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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다크 워터스(블루레이)

울프팩 2021. 6. 19. 12:53

국민학교 때인지 중고등학교 시절인지 기억은 명확하지 않지만 어머니가 갖고 싶어 하시던 주방용품 중에 테프론(Teflon) 프라이팬이 있었다.

전이나 계란 프라이 같은 지지고 볶는 요리를 해도 눌어붙지 않는 테프론 프라이팬은 꿈의 주방용기였다.

 

아무튼 1970, 80년대 테프론 프라이팬의 인기는 그만큼 대단했고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테프론 프라이팬을 만들어 전 세계에 팔아먹은 테팔(Tefal)은 떼돈을 벌며 주방용품의 명가가 됐다.

 

테팔이라는 사명 자체가 테프론과 알루미늄을 섞어서 만든 이름이다.

그만큼 테프론은 테팔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

 

끔찍한 발암물질 PFOA와 테프론

그런데 2000년대 이후 테프론의 인기는 예전만 같지 못했다.

이유는 테프론의 소재로 쓰인 퍼플루오로옥타노익 에시드(PFOA)가 뒤늦게 발암 물질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PFOA는 미국의 유명한 화학회사 듀폰(Dupont)이 개발해 테프론의 소재로 공급했다.

듀폰에서는 이를 C8이라는 상품명으로 불렀다.

 

듀폰이 1938년 불소와 탄소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 개발한 PFOA는 열에 강해 잘 타지 않으며 절연성능이 뛰어나고 마찰계수가 낮아 주방용품부터 의류, 콘택트렌즈, 세제, 반도체 세척제, 종이컵 등 여러 분야에 소재로 쓰였다.

그런데 PFOA는 몸 안에 들어가면 잘 배출되지 않는 잔류성 유기화합물이어서 각종 암과 갑상선 질환 등을 유발하고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듀폰은 PFOA 때문에 기형아를 낳거나 암에 걸린 3,535명의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하자 인체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듀폰은 수십 년 전부터 각종 동물 실험을 통해 PFOA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1960, 70년대부터 폐기물을 몰래 하천에 버리고 공장 주변의 땅을 사서 묻었다.

심지어 듀폰은 1962년 공장 노동자들에게 PFOA가 섞인 담배를 몰래 나눠주고 유해성을 확인하는 실험까지 했다.

 

담배를 피운 노동자들은 모두 병원에 입원했다.

당시에는 PFOA의 존재를 몰라서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영문도 모른 채 아프고 가축들이 죽어가고 치아가 검게 변색되는데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 놈들은 선을 넘었어."

하지만 피해자들이 늘어나면서 듀폰의 PFOA가 의심을 받아 결국 소송까지 가게 됐다.

이것이 미국에서 유명한 테넌트 사건이다.

 

목장을 운영하는 농부 윌버 테넌트는 듀폰이 목장 인근에 파묻은 화학 폐기물 때문에 190마리의 소들이 죽었다고 의심해 1998년 롭 빌럿 변호사를 고용해서 듀폰을 고소했다.

그럼에도 듀폰이 유해성을 인정하지 않는 바람에 법원 명령으로 의료기관에서 수년간 많은 돈을 들여 유해성 입증 실험을 해야 했고 2017년이 돼서야 총 6억7,070만 달러(약 8,000억 원)의 배상금 판결이 나왔다.

 

뉴욕 타임스의 나다니엘 리치 기자는 테넌트 사건의 전말을 2016년 심층 보도했다.

이 기사를 본 배우이자 환경 운동가인 마크 러팔로(Mark Ruffalo)가 영화 제작을 결심하고 만든 작품이 바로 토드 헤인즈(Todd Haynes) 감독의 '다크 워터스'(Dark Waters, 2019년)다.

 

영화는 사건의 전 과정을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충실하게 담았다.

그렇다고 사건에만 집중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처럼 무미건조하지 않다.

 

헤인즈 감독은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를 잘 살려 드라마로서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롭 빌럿(마크 러팔로) 변호사가 지하 주차장에서 불안감을 느끼며 달아나는 장면이나 아내 및 피해자들과 다투는 에피소드들을 보면 이들이 거대 기업과 싸우며 느끼는 공포와 분노, 좌절, 슬픔 등이 잘 묻어난다.

 

"사람들은 끔찍할 정도로 미국 기업들을 믿는다."

그러면서 진실의 무게를 더하기 위해 실제 피해자들을 과감하게 출연시켰다.

어머니가 듀폰의 PFOA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바람에 얼굴 기형으로 태어난 버키 베일리, 승소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윌버 테넌트의 동생 짐 테넌트, 실제 롭 빌롯 변호사 부부 등이 영화 곳곳에 카메오로 등장한다.

 

그만큼 당사자들에게는 사건의 진실을 알리려는 절박함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이런 모습에서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거대 기업과의 싸움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피해자들의 승소를 통해 진실은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영화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은 편이다.

 

전체적으로 영화 분위기상 무채색에 가까운 차분한 톤의 색감이 안정적으로 재현된다.

입자감이 느껴지지만 전체적으로 윤곽선도 깔끔하고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없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성격상 음향 효과가 요란한 영화는 아니다.

 

부록으로 제작과정, 감독 소개, 제작진 인터뷰, 배우들 인터뷰와 예고편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듀폰이 파커즈버그에서 PFOA를 생산하며 나온 폐기물을 드라이런이라는 매립지에 묻은 뒤 주변 목장의 가축 190마리가 이상 행동을 하다가 죽었다.
듀폰은 웨스트버지니아 파커스버그 공장에서 PFOA를 생산하며 많은 지역 주민들을 고용하고 지역 사회에 여러가지를 제공해 주민들 사이에서는 좋은 기업으로 인식됐다.
마크 러팔로는 뉴욕 타임스 기사를 읽고 영화 판권을 구입한 뒤 롭 빌럿 변호사를 직접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1938년 듀폰연구소의 화학자 플랭케 박사가 최초로 테프론을 만들었다. 이를 프랑스 기술자 마르크 그레고아르가 가져다가 음식이 눌어붙는 프라이팬 때문에 짜증을 내는 아내를 보고 프라이팬 코팅을 생각해 제품을 만들었다. 그레고아르는 1956년 테팔을 설립해 테프론 프라이팬을 판매했다.
촬영은 주로 신시내티에서 했다.
실제 자료 화면으로 쓰인 세계 각국의 뉴스 보도화면 중 엄기영 앵커가 진행한 MBC 뉴스 장면이 나온다.
어머니가 듀폰의 PFOA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바람에 얼굴 기형을 갖고 태어난 버키 베일리가 카메오 출연. 
처음 소송을 제기해 듀폰의 PFOA를 세상에 알린 윌버 테넌트는 소송이 끝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동생 짐 테넌트가 카메오 출연.
듀폰을 상대로 20년 가까이 소송을 이끌어 승소한 롭 빌럿 변호사 부부도 화학협회 리셉션 장면에 깜짝 출연했다.
듀폰은 유해성이 알려지기 전까지 PFOA로 연 10억 달러를 벌었다. 재판 승소 후 PFOA는 전세계적으로 사용 금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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