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애스터(Ari Aster) 감독의 '미드소마'(Midsommar, 2019년)는 참으로 아름다운 공포물이다.
공포와 아름다움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주는 공포는 배가 된다.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상황에서 불현듯 닥치는 공포는 그럴 법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공포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다.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공포
어떻게 공포가 아름다울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면 일단 영상을 봐야 한다.
영화는 스웨덴의 가상 마을인 호르가에서 90년에 한 번, 9일 동안 벌어지는 백야의 하지 축제를 다뤘다.
제목 미드소마는 바로 이 하지 축제를 의미한다.
늦은 밤까지 해가 눈부시도록 밝은 이 마을의 여름 축제는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답다.
사방에 꽃들이 만발하고 푸른 초원은 마음마저 시원하게 만든다.
곱게 흰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은 너무나도 선하고 친절하다.
하지만 그들의 전통적인 풍습은 그렇지 못하다.
이들이 집단 공동생활을 하며 보여주는 이교도적인 모습은 더할 수 없이 충격적이고 섬뜩하다.
왜 아이들과 노인들이 잘 안 보이는지,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일들이 하나씩 둘씩 풀리면서 몸서리치게 된다.
더더욱 무서운 것은 호르가 사람들에게는 기괴한 일들이 그저 아름답게 지켜야 할 관습일 뿐이며 이를 이방인들에게 세뇌하듯 주입시키는 점이다.
그렇게 낯선 마을을 찾아든 이방인들은 어느새 그들의 포로가 되고 희생자가 되며 원치 않는 동조자가 된다.
이 과정을 아리 애스터 감독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듯 담담하게 그려 나간다.
범상치 않은 일들이 그렇게 무덤덤하게 일어나니 더 무서울 뿐이다.
기괴한 의식처럼 치르는 정사 장면이나 마을 처녀들이 공감하듯 여주인공 대니(플로렌스 퓨, Florence Pugh)와 울어주는 장면은 집단 히스테리를 보는 것 같다.
그렇게 집단 히스테리에 매몰돼 가는 사람들과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 나치즘이나 스탈린 치하의 전체주의 국가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정사 장면이 섹시하지 않고 무서운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일 것이다.
플라워 무브먼트 공포물 또는 싸이키델릭 공포물의 등장
호르가 마을을 찾은 미국 청년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극도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있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천둥벌거숭이도 있으며 우울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현실도피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친구도 있다.
그렇게 파편화된 각각의 모습도 결국 종착점은 하나로 귀결된다.
모든 것을 무위로 되돌리는 죽음이다.
호르가 사람들은 이를 자연스러운 순환으로 본다.
그렇게 사라져 대지의 거름이 되면 다시 또 다른 생명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불교의 윤회설 같은 호르가 사람들의 믿음은 "필연적인 죽음을 기다리다 죽는 것은 영혼을 더럽히는 것"이라는 대사에서 잘 드러난다.
그들에게 죽음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아름다운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플라워 무브먼트 공포물이라고 부를 만하다.
즉 환각에 취한 듯 아름다운 자연과 공포스러운 상황으로 몰고 가는 싸이키델릭 공포물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아리 애스터 감독의 기발한 상상력과 놀라운 연출 솜씨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는 대비되는 상황을 적절하게 잘 활용해 공포의 충격을 강조했다.
인트로에 등장하는 겨울 같은 도시 풍경과 한여름의 평화로움으로 충만한 스웨덴 마을은 서로 대척점에 놓여 있다.
그 속에서 여주인공은 지옥 같은 과거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오히려 아름답지만 더 무서운 현실의 공포를 맞게 된다.
이를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룬 문자처럼 보이도록 찍은 부감 샷, 꽉 들어차는 미장센은 아니지만 동양화처럼 여백을 두고 찍은 영상을 통해 서정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꽃과 흥겨운 축제, 자연이 어우러진 영상은 너무 아름다워서 더 비극적이다.
170분으로 늘어난 감독판 블루레이
새삼 아리 애스터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그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의 할리우드판 리메이크작을 감독한다.
그는 장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를 굉장히 좋아해서 '미드소마'를 만들 때도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만큼 이 작품을 어떻게 해석할지 기대된다.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감독판과 극장판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감독판은 147분의 극장판보다 20분 이상 늘어난 170분 분량이다.
1080p 풀 HD의 2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깔끔한 윤곽선과 화사한 색감이 잘 살아 있다.
집단 숙소의 섬세한 문양 등이 또렷하게 보일 만큼 디테일도 좋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괜찮다.
각종 효과음이 사방을 가득 채운다.
부록으로 감독판에 이동진 평론가 해설, 극장판에 제작과정, 피겨 홍보 무비와 예고편 등이 들어 있다.
극장판 부록은 한글자막을 지원하며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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