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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블루레이)

울프팩 2011. 4. 8. 17:02

아버지가 무성 영화 시절 유명한 감독이었던 덕분에 어려서부터 영화를 보고 자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평생을 미국에 대한 동경과 비판을 갖고 살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이탈리아에서 주당 3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볼 정도로 미국 영화에 푹 빠져 살았다.

그만큼 할리우드 영화는 그의 작품 세계에 교과서가 됐다.
정통 서부극을 뒤집은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로 스파게티 웨스턴을 이끌었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서는 피와 땀을 먹고 자란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서부극 형식을 빌어 냉철하게 꼬집었다.

급기야 그는 한평생 동경해 마지 않았던 미국에 대한 꿈을 마지막 작품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년)로 정리한다.
이 작품은 금주법 시대인 192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관통하며 미국인들이 간직하던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헤집어 놓았다.

레오네는 미국에 발을 디딘 4명의 청년들이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지만 결국 그들이 꿈꾸었던 성공은 아편굴의 아편 연기처럼 허망한 것이라는 점을 한 편의 대서사시로 이야기한다.
그 속에는 화물운송노조와 마피아의 결탁, 경찰의 부패 등 서부개척 시대부터 이어지는 미국의 어두운 잔혹사가 면면히 녹아 있다.

장장 4시간 가까운 상영 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은 것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완벽주의가 빚은 수려한 영상과 뛰어난 이야기 구성력, 로버트 드니로와 제임스 우즈 등 배우들의 탄탄학 연기력 덕분이다.
여기에 레오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단짝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음악이 뒤를 받쳤다.

새삼 레오네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거장인 지를 실감할 수 있는 수작이다.

1080p 풀HD의 1.78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과거 2장의 DVD에 들어 있던 내용을 한 장에 모두 담았다.
화질은 최신작처럼 샤프니스가 아주 높지는 않지만 비교적 깨끗하게 복원돼 괜찮은 편이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도 편안한 소리를 들려준다.
부록으로 평론가 음성해설과 제작과정 등이 들어 있는데, 제작과정에만 한글 자막이 들어 있다.
예전 국내 출시된 DVD 타이틀에는 음성해설에도 한글 자막이 들어 있는데 이번 블루레이에는 한글 자막이 누락돼 아쉽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 play 버튼이 붙은 사진은 버튼을 누르시면 관련 동영상이 재생됩니다. *

이 작품의 상징같은 장면. 멀리 보이는 브루클린 다리를 가운데 두고 청년들이 도로를 지날 때 흐르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가슴을 아련하게 만든다.
원래 이 작품의 상영 시간은 204분인데 미국에서는 1시간 반이 잘려나갔고, 국내에서는 추가로 30분이 더 잘려 나갔다. 자른 이유는 제작 및 배급사가 상영 횟수를 늘려 돈을 더 벌기 위해서였다. 레오네 감독은 이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겨 229분짜리 감독판을 내놓았다. 블루레이는 감독판을 수록했다.
목숨처럼 사랑했던 친구들의 엇갈린 운명을 다룬 점은 우리 영화 '친구'와 닮았다.
레오네 감독의 전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 여주인공이었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이 작품의 캐롤 역을 욕심냈으나 감독의 반대로 튜스데이 웰드가 연기했다.
이 작품은 본명이 해리 골드버그인 해리 그레이가 쓴 소설 '더 후드'가 원작이다.
원작은 젊은 시절 마피아였던 작가의 반 자전적인 소설이다. 여기에 각본 작업까지 참여한 레오네 감독이 일부 이야기를 첨가했다.
이 작품에서 돋보인 배우는 의외로 아역인 제니퍼 코넬리다. 그는 여주인공인 데보라의 아역을 맡았다.
예전 국내 출시된 DVD 타이틀에는 별 것도 아닌 이 장면이 모자이크 처리됐다.
숨이 콱 막히게 만드는 레오네 영상의 정점을 보여주는 기가 막힌 장면. 높다란 벽 앞에 선 작은 인간들을 통해 오히려 스크린이 더 거대해 보이게 만든다.
제임스 우즈가 연기한 맥스 역 후보에는 리차드 드레퓨스도 물망에 올랐다.
여주인공 데보라를 연기한 엘리자베스 맥거번. 당시 나이가 어려 그런지 모르겠지만 표정 연기가 어설펐다.
호텔 레스토랑 장면은 베니스에서 촬영.
드니로가 데보라를 강간하는 장면에서 운전사로 잠깐 나온 인물이 이 영화의 제작자 중 하나인 아논 밀천이다.
영화는 미국의 암부 중 하나인 노조와 마피아의 결탁을 다루고 있다. 1930년대 본격적으로 결성된 노조는 실제 마피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노조원을 납치해 협박하는 부분은 미국 개봉시 삭제됐다.=
마이애미 해변으로 나오는 곳은 세인트 피터스버그의 돈 세자르 리조트이다.
원래 로버트 드니로는 주인공인 누들스의 젊은 시절만 연기하고 노년은 다른 배우가 할 예정이었으나 드니로의 연기를 본 레오네 감독이 생각을 바꿔 노년까지 연기하도록 했다.
주인공 누들스는 첫사랑, 친구, 돈 등 모든 것을 잃은 상실의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아메리칸 드림의 상실감을 다루고 있다. 이 장면에서 레오네 감독은 기차표 판매원으로 깜짝 출연한다.
드 니로의 웃음 만큼이나 여러가지 추측을 낳은 엔딩. 과연 제임스 우즈가 연기한 맥스는 쓰레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했는가, 아니면 사라졌는가. 논란이 많았지만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인 셈이다. 다만 드 니로의 웃음은 여러 가지를 암시한다. 그가 취해서 내뱉는 아편 연기처럼 일정 시점의 이야기는 환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낯이 익다. 레오네 감독은 그물같은 침대 천장을 투과해 누워 있는 인물을 내려다보는 독특한 샷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서 한 번 써먹었다. 이 작품을 끝으로 레오네 감독은 89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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