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7월,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때문에 골치를 앓던 이스라엘은 PLO의 미사일 기지를 없애기 위해 레바논 남부를 점령하고 안전구역을 설정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기서 그치고 않고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의 주도로 바시르 제마일이 이끄는 기독교 정당 팔랑헤당이 정권을 잡도록 지지했다.
레바논은 기독교,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와 종파가 뒤섞인 국가다.
이스라엘은 1975년 내전 이후 이슬람과 기독교로 나뉜 레바논에 팔랑헤당을 후원해 친 이스라엘 정부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지지한 바시르 제마엘은 대통령 취임 9일 전인 82년 9월 14일에 폭탄 테러로 암살당했다.
당수를 잃은 레바논의 팔랑헤당은 9월16일에 200명으로 추정되는 민병대를 이스라엘군이 봉쇄한 팔레스타인 난민촌 사브라와 샤틸라로 보냈다.
PLO 테러리스트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난민촌을 습격한 팔랑헤 민병대는 이스라엘군이 탱크로 봉쇄하고 조명탄을 밝혀준 가운데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난민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차별 학살했다.
처음부터 복수를 하기 위해 난민촌을 덥친 민병대가 죽인 희생자들은 레바논 경찰 집계로 460명, 이스라엘 집계는 900명, PLO 집계는 3,000명이었다.
팔랑헤 민병대가 덥친 난민촌에 PLO는 없었다.
그들은 이미 시리아로 거처를 옮긴 뒤였다.
팔랑헤당이 벌인 무자비한 학살은 뉴욕타임스 레바논 특파원의 보도로 전세계에 퍼졌고, 학살을 방조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이스라엘에서도 정부를 비난하는 시위가 일어 대법원장 이츠하크 카한을 중심으로 한 카한위원회가 구성돼 이 사건을 조사했다.
결국 아리엘 샤론 국방장관은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하지만 그는 20년 뒤인 2001년 이스라엘 총리로 복귀했다.
학살극을 주도했던 엘리 호베이카 팔랑헤당 민병대의 정보책임자는 이후 시리아편으로 돌아서 시리아의 후원을 받다가 2002년 1월에 암살됐다.
레바논은 이 사건 이후 기독교도인 팔랑헤를 배척하고 오히려 이슬람 계열의 헤즈볼라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게 됐다.
우리네 노근리 학살을 연상케 하는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 사건을 이스라엘의 아리 폴만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이 바로 '바시르와 왈츠를'(Waltz with Bashir, 2008년)이다.
이 작품은 참으로 독특하다.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지만 모든 내용은 실존 인물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사실이다.
감독 자신이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 사건 당시 이스라엘 군에서 복무했으며, 당시 여러 부대에서 근무한 인물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 뒤 작품을 만들었다.
비록 직접 학살에 가담해 총을 쏜 것은 아니지만 감독을 포함해 이 사건을 목도한 사람들은 지금도 그 기억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다.
그 같은 괴로움이 결국 양심고백같은 이 작품을 이끌어 냈다.
각본, 감독, 제작 및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역할까지 맡은 폴만 감독은 정교하거나 세련된 컴퓨터 그래픽 대신 툭툭 끊어지는 플래시컷 아웃 애니메이션 방식을 택했다.
플래시컷 아웃 애니메이션은 인물의 얼굴을 100여개 조각으로 나눈 뒤 상황에 따라 특정 조각이 움직이게 하는 방법이다.
그 바람에 영화는 움직임이 투박한 거친 느낌을 주지만 반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황색과 흑색을 주조로 한 색조 또한 거칠고 황량한 느낌을 준다.
일부에서는 이스라엘군의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는 비난도 있지만, 오히려 애니메이션 방식과 색감이 직접적인 내용으로 말하지 않은 반전 메시지를 전달한다.
보기 힘든 이스라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떠나서 독특한 방식과 무게있는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한 영상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는 훌륭한 애니메이션이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뛰어나다.
블루레이 특유의 빼어난 샤프니스 덕에 선이 뚜렷하게 살아 있고 색감이 명료해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제대로 살렸다.
음향은 히브리어 돌비트루HD 5.1 채널을 지원한다.
리어 활용도가 높아 서라운드 효과가 잘 발휘되며 저음 또한 웅장하고 박력있다.
부록으로 감독의 음성해설, 감독 인터뷰, 제작과정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이 가운데 감독의 음성해설, 제작과정은 DVD에 없고 블루레이 타이틀에만 포함된 부록이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야기 진행을 맡은 턱수염 난 인물이 바로 아리 폴만 감독이다. 실제 감독과 닮았다. 그의 너머로 보이는 안경 쓴 사람은 애니메이터 겸 예술 감독인 데이비드 폴론스키.
폴만 감독은 45세까지 복무하는 이스라엘 예비군을 40세에 조기 전역하는 조건으로 군인들의 상담업무를 맡았다. 그때 기억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구상했다.
이 작품은 3D와 2D를 혼합한 플래시컷 아웃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했다. 플래시컷 아웃이란 얼굴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얼굴을 8부분으로 나누고 각 부분을 다시 15개로 나눠 총 120개 조각으로 분할한 뒤 컴퓨터 플래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해 각 조각이 따로 움직이도록 작업하는 것을 말한다.
플래시컷 아웃은 이 작품에 참여한 요니 굿맨이 개발했다. 초반 26마리 개 이야기의 주인공인 보아즈 레인은 감독의 친구다.
내용은 주인공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끔찍한 경험 탓에 순간적으로 특정 시점을 기억하지 못하는 스트레스성 기억 장애 해소를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나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을 재구성하는 이야기다.
가지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표현이 예술이다. 감독은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과거를 되짚는 내용을 통해 "전쟁은 무고한 사람만 희생 당하는 결코 명예롭지 못한 행위"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품에 흐르는 'Good morning Lebanon'이라는 노래는 감독 친구들이 만들었단다.
여인은 감독의 아내를 모델로 그렸다.
감독에 따르면 이스라엘 애니메이션은 61년에 나온 스톱모션 애니 '꿈꾸는 요셉'이 최초 작품이고, 이 작품이 두 번째이다.
1982년에 대통령이 된 바시르는 기독교인들 사이에 컵, 시계, 반지 등 온갖 물건에 그의 얼굴을 새길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물론 이스라엘도 그를 지지했다.
반면 이슬람교가 주축이 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레바논 남부를 점령한 이스라엘군을 상대로 테러를 벌여 이스라엘의 골치거리였다.
1982년 당시 이스라엘에는 VTR이 별로 없었다. 이스라엘군은 점령한 남부 레바논에서 처음으로 포르노를 접했다. 당시 레바논에는 집집마다 VTR이 있었고 대부분 포르노를 갖고 있었다.
이 같은 시대상을 묘사하기 위해 폴만 감독은 포르노 영상 재현을 고집했으나 일부 제작진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었다.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 당시 이스라엘군이 직접 발포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지켜보았다는 점에서 방조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폴만 감독은 당시 군 지휘관들이 팔랑헤 민병대의 학살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 작품에 증언한 인터뷰이들은 폴만 감독이 레바논전 참전 경험을 듣고 싶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모집.
폴만 감독은 이스라엘군이 대마초를 피고 술을 마시는 등 문제가 될 만한 장면들도 솔직하게 묘사했다.
이 작품은 음악도 훌륭하다. 작곡은 막스 리히터가 담당.
폴론스키는 선이 너무 말끔하게 나오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왼손으로 그렸으나 적응이 되는 바람에 역시 선이 매끈하게 나왔다.
기독교도인 팔랑헤 민병대의 학살은 잔혹했다. 사람들의 가슴에 칼로 십자가를 긋고 어린아이까지 무참하게 총살했다.
폴만 감독은 당시 학살 현장을 담은 기록 영상을 엔딩에 삽입해 강렬한 충격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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