등장한 윤일봉. 이야기의 대부분이 실내에서 진행된다.
한창 때 미모가 빛났던 김영애. 고 감독은 편집을 하다가 감독이 됐다.
이 작품은 1981년 개봉 당시 평단의 평이 좋지 않았고 관객도 2만8,000여명에 불과해 흥행 실패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2018년 이 작품을 4K로 디지털 리마스터링해서 재개봉했다. 블루레이는 이를 토대로 제작됐다.
살아있는 고양이, 박제된 새, 뱀을 연상케 하는 조형물 등 동물 모양을 공포심의 소재로 적절히 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