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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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낫 데어(블루레이)

울프팩 2020. 5. 11. 00:31

밥 딜런(1941~)은 다재다능한 예술가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이면서 화가이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이다.

 

서부극 '관계의 종말'을 비롯해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유대인인데도 기독교에 빠져 가스펠을 부르며 복음을 전파했다.

한 가지도 제대로 하기 힘든데 이토록 여러 가지 분야에서 활약한 것을 보면 타고난 천재인 모양이다.

 

특히 그가 대중음악에 미친 영향은 독보적이다.

1960년대 딜런의 포크 음악은 당시 플라워 무브먼트와 함께 미국을 휩쓸었다.

 

단순히 유행가로 인기를 얻는데 그친 것이 아니다.

평화와 반전, 차별 반대와 화합을 부르짖은 정치색 강한 그의 노래들은 그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를 내뿜는 선동이었다.

 

1963년 발표한 앨범 'Freewheeling'이 대표적으로, 대중뿐 아니라 많은 영미권 가수들 심지어 멀리 아시아까지 영향을 미쳤다.

여기 수록된 'Blowing in The Wind'는 국내에서도 번안돼 불렸고 지금까지도 미국 대중음악사에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곡으로 꼽힌다.

 

그 바람에 딜런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우리로 치면 1970년대 유신 독재정권 시절 '친구'나 '아침이슬'을 만들어 민중가수로 떠오른 김민기 같은 격이었다.

 

하지만 민중에게 힘을 준 의지의 지팡이였던 딜런은 1965년 돌연 배신의 아이콘이 됐다.

그는 뉴포트 포크페스티벌에서 돌연 전기기타를 들고 나와 록을 연주하며 민중의 분노를 샀다.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던 그가 돈을 좇아 유행가 가수로 변절했다는 비난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딜런은 꿋꿋이 일렉기타를 연주했다.

 

당시 딜런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포크 음악이란 더 이상 내가 사용할 수 없는 단어다. 정치적인 노래인 포크는 죽었다. 정치가 죽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사실 딜런은 음악을 정치적 행위로 활용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음악 자체를 즐긴 인물이다.

 

그에게 음악은 그림이나 시처럼 현재 상태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특정 장르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다.

 

"인간은 모두 자유를 원한다. 그런데 어떤 방식에 맞춰 살면 자유는 그만큼 줄어든다"라는 그의 말에서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포크에서 출발한 그의 음악은 다양한 장르를 거치며 급기야 가스펠까지 치닫는다.

 

1970년대 흑인 문화에 심취해 흑인 음악을 찾고 애인까지 흑인 여성이었던 그는 흑인들의 가스펠에 빠졌다.

러시아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딜런은 1978년 독특한 교리를 추구해 이단 시비까지 불러일으켰던 펜테코스트파 복음주의 계열인 빈야드 펠로우십 교회에 끌려 그곳에서 은둔생활을 하다시피 했다.

 

이때도 가스펠들을 발표하며 세상과 다른 그만의 길을 추구했다.

그렇지만 그의 교회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1980년대 들어 빈야드 교회와 결별한 딜런은 다시 유대교로 돌아선 모양이다.

짧게 간추린 여정만 봐도 딜런은 결코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

 

따라서 복잡다단한 그의 삶과 생각을 한두 시간에 보여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토드 헤인즈 감독은 이를 기발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 2007년)는 밥 딜런의 다양한 모습을 6명의 배우가 표현한 독특한 영화다.

각각의 배우가 딜런의 서로 다른 모습을 맡아서 다양한 에피소드로 풀어냈다.

 

시인으로서 딜런의 모습은 벤 위쇼가 맡아 딜런이 좋아한 아루튀르 랭보라는 캐릭터로 등장하고, 포크 음악과 가스펠에 심취했던 시절은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했다.

배우의 모습은 샘 페킨파 감독이 '관계의 종말'에서 다룬 악당 빌리 더 키드를 연상케 하는 리처드 기어를 통해 투영됐고, 딜런에게 우상으로서 절대적 영향을 미친 가수 우디 거스리는 흑인 소년 배우 마커스 프랭클린을 통해 나타났다.

 

히스 레저는 평화와 자유, 평등을 담은 노래와 달리 생활에서 보수적이고 남성우월주의자였던 딜런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가장 놀라운 것은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이다.

 

그는 딜런이 일렉기타를 집어 들어 대중의 분노를 샀던 배반의 아이콘을 연기했다.

여배우가 딜런 역할에 어울릴까 싶지만 케이트 블란쳇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였다.

 

가냘파 보이면서 약간 꾸부정한 자세로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나 강렬한 눈빛으로 비스듬히 쳐다보는 표정은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다.

케이트 블란쳇을 딜런의 분신 중 하나로 캐스팅한 것만 봐도 토드 헤인즈 감독의 남다른 감각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토드 헤인즈 감독은 여러 배우들에게 각기 다른 캐릭터를 맡겨 딜런의 다면적인 모습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대신 일반적인 영화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이해하려들면 복잡하고 힘든 작품이 돼버린다.

 

이 영화는 그저 여러 캐릭터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풀어가는 옴니버스라고 보면 된다.

즉 여러 개의 구슬을 꿰어 하나의 목걸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구슬을 굴려보는 식이다.

 

그만큼 재치 있는 감독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파격적인 형식으로 빛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딜런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아는 게 적다면 상당히 난해한 작품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딜런의 노래들이 좀 더 많이, 비중 있게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One More Cup of Coffee' 'Like a Rolling Stone' 'Knocking on Heaven's Door'는 짧게 나오거나 엔딩 크레디트에 묻혀 넘어갔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무난한 편이다.

감독이 일부러 거친 질감의 16미리로 촬영한 영상과 흑백 영상을 섞어서 쓰는 바람에 화질이 고르지는 않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강조되는 편이 아니다.

노래도 나오지만 다큐멘터리처럼 내레이션이 많아서 서라운드 음향이 나올 만한 부분이 거의 없다.

 

부록으로 감독 해설, 배우 오디션, 삭제 장면, 개그 릴, 시사회 인터뷰, 음악, 감독 인터뷰, 미수록곡, 히스 레저 회고 영상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화는 재탄생을 암시하는 은유적 죽음으로 시작한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재탄생이 영화의 주제라고 강조했다.
벤 위쇼가 딜런에게 영향을 미친 시인 아르튀르 랭보를 연기.
딜런의 우상이었던 우디 거스리를 연기한 흑인 소년 마커스 프랭클린. 당시 11세였던 그는 워낙 노래를 잘해 주연배우 중 유일하게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이 작품은 6명의 배우가 딜런의 7가지 분신을 연기했다. 크리스천 베일이 포크 시절 딜런과 가스펠을 부른 딜런 2가지를 맡았다. 메이슨 제닝이 베일 대신 노래를 불렀다.
줄리언 무어는 존 바에즈를 의미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딜런은 바에즈의 도움으로 일찍 성공 가도를 달렸다.
히스 레저도 딜런의 분신을 연기. 샤를르 갱스부르가 맡은 클레어는 1960년대 초반 딜런의 여자친구였던 화가 수지 로톨로와 65년 딜런과 비밀 결혼을 하고 네 아이를 낳은 사라 라운즈를 섞은 캐릭터다. 수지는 딜런의 앨범 재킷에서 딜런과 팔짱을 끼고 걷는 여성이다.
딜런은 1961년 뉴욕에 처음 왔을때 우디 거스리를 찾아갔다. 그는 남달라 보이려고 우디 거스리의 노래와 옷차림, 몸짓 등을 흉내냈다.
일렉기타를 사용한 딜런의 음악을 기총 소사에 비유한 장면. 그만큼 대중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이 장면에서 소닉 유스가 연주를 맡았다.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딜런의 기자회견 장면은 1965,66년 인터뷰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다큐 '노 디렉션 홈'을 참고했다. 케이트 블란쳇의 노래는 페이브먼트의 스티븐 말크머스가 대신 불렀다.
헤인즈 감독은 원래 내레이션을 여성에게 맡기려고 했으나 적합한 사람을 찾지 못해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에게 맡겼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뉴욕,런던, 미국 시골장면 등을 촬영. 헤인즈 감독은 처음부터 염두에 둔 곡들을 영화에 사용했다.
헤인즈 감독이 대본을 쓰며 유일하게 염두에 둔 배우는 샤를르 갱스부르다. 딜런는 1965년 사라 라운즈와 결혼했다가 바람을 피워 1977년 이혼했다. 이후 코러스 싱어인 흑인 여성 캐롤라인 데니스와 결혼했다가 다시 이혼했다.
제목 '아임 낫 데어'는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뜻. 히스 레저는 촬영 중 공황 장애를 겪었다.
딜런은 애인이었던 코러스 가수 매리언 아테의 소개로 극단주의 기독교 분파인 펜테코스트파 복음주의와 관련을 맺었다.
제목은 딜런과 더 밴드가 지하실에서 녹음한 '더 베이스먼트 테이프'의 수록곡 제목이다. 이 앨범은 발표되지 않았으나 일부 곡들이 다른 음반에 실렸고 'I'm Not There'는 이 영화에도 등장한다.
우디 거스리는 기타 케이스에 '파시스트를 죽이는 도구'라고 써놓았다. 기차 장면은 실제 기차에서 촬영.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아임 낫 데어 (1Disc 풀슬립 600장 넘버링 한정판) : 블루레이
 
아임 낫 데어
감독 - 토드 헤인즈 / 출연 - 케이트 블란쳇, 히스 레저, 벤 위쇼, 크리스찬 베일, 리차드 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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