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흉흉하다보니 연쇄살인이 영화속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정길영 감독의 '우리 동네'(2007년)도 '추격자'처럼 연쇄살인범을 쫓는 영화다.
'추격자'와 소재가 비슷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된다.
'추격자'가 범인을 드러내놓고 범죄행각을 역추적하는 반면 '우리 동네'는 연속해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따라 범인을 밝혀내는 스릴러물이다.
이야기 진행방식 만큼이나 관점도 다르다.
'추격자'가 연쇄살인범 앞에서 속수무책인 경찰의 무능과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꼬집은 반면 '우리 동네'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집요하게 되풀이하는 인연의 끈에 집착한다.
재미도 다르다.
'추격자'는 살인범과 그 뒤를 쫓는 주인공의 숨막히는 추격전으로 잠시도 쉴틈없이 긴장 속으로 몰아치는 반면 '우리 동네'는 수사극을 보는 것처럼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사건의 고리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두 작품 모두 미스테리극의 구조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다.
인물의 초점을 맞춘 '추격자'는 주인공의 끈질긴 추격전에 초점을 맞춘 스릴러에 가깝고 '우리 동네'는 미스테리물로서는 치명적인 결점인 사건의 개연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도와 이야기는 '우리 동네'가 더 낫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인물들의 관계를 짜임새 있게 엮어낸 구성이 돋보이고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한 표현주의적 영상도 탁월하다.
비록 살인사건의 연결고리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앞 뒤 사건을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수상한 점을 인물들이 도외시하는 등 미스테리극으로서는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있지만,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영상은 화질이 무난하다.
살짝 이중윤곽선이 보이지만 색감이 강렬해 미스테리극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배경음악이 흘러 나올 때 서라운드 효과가 돋보인다.
일부 장면에서는 저음이 묵직하게 깔린다.
<파워DVD로 순간포착한 장면들>
영화는 충격적인 살인사건 영상으로 시작한다.
추리소설 작가인 경주를 연기한 오만석. 힘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아울러 노래 솜씨도 훌륭했다.
색감은 크롬필터를 사용한 것처럼 다소 과장됐다. 이 장면에 흐르는 '사랑이 지나가면'은 이문세 목소리처럼 들리지만 이문세가 아닌 음악을 맡은 정재환이 불렀다.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루는 세 인물 가운데 하나인 효이를 연기한 류덕환.
정길영 감독은 이 작품이 "살의의 충동을 다룬 영화"라고 말한다.
누드연기를 선보인 류덕환. 그는 살인장면을 촬영하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꿈을 꾸는 등 한동안 악몽에 시달리며 힘들었다고 한다.
'CSI' 등 과학수사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루미놀 반응 수사. 루미놀을 뿌리고 빛을 차단하면 피를 씻어내도 남아있는 철분이 형광처럼 반응한다.
친구와 악연으로 얽히는 형사 재신을 연기한 이선균.
류덕환이 관에 누워있는 장면은 효이도 공포를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정길영 감독은 차분하고 정제된 폭력 장면을 묘사하기 이해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폭력의 역사'를 참조했다고 한다.
흡입력있는 영상은 이강민 촬영감독의 솜씨다.
정길영 감독은 이 작품이 장편 데뷔작이다. 첫 작품이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을 제대로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