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 일본이 자랑할 만한 전력은 해군이었다.
아카기, 히류, 즈이가쿠, 카가 등 6척의 항공모함과 여기 탑재된 제로센 전투기는 태평양 전쟁의 서막인 진주만 기습의 주역이었고 세계 해전의 향배를 거함 거포주의에서 항공결전 시대로 바꿔 놓는데 일조했다.
당시 일본군들이 레이센, 즉 영전(零戰)이라고 부른 제로센 함상전투기는 가벼운 기체 덕분에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시속 533km의 속도를 자랑했다.
그만큼 빠르고 기동성이 좋아서 개전 초기 공중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로센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4척의 항모와 함께 경험많고 우수한 조종사들이 대거 수장되며 더 이상 개전 초기의 우위를 이어가지 못했지만 당대 세계 최정상급 전투기였다.
이를 만든 사람이 미쓰비시 중공업의 설계주임이었던 호리코시 지로였다.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은퇴를 선언하고 만든 마지막 작품 '바람이 분다'(2013년)는 호리코시 지로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실존 인물인 그가 제로센을 설계하는 과정에 호리 다쓰오의 원작 소설 '바람이 분다'를 섞어서 만들었다.
주인공은 지로를 모델로 했고, 이면에 녹아 있는 여인과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는 소설을 토대로 했다.
즉 적당히 허구와 사실이 뒤섞이면서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감성 애니로 재탄생했다.
그렇다 보니 우리 입장에서는 이 작품이 불편해 보일 수 밖에 없다.
하필 침략 도구를 만든 사람을 미화한 이야기가 결코 피해자 입장에서 좋게 보일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전쟁 도발 행위을 변명하거나 정당성을 주장하는 등 극우적 메시지를 강조한 작품은 아니니 지나치게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영웅 만들기식 전투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도 불편한 시선을 의식한 듯 "비행기는 전쟁 도구가 아니다. 비행기는 꿈이고 설계가는 꿈을 형태로 만드는 사람"이라는 주인공의 독백을 변명처럼 집어 넣었다.
마치 이런 작품을 만든 이유를 에둘러 변명하는 감독의 독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설령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변명처럼 보일 수 밖에 없는 역사의 질곡을 감독 또한 이해해야 한다.
이 같은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상당히 서정적이다.
언제나 그렇듯 손그림에 기반한 정감어린 그림이 지브리의 전매특허인데 이 작품에서도 이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인물들이 풀어내는 가슴아픈 순애보를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한 색감으로 은은하게 묘사했다.
여기에 히사이시 조의 멜랑콜리한 음악까지 더해져 지브리 특유의 서정미가 더욱 부각된다.
특히 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너른 초원 위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흐르는 장면은 절로 가슴을 일렁이게 만든다.
비록 소재는 흠결이 있을 지라도 그림과 음악 만으로도 이를 덮고 남을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직까지 국내에 블루레이 타이틀로 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서 나온 블루레이 타이틀에 한글 자막이 들어 있다.
1080p 풀HD의 16 대 9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최근작답게 윤곽선이 깔끔하고 색감은 손에 묻어날 듯 선명하다.
음향은 LPCM 2.0 채널을 지원한다.
부록으로 1시간이 넘는 제작진 인터뷰 영상과 뮤직비디오, 각종 예고편, 콘티 등이 HD 영상으로 수록됐는데 여기에는 한글 자막이 없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play 표시가 있는 사진은 PC에서 play 버튼을 누르면 관련 동영상이 나옵니다.*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기획하고 연출했으며 각본까지 썼다. 원작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구절은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 중 한 구절이다.
이 작품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비행기 설계사였던 실존인물 호리코시 지로의 삶을 다뤘다. 1903년생인 그는 파일럿을 꿈꾸었으나 포기하고 도쿄대 항공학과를 수석 졸업한 뒤 1927년 미쓰비시중공업에 입사했다.
관동대지진의 아비규환도 등장하지만 조선인 학살 등 아픈 역사는 역시 나오지 않는다. 통사를 다룬 게 아닌 개인의 미시사를 다룬 작품이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이 또한 불편하게 보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비행기, 증기기관차, 자동차 등 각종 탈 것과 지진, 바람 등의 각종 효과음을 모두 사람의 목소리로 녹음했다.
호리코시 지로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츠비시중공업이 분할되며 생긴 중일본중공업(신미츠비시 중공업)에 근무했다. 이후 일본 방위대 교수 등을 지내다가 1982년에 사망했다.
제로센은 항모 탑재를 위해 주익의 끝을 접을 수 있도록 설계했으며 보조연료탱크를 우선 소비한 뒤 투하할 수 있는 혁신적 방법을 도입했다.
극 중 지로가 아내와 벌이는 로맨스는 실화가 아닌 호리 다쓰오의 소설 '바람이 분다'를 토대로 만들었다. 1904년생이었던 호리는 19세때 결핵을 앓았고, 약혼녀도 결핵으로 잃었다. 자신의 이런 경험을 소설로 옮겼으나 1953년 결국 결핵으로 세상을 떴다.
제로센의 가벼운 기체는 스미토모금속에서 개발한 두랄루민 덕분이었다. 제로센 명칭은 실전 배치된 1940년이 일본 연호로 황기2600년이어서 여기서 끝의 0을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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