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추천 DVD / 블루레이

음식남녀(블루레이)

울프팩 2020. 7. 14. 00:31

음식은 누군가에게 기쁨일 수 있고 누군가에는 슬픔이나 잔인한 추억일 수 있다.

대만(Taiwan)의 이안(Ang Lee) 감독은 '음식남녀'(飮食男女, Eat Drink Man Woman, 1994년)에서 요리를 통해 사람들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인생을 그렸다.

 

호텔 주방장을 지내며 오래도록 요리를 한 주 선생(랑웅)은 매주 한 번씩 홀로 키운 세 딸들을 위해 성대한 저녁을 차린다.

그에게는 근사한 만찬을 준비하는 것이 나름 가족의 유대와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저녁 자리가 즐겁지는 않다.

의례히 치르는 통과의례처럼 세 딸과 아버지는 저녁자리에 함께 앉지만 그다지 많은 대화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가 한 상 가득 차린 음식이 부담스러울 뿐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매주 한 번의 만찬을 고집한다.

 

다 자란 세 딸들은 둥지를 떠나는 새들처럼 각자의 독립된 삶을 꿈꾼다.

대학생인 막내딸(왕유문)은 저녁 자리에서 느닷없이 임신 사실을 알려 가족들을 까무러치게 한 뒤 어린 신랑과 살림을 차려 나간다.

 

고교 선생인 첫째 딸(양귀매, Yang Kuei Mei)은 가족과 상의 한 번 없이 혼인신고를 한 뒤 남편을 데려와 아버지를 놀라게 한다.

야무진 둘째 딸(오천련, Wu Chien Lien)은 항공사에서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지만 전재산을 사기 분양에 투자했다가 다 날린다.

 

둘째 딸은 결혼보다 적당히 남자들을 만나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을 즐긴다.

그렇게 세 딸의 변화를 지켜보며 아버지는 세상이 달라지는 것을 절감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묘미는 후반부에 있다.

전통과 가족을 지키려는 아버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그런 변화를 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막판 반전은 포복절도할 만큼 유쾌하고 즐겁다.

어찌 보면 예상 가능한 일이면서 허를 찌르는 반전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이안 감독은 이런 변화를 요리를 통해 표현한다.

아버지가 정성스럽게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과 호텔에 급파돼 일을 돕는 모습, 그리고 친구 딸(실비아 창, Sylvia Chang)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모습을 통해  그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묘사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딸들의 모습도 요리 속에 녹아들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막내딸은 인스턴트 음식처럼 벼락 치듯 그의 삶에 변화를 맞는다.

 

가장 아버지를 닮은 둘째 딸은 요리를 좋아하지만 주방 출입을 엄격하게 금하는 아버지 때문에 요리 솜씨를 정작 집에서 발휘하지 못하고 남자 친구 집에서 뽐낸다.

그는 남자 친구에게 요리를 해주면서 또 다른 기쁨과 삶의 보람을 찾는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가 요리를 허락하는 것은 단순히 사고의 변화가 아닌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는 그렇게 세대 변화를 받아들인다.

 

눈길을 끄는 것은 둘째 딸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어릴 적부터 살았던 오래된 집을 물려받아 가족의 전통을 지키는 것은 가장 자유분방한 삶을 살 것 같던 둘째 딸이다.

 

세상이 급격하게 변한다 해도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소소한 유머와 생각할 거리를 함께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이안식 블랙 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한동안 무명으로 지내며 힘든 시기를 보낸 이안 감독이 대중적 인기를 얻고 할리우드(Hollywood)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대만 아버지 3부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다.

그만큼 가벼운 소품처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작품이면서 대만인의 삶, 정확히 말하면 대만으로 건너간 중국인들의 삶을 이채롭게 녹여낸 영화다.

 

'헐크'(Hulk)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등 할리우드 영화로 이안 감독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만인으로서 살았던 삶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웰메이드 영화인 '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이나 '색계'(Lust, Caution)와도 결이 다르다.

 

유명세를 얻은 이후에 만든 화려한 작품들과 달리 이안 감독의 본바탕을 확인할 수 있는 수수하지만 진솔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적극 추천한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이 작품의 블루레이(Blu-ray)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일단 윤곽선이 두텁고 예리하지 않으며 간간히 플리커링도 보여 아주 좋은 화질이라고 하기 힘들다.

DTS HD MA 2.0을 지원하는 음향은 대사 음량이 작은 편이어서 아쉽다.

 

부록으로 감독 인터뷰가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대만에 처음 가서 놀랐던 것은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였다. 베트남 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이안 감독은 이 또한 대만의 변화로 보고 일부러 초반에 이런 영상을 넣었다.
햄버거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막내딸. 웬디스 유니폼이 반갑다. 서울 종로에도 탑골공원 맞은편에 웬디스가 있었다. 정태춘의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에도 웬디스 이야기가 등장한다.
극 중 아버지의 모습에는 감독의 삶도 투영돼 있다. 이안 감독은 유명해지기 전인 37세까지 6년간 아내의 수입에 의존해 살았다. 그 시절 그는 집에서 요리하고 아이들을 키웠다.
이안 감독은 영화를 통해 대만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대만의 풍경, 생활상 등이 곳곳에 등장한다.
주 선생은 전통적인 중국 부모를 상징한다. 유교 가정의 많은 아버지들이 그렇듯 이상할 정도로 딸들과 대화가 없다.
1954년 대만에서 태어난 이안은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피해 대만으로 건너온 지주집안의 장남이었다.
중국의 지주였던 이안 감독의 조부모는 사회주의혁명때 처형당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고교 교장으로 일하면서 아들이 교사나 교수가 되기를 원했다.
첫째 딸이 교사로 근무하는 극 중 학교는 대만의 최고 명문고를 염두에 뒀다. 이안 감독은 성적이 좋지 않아 대입 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져 아버지를 실망시켰다.
이안 감독은 1975년 타이완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1979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일리노이대학을 나왔다.
요즘 일부 프로젝트파이낸싱처럼 부동산 사기 분양의 모습이 나온다. 이안 감독은 영화감독을 꿈꿨으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6년간 일이 없어 아내의 수입으로 살았다.
딸의 친구로 나온 실비아 창(장녀가). 우리에게는 '최가박당'의 여형사로 잘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임청하와 함께 쌍벽을 이룬 배우였던 그는 홍콩 최초의 배우 출신 여성감독이기도 하다.
마사지숍이 결합된 대만식 목욕탕 모습. 이안 감독은 37세때인 1992년 대만 국립영화사인 중앙전영공사의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1등상을 받으며 영화계에 입문해 첫 작품 '쿵후선생'을 찍었다.
이안 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며 단짝인 제임스 사뮤스를 만났다. 뉴욕에서 영화사를 운영하던 샤무스는 이안 감독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오랫동안 제작자 겸 시나리오 작가로 함께 일했다.
다른 영화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대만의 공동 묘지. 이 작품은 이안 감독이 여성올 소재로 만든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이안 감독이 대만을 배경으로 만든 유일한 영화다.
이안 감독은 관객의 흥미 유발을 위해 일부러 음식 만드는 과정을 보여줬다.
영화 속 저녁 모임은 의례적인 것이다. 가족간에 진정한 사랑이나 교감을 느끼기 힘들다.
'천장지구'로 우리에게 익숙한 오천련이 둘째딸로 등장. 영화 음악은 프랑스 출신 마데르가 맡았다.
요리 장면은 5명의 요리사들이 돌아가며 찍었다.

 
 
음식남녀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음식남녀 (1Disc 풀슬립) : 블루레이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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