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의 애니메이션 '아키라'(Akira, 1988년)를 처음 본 것은 대학 때 복제한 비디오테이프를 통해서였다.
화질도 안 좋고 번역도 돼있지 않았던 터라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기말의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한 분위기와 충격적인 영상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랬기에 DVD가 등장한 이후 미국 아마존닷컴에서 영어자막으로 된 미국판 DVD 타이틀을 주저 없이 주문했고 다시 한글 자막이 들어간 국내판 DVD도 구입했다.
이번에 블루레이까지 국내에 정식 출시돼 반갑기 그지없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적인 그림 때문이다.
이 작품은 무조건 색을 많이 써서 부드럽고 둥글둥글하게 표현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아톰, 마징가제트처럼 다리가 길고 머리가 크면서 선이 날카로운 저패니메이션과는 다른 화풍을 갖고 있다.
인간의 신체 비례를 잘 살린 캐릭터와 사진을 보는 듯한 정교한 배경 등 공들인 모든 컷을 바라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서정적인 화풍을 지닌 미야자키 하야오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디테일이 오토모 감독의 특징이다.
내용은 도쿄가 1988년에 일어난 핵전쟁으로 박살 나고 30년이 지난 2019년에 네오 도쿄라는 이름으로 재건된 뒤 벌어지는 일들을 다뤘다.
강력한 무기를 부활시켜 세상을 통제하려는 집단과 이에 반발하는 저항세력, 여기에 뛰어난 염력을 지닌 초능력자들이 가세하면서 세상은 다시 극한의 혼돈으로 치닫는다.
마치 우주의 시원을 보는 듯한 대파국과 비밀병기 아키라의 정체가 충격적이다.
미래를 배경으로 했지만 소년들의 초능력을 악용하려는 장면들은 과거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비밀 생체실험을 연상케 한다.
여기에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인상적인 디자인의 붉은색 오토바이와 괴수처럼 변하는 기괴한 돌연변이의 폭주에서 오토모 감독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강한 인상을 준 바이크는 나중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에도 오마주로 등장한다.
그 정도로 1980년대 애니 키즈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보너스 디스크 등 3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블루레이 타이틀보다 채색이 명료하게 개선됐다.
하지만 일본 타이틀 특유의 뿌연 느낌은 여전해 전체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 화질이다.
아무래도 30년이 넘은 제작 연도를 감안하고 봐야 한다.
돌비 트루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서라운드 효과는 훌륭하다.
사방 채널을 가득 메우는 네오 펑크 음악을 들어보면 울림이 엄청나다.
특히 리어에서 울리는 순찰차 사이렌 소리 등 효과음이 방향감이 아주 좋다.
부록으로 제작과정과 2001년 5.1 채널로 재녹음할 때 인터뷰한 영상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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