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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아메리칸 뷰티(블루레이)

울프팩 2022. 9. 12. 00:08

샘 멘데스(Sam Mendes) 감독의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 1999년)는 미국판 '바람난 가족' 같은 영화다.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 각종 골칫거리를 안고 있는 어느 가족을 통해 미국 중산층의 도덕적 붕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직장에서 곧 잘릴 위기에 놓인 레스터(케빈 스페이스 Kevin Spacey)는 집에서도 아내 캐롤린과 딸 제인(도라 버치 Thora Birch)에게 무시당한다.

심지어 딸은 아버지가 죽기를 바랄 정도로 싫어한다.

 

일터나 가정 모두에서 설 자리를 잃은 가장은 우연히 보게 된 딸의 친구 안젤라(미나 수바리 Mena Suvari)와 연인이 되는 발칙한 상상으로 위안을 얻는다.

안젤라에게 잘 보이려고 운동을 하던 그는 고교를 다니는 이웃집 모범생(웨스 벤틀리 Wes Bentley)에게서 대마초를 사서 피우며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한다.

 

군인 출신의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매일 소변 검사를 받을 정도로 꽉 조인 삶을 사는 모범생은 뒤로 대마초 장사를 하고 이웃집 소녀를 캠코더로 몰래 찍는 일탈을 한다.

가장과 고교생에게는 불순한 상상과 발칙한 일탈이 숨 막힐 듯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이자 삶의 안식을 얻는 기회다.

 

더 이상 가정과 일터, 학교는 이들에게 삶의 위안과 희망을 주는 울타리가 돼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겉으로 번듯해 보이면 과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즉 윤리가 무너지고 삶이 뒤죽박죽 되는 쇼윈도 가정의 비극을 통해 미국 사회가 맞고 있는 가치관의 붕괴라는 내면적 혼란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감독은 돌발적으로 벌어지는 충동적 폭력을 통해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바로 잡으려고 한다.

하지만 행복한 미소를 짓는 주인공 레스터의 표정만큼이나 그 결말 또한 덧없는 시도로 그치고 만다.

 

멘데스 감독이 그린 쇼윈도 가족처럼 이 작품은 겉보기에 애정 비사를 다룬 드라마의 탈을 쓰고 있지만 속에는 묵직한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아 몰입해서 보게 된다.

 

그만큼 이야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장면 구성과 연출 또한 적당한 긴장과 유머를 유발하며 완급 조절이 잘 돼 있다.

특히 안젤라에 대한 레스터의 연정은 다분히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로리타'를 연상케 하며 성적 긴장과 웃음을 자아낸다.

 

마치 반항하듯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이는 아내 캐롤린(아네트 베닝 Annette Bening)의 외도도 긴장과 더불어 헛웃음을 불러일으킨다.

두 사람의 모습은 영락없이 '바람난 가족'의 주인공 부부를 닮았다.

 

더불어 아카데미 촬영상에 빛나는 콘래드 홀(Conrad Hall)의 훌륭한 촬영 솜씨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장미꽃이 쏟아지는 가운데 누워 있는 미나 수바리를 여신처럼 찍은 영상은 레스터의 충만한 성적 판타지를 잘 보여준 명장면이다.

 

덕분에 개성 있는 외모와 연기가 돋보인 미나 수바리는 이 작품으로 섹시 아이콘이 됐다.

아울러 엔딩 크레디트에 흐르는 노래 'Because'를 빼놓을 수 없다.

 

비틀스의 원곡을 엘리엇 스미스로 느리게 편곡했는데 몽환적이며 나른해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멘데스 감독은 영화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제72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신인 감독치고는 놀라운 성과인데, 그만큼 이 작품이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다.

 

입자감이 두드러지고 윤곽선이 두꺼운 편이지만 새빨간 장미꽃 등 진한 색감이 선명하게 살아 있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사운드가 전방에 집중돼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음량도 작아 아쉽다.

부록으로 멘더스 감독과 대본을 쓴 앨런 볼의 음성 해설, 제작과정, 스토리보드 프리젠테이션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멘더스 감독은 일부러 무미건조한 가정의 분위기를 강조하려고 단조록운 색을 사용해 세트장을 꾸몄다.
치어리더 장면은 감독이 좋아한 영화 '올 댓 재즈'를 만든 밥 포시 감독에 대한 오마주다.
콘래드 홀은 유명한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슈퍼35미리 카메라를 이용해 초당 120프레임으로 고속 촬영했다. 그러나 카메라가 망가지며 필름이 손상돼 재촬영했다. 고속 촬영 영상을 6배 느리게 재생해 꽃잎이 천천히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제7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남우주연, 각본, 촬영상을 수상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연출 제의를 받았으나 고사한 뒤 샘 멘데스 감독을 추천했다.
아메리칸 뷰티는 워싱턴 DC를 상징하는 장미꽃 품종이다. 주인공 레스터 번햄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로리타'의 주인공 험버트 런스의 철자를 섞어서 만들었다. 안젤라 헤이즈의 성도 '로리타'의 주인공 로리타 헤이즈에서 따왔다.
영국에서 태어난 샘 멘데스 감독은 케임브리지대학을 나와 1987년 치체스터 페스티벌 극장에 들어가 연극 연출을 했다. 그는 '카바레' 연출을 맡아 토니상을 받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이 연극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멘데스를 이 작품의 감독으로 추천했다.
높은 가로수 사이로 아이들이 걸어가는 장면은 영국 스타라이트 신발 광고에서 영감을 얻었다.
대본을 쓴 앨런 볼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광장에 앉아 바람에 날리는 봉지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 원래 앨런 볼은 연극으로 이 작품을 구상했다. 영화에는 이 에피소드가 옆집 고교생 릭키가 촬영한 캠코더 영상으로 나온다.
웨스 벤틀리가 고교생 릭키를 연기. 제이크 질렌할과 세스 그린도 릭키 역의 오디션을 봤다.
배 위에 손을 얹은 포스터 사진은 미나 수바리가 아니라 배우 겸 모델인 크리스티나 헨드릭스와 클로에 헌터의 손과 배를 찍어서 합성했다.
원래 딸 제인 역으로 제시카 비엘이 섭외됐으나 제작자와 갈등으로 그만뒀다. 이후 도라 버치가 그 역을 맡았다.
도시를 내려다 본 장면은 새크라멘토에서 공중 촬영했다. 이 영화에서는 흰색과 적색의 대비가 자주 쓰였다. 특히 적색을 문과 장미, 드레스 등 제한된 부분에만 적용했다.
레스터가 일하는 햄버거 가게는 칼스 주니어 버거에서 촬영.
멘데스 감독은 케빈 스페이시의 체격이 운동을 하며 좋아지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간순으로 찍었다. 체비 체이스와 톰 행크스도 주인공 역을 제의 받았다.
2017년 배우 앤서니 랩은 1986년 뮤지컬 공연 때 케빈 스페이시가 성추행을 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여러 배우들이 그에게 성추행 당했다고 주장했다. 스페이시는 술에 취해 벌어진 일이라고 사과하며 그동안 양성애자로 살았는데 앞으로 동성애자로 살겠다고 밝혀 빈축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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