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년)를 DVD로 3번 봤다.
재미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1,200만명이 넘게 본 이유를 찾고 싶어서였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과 느낌이 다른 만큼 많이 봤다고 무조건 재미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절로 그렇게 됐다.
'황산벌'과 '왕의 남자' 두 편만 보고 단정짓기에는 성급한 감이 있지만(현재까지 감독한 작품이 세 편 뿐이니 어쩔 수 없다) 이준익 감독의 작품세계는 깊이가 얕다.
줄거리 위주의 이야기 흐름과 말초적인 대사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그만큼 쉽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자극한다.
황당한 몸짓과 언어유희로 금방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개그콘서트'처럼 말이다.
대신 사회 구조와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인간 관계를 고찰하려는 진지한 자세는 없다.
'왕의 남자'도 원작이 주는 인물들의 역학관계와 무게감 대신 동성애라는 표피적인 흥미거리가 부각됐다.
개그콘서트를 보듯 좀 더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보고 즐겼더라면 좋았을텐데, 어리석게도 남다른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일말의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을 볼 때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을 것 같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는 극장판과 함께 6분이 늘어난 감독판도 수록돼 있다.
극장판과 감독판 모두 우리 영화치고는 괜찮은 화질이다.
샤프니스는 높지 않고 윤곽선도 두텁지만 별다른 잡티는 없다.
DTS를 지원하는 음향은 인위적으로 채널 분리를 강조해 다소 어색하다.
일부 부록의 인터뷰는 배경음에 소리가 묻히거나 웅웅거리는 등 녹음 상태가 좋지 않다.
<파워 DVD 캡처 샷>
사당패에서는 줄타는 광대를 얼음산이라고 부른다. 얼음이 언 산을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걷는것 같다는 뜻이다. 그래서 줄타기를 얼음놀이라고 한다.
극장 개봉시 삭제되고 감독판 DVD에만 들어간 장면이다. 극장판에서는 양반을 안마하는 공길 모습은 안보이고 탈을 쓰고 앉아있는 공길의 옷을 양반이 벗기는 장면으로 바로 넘어간다.
조연인 육갑, 칠득, 팔복은 원작 연극에 없는 영화만의 캐릭터다. 북을 두드리는 칠득 역의 정성용과 꽹가리를 치는 팔복 역의 이승훈은 원작 연극인 '이'에도 출연했다. '화로설파' 장면도 극장개봉시 삭제됐다. 장생과 육갑은 불이 타오르는 화로를 안고 땅재주를 넘는 것으로 실력을 겨룬다.
이 작품은 광대를 다루다보니 극 중 극 형태로 진행된다.
왕궁 장면은 문화재청의 허락을 얻지 못해 경복궁이 아닌 부안영상테마파크에서 촬영.
연산을 연기한 정진영과 장녹수 역의 강성연. 직접 손으로 자수를 놓아서 만든 왕의 곤룡포는 무려 2,000만원이란다.
연산군일기에 기록된 실존 인물인 공길이라는 광대는 연산군에게 "임금이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가 신하다워야 한다"고 간언했다가 곤장을 맞고 유배를 당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연기를 잘한 배우는 정진영이다. 연산을 새롭게 해석한 그의 연기 변신은 감탄이 나올 만큼 뛰어났다.
연산의 친모인 폐비 윤씨의 죽음을 재현한 경극의 의상은 천 위에 종이를 입히고 색칠을 해서 만들었다.
일부 학자들은 연산군때 사초와 폐비 윤씨 사건을 빌미로 발생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왕권과 신권의 싸움으로 해석한다. 왕권 강화를 위해 신하들을 내쳤던 연산은 결국 신하들이 일으킨 중종반정으로 물러나게 된다.
사냥을 빌미로 신하들이 광대들을 죽이려는 장면은 '황산벌' 촬영지인 고창에서 촬영.
영화에서는 공길과 연산의 동성애를 강조하지만 연극에는 장생과 공길의 동성애 코드도 들어 있다.
장생을 연기한 감우성도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사실 그의 발성은 사극에 잘 안맞지만 다소 냉소적인 이번 캐릭터에서는 오히려 잘 어울렸다.
감우성과 이준기는 줄타기 명인인 권원태 선생에게 사사했다. 일부 위험한 장면은 권원태 선생이 대역을 했다. 특히 권선생이 대역한 막판 연산의 화살을 피하다 떨어져 줄에 매달리는 장면은 연기가 아닌 실제 사고를 영화에 그대로 사용했다.
제작진은 사극으로는 최고 기록인 '스캔들'의 330만명만 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영화를 개봉했는데 의외로 1,000만을 넘어서서 놀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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