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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아르고(4K)

울프팩 2022. 9. 17. 00:08

때로는 현실이 더 거짓말 같을 때가 있다.

배우 벤 애플렉(Ben Affleck)이 주연하고 감독까지 맡은 영화 '아르고'(Argo, 2012년)는 거짓말 같은 현실을 다룬 작품이다.

 

오랜 세월 철권통치를 일삼던 무하마드 리다 팔레비 국왕이 쿠데타로 쫓겨난 뒤 이란은 혁명세력이 장악한다.

호메이니로 대표되는 이슬람 원리주의 혁명세력은 미국을 등에 업고 폭정을 일삼은 팔레비 때문에 미국에 적대적이다.

 

그 바람에 테헤란에 있던 미국 대사관은 혁명 세력의 공격을 받고 직원 60명이 인질로 잡혔다.

이 중 6명만 겨우 몸을 빼내 캐나다 대사관저로 피신한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미국 정부는 극비리에 이들을 구할 방법을 세운다.

그래서 CIA의 인질구출 전문가 안토니오 멘데스가 고안한 방법이 장소 헌팅을 온 할리우드의 영화제작팀처럼 꾸며 탈출하는 방법이다.

 

멘데스는 우연히 TV에서 방영한 영화 '혹성탈출'을 보고 구출 작전의 영감을 얻었다.

멘데스는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 로버트 사이델과 특수효과 전문가 존 챔버스와 손잡고 황폐한 혹성에서 괴물들과 싸우는 공상과학 영화를 준비한다.

 

그 영화 제목이 바로 아르고다.

아르고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영웅들인 이아손과 헤라클레스 등이 황금 양털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날 때 탔던 배 이름이다.

 

미국 정부는 이란뿐 아니라 세상을 속여야 작전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보고 영화사 사무실을 얻고 신문에 광고까지 내며 대대적으로 영화 제작을 홍보했다.

멘데스는 우여곡절 끝에 대사관 직원들을 빼오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극비로 분류해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공개된 것은 1997년,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CIA가 50주년을 맞아 세상에 알릴 만한 영웅 50명을 선정하며 멘데스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국가 비밀은 해제됐지만 세상 사람들이 제대로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다.

 

기자 조슈아 베어만이 이 내용을 '와이어드'지에 'the great escape'라는 제목의 기사로 실어 빛을 보게 됐다.

한마디로 영화가 사람의 목숨을 구한 사건이었다.

 

이를 배우 조지 클루니가 보게 됐고 벤 애플렉과 의기투합해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는 흥미진진한 탈출 과정을 실감 나게 그렸다.

 

다큐멘터리처럼 단순 사실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긴장과 위기 상황을 흡입력 있게 잘 그렸다.

특히 막판 탈출장면에서 가슴을 조이는 긴장감이 압권이다.

 

이야기는 실제 사건에서 빌렸지만 캐릭터에 윤기를 불어넣은 것은 각본과 연출의 힘이다.

벤 애플렉은 실존 인물과 비슷한 배우들을 최대한 섭외하고 1970년대 미국과 이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영화는 과거의 사건 속으로 뛰어든 것처럼 현장감 있다.

요란한 총격전이나 싸움 장면이 나오지는 않지만 역사적 사실이 주는 긴장감과 무게감이 일품인 작품이다.

 

무엇보다 벤 애플렉의 연출력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그런데 예전 출시된 확장판 블루레이 타이틀은 120분 분량의 극장판과 이보다 9분 늘어난 확장판을 모두 수록했는데, 이번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모두 극장판만 수록해 아쉽다.

뿐만 아니라 2장으로 구성된 확장판 블루레이에 들어있던 부록 일부도 이번 4K 타이틀에서 제외됐다.

 

2160p UHD의 2.40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영상은 의도적으로 1970년대 필름영화의 질감을 살려서 입자감이 곱게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윤곽선이 깔끔하고 색상이 차분하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대단하다.

리어에서 들리는 군중들의 시위 소리가 폭발적이다.

 

제작과정, 실존 인물들의 증언을 담은 다큐, 비하인드 씬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그러나 감독과 작가의 음성해설은 한글 자막을 지원하지 않는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란 혁명의 빌미가 된 팔레비 국왕은 1979년 암 치료를 위해 미국 뉴욕으로 떠났는데 그새 혁명이 일어났다. 그 바람에 팔레비는 아내 파라와 함께 모로코 멕시코 바하마 등을 떠돌다가 1980년 7월 카이로에서 죽었다.
CIA는 제작에 적극 협조해 본관 로비와 복도 촬영을 허락했다.
LA 시내에 있던 뉴욕타임스 지국 건물에서 CIA 회의 장면을 촬영. 당시 미국 대통령은 집권 3년차 지미 카터였고 CIA 국장은 스탠스필드 터너였다.
멘데스를 연기한 벤 애플렉(오른쪽)과 특수분장 전문가 존 챔버스를 연기한 존 굿맨. 이란 근무 경험이 있던 CIA 요원 멘데스는 챔버스와 친구였다.
존 챔버스는 영화 '혹성탈출'의 유인원 분장, 영화 '스타트렉'에서 미스터 스팍의 뾰족한 귀를 고안한 분장 전문가로, CIA 요원들의 변장 도구를 만들어 줬다.
위장 설립한 영화제작사 스튜디오 식스는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에서 촬영. 여기에 당시 사용하던 버뱅크 스튜디오 로고를 붙였다.
아르고 제작자로 나선 극 중 레스터 시걸은 로버트 사이델 등 여러 프로듀서를 섞은 가상 인물. 앨런 아킨이 연기한 시걸의 집은 할리우드 배우 자자 가보가 한때 살았던 벨에어 하우스다.
테헤란에서 촬영을 할 수 없어 3주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이란 장면을 찍었다. 벤 애플렉은 대학서 중동학을 전공했다.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에서도 촬영. 조명 때문에 전구 4,000개를 더 밝은 전구로 밤새 갈아 끼우고 찍었다.
온타리오 공항의 사용하지 않는 공간에 아야톨라 호메이니 초상화를 그려 넣어 테헤란의 메흐라바드 국제공항처럼 꾸몄다.
미국인 6명은 주이란 캐나다 대사였던 켄 테일러의 관저에 3개월간 숨어 있었다. 당시 40세였던 캐나다의 젊은 총리 조 클라크는 최초 여성 각료였던 플로라 맥도널드 외무장관과 협의해 미국인들의 탈출을 도왔다. 그 바람에 주이란 캐나다 대사관은 8년간 폐쇄됐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에서도 촬영. 당시 미국인들이 캐나다 대사관저에 숨어 있었던 일은 극비 사항이었다. 미국은 이란 혁명 후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고 미국 내 이란의 금융자산을 동결했다.
위장 영화사 이름 스튜디오 식스는 이란에 숨어 있는 6명의 인질에서 착안했다. 미국 정부가 그럴듯하게 위장하는 바람에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이 이곳에 영화 제작을 의뢰하려고 대본을 보냈다.
벤 애플렉은 캐나다 대사관저처럼 꾸민 세트에서 배우들이 6일 동안 머물도록 했다. 1970년대 책과 신문, LP 등을 갖다 놓고 휴대폰과 인터넷을 없앤 이곳에서 생활한 배우들은 그만큼 친밀감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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