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3월 27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발생한 마우리찌오 구찌(Maurizio Gucci) 살해 사건은 꽤 충격적이었다.
사무실로 출근하다가 괴한이 쏜 네 발의 총탄을 맞고 숨진 그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세계적 명품업체 구찌(Gucci)의 상속자였다.
그런데 살인범을 잡고 보니 뜻밖의 범인이 따로 있었다.
살인을 교사한 배후는 바로 구찌의 이혼한 전처 파트리찌아 레지아니였다.
구찌 가문의 비극적인 집안사
백만장자였던 마우리찌오 구찌는 보잘것없는 운수업자의 딸 레지아니와 사랑에 빠져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다.
그러나 행복한 결혼 생활은 잠시였고 1983년 경영권을 승계받은 뒤부터 구찌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제품 판매는 예전같지 않았고 아버지 로돌프 구찌가 죽고 나서 야심 찬 집안사람들이 제각각 사업을 벌이면서 회사는 쪼개질 위기에 처했다.
급기야 심각한 재정압박을 받던 마우리찌오는 1993년 바레인의 투자전문업체 인베스트코프에 주식을 모두 팔고 회사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를 계기로 구찌는 정작 구찌 가문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이름 뿐인 회사가 돼버렸다.
회사뿐 아니라 마우리찌오의 사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아내와 사이가 틀어진 마우리찌오는 다른 여성을 사귀면서 1994년 이혼했다.
그 사이 전처 레지아니는 마우리찌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점성술사의 힘을 빌리기도 했지만 헛수고였다.
이혼 후 레지아니는 마우리찌오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이 커졌고 위자료도 턱없이 적다고 생각해 분노하다가 급기야 점성술사와 짜고 살인을 교사했다.
결국 레지아니는 5억 리라를 주고 남편을 청부 살해한 죄가 인정돼 1998년 29년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다가 2016년 모범수로 출소해 밀라노에서 살고 있다.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빚은 장대한 드라마
피비린내 나는 구찌 가문의 드라마틱한 몰락 과정은 이탈리아 패션지 '루나'의 편집장으로 일한 사라 게이 포든이 '하우스 오브 구찌'라는 책으로 펴냈다.
리들리 스코트(Ridley Scott) 감독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을 읽고 영화화를 결심해 만든 작품이 책 제목과 동일한 '하우스 오브 구찌'(House of Gucci, 2021년)다.
스코트 감독은 약 2시간 40분의 긴 상영 시간을 통해 원작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살렸다.
워낙 작가가 꼼꼼하게 조사해 책을 쓴 덕분에 더하거나 뺄 것이 없었다.
확실히 거장의 작품들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극적인 힘이 있다.
눈에 띄는 자극적 사건이나 볼거리가 없어도 인물들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극적으로 풀어낼 줄 안다.
이 작품도 그런 작품이다.
삼촌 집안 대 마우리찌오 부부가 맞붙은 집안싸움부터 후반 마우리치오와 파트리치아 부부의 격한 분쟁까지 인물들 사이에 튀는 작은 긴장의 불꽃을 어느 하나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는 배우들의 공도 컸다.
마우리찌오 구찌를 연기한 아담 드라이버(Adam Driver)를 비롯해 삼촌 알도를 연기한 알 파치노(Al Pacino), 회사 경영보다 영화를 더 좋아했던 우아한 부친 로돌포 역의 제레미 아이언스(Jeremy Irons),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사촌 파올로 역의 자레드 레토(Jared Leto) 등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다.
특히 자레드 레토는 알아보지 못할 만큼 완벽한 분장을 한채 불안정한 파올로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다만 팽팽한 긴장의 한축을 담당한 파트리치아 역의 레이디 가가(Lady GaGa)는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레이디 가가는 강렬한 연기를 펼쳤으나 배역과 궁합이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귀에 익숙한 1970, 80년대 음악들도 영화의 맛을 살리는데 한 몫 했다.
도나 섬머의 'Bad Girls', 조지 마이클의 'Faith', 유리스믹스의 'Here Comes the Rain Again', 블론디의 'Heart of Glass', 월터 머피의 'A Fifth of Beethoven', 영화 '캣피플' OST 중 조르지오 모로더가 만든 'To the Bridge' 등 학창 시절 FM라디오에서 많이 듣던 곡들과 모짜르트의 '마적',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푸치니의 '나비 부인' 등 클래식까지 흘러나와 귀를 즐겁게 한다.
카메라는 '라스트 듀얼' '마션'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프로메테우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등 스펙타클한 영화를 많이 찍은 다리우스 월스키가 잡았다.
그런데 훌륭한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포커스가 제대로 맞지 않은 장면들이 일부 보여 의아했다.
돈에 대한 욕심이 빚은 비극의 드라마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결국 부부 사이는 원수로 변하고 집안이 뿔뿔이 흩어지며 모든 것이 파국을 맞았다.
그 끝에 구찌라는 이름만 남았다.
1080p 풀 HD의 2.39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윤곽선이 깔끔하고 자연스러운 조명 덕분에 색상도 부드럽다.
DTS HD MA 7.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괜찮다.
배경 음악이 전체 채널에서 울리며 청취 공간을 감싼다.
소리의 이동성과 방향감도 좋다.
부록으로 제작과정, 배역, 스타일에 대한 내용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부록들도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다만 본편 한글 자막에 '럼주와 태양의...'를 '럼주과 태양의...'로 표기하는 등 오자가 옥의 티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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