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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막의 마에스트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블루레이)

울프팩 2016. 12. 23. 07:16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한 사람이다.

그럴 수 있었던 비결은 방대한 음반을 남긴 것도 있지만 그 못지 않게 숱한 영상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공연하거나 녹음하는 영상을 영화로 만들거나 비디오로 제작해 음반 못지 않게 많이 판매했다.

덕분에 그의 모습을 비디오나 DVD, 블루레이 또는 TV로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친숙하게 됐다.


게오르그 뷔볼트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은막의 마에스트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Maestro for the screen, 2008년)은 카라얀이 영상물에 집착한 이유를 다뤘다.

따라서 이 작품은 논란이 많은 카라얀의 생애나 인물을 다룬 다큐가 아닌 오로지 그가 영상물에 빠져든 이유, 그가 남긴 영상물의 특징만 다룬 국소적인 다큐다.


그만큼 보편적인 내용이 아니어서 그의 생애나 연주 세계가 궁금해서 이 타이틀을 감상하면 실망할 수 있다.

그 정도로 미시적인 작품이지만 카라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그의 영상물을 봤다면 흥미로울 수 있다.


원래 젊은 시절, 즉 1950년대 카라얀은 TV 중계는 물론이고 음반 녹음 조차도 싫어했다.

모든 미디어를 거부했던 그는 음악이란 연주 현장에서 직접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수했다.


그런 카라얀의 생각이 바뀐 것은 1957년 일본 도쿄 공연이었다.

처음으로 그의 연주가 TV로 중계된 뒤 수 많은 사람들이 봤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미디어의 위력을 실감했다.


그때부터 카라얀은 음반 녹음에 영상물 제작에 적극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그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루레이를 보면 그와 일한 연주자들, 제작자들이 등장해서 카라얀이 얼마나 허영심이 많고 권력지향적인 지 이야기한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그를 "불쾌한 사람"이라고 잘라 말했다.


미디어에 눈을 뜬 카라얀은 코스모텔, 텔레몬디얼 등 영상전문 제작사까지 차려 그의 지휘 영상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자동차, 비행기를 좋아하며 앞선 음향 및 영상기술에 유난히 집착한 그의 관심도 한 몫 했다.


카라얀은 영상물을 만들 때 관심이 있었다.

무조건 그를 중심으로 영상을 찍어야 했다.


연주자들의 모습은 나오지 않더라도 그의 클로즈업을 자주 잡아야 하고 그를 중심으로 영상이 돌아가야 했다.

심지어 카라얀은 원하는 영상이 나올 때 까지 녹음을 틀어 놓고 몇 번이나 재촬영을 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가수들의 립싱크 같은 행동인데, 한 두 사람이 아닌 수십 명이 이를 되풀이해야 하니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베를린 필하모니 단원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각자 엄청난 로열티 수익을 거뒀기 때문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 작품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고스란히 들어 있다.

우리가 모르던 카라얀의 단면을 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타이틀이다.


1080i의 16 대 9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무난하다.

52분 가량의 본편은 예전 자료 화면들이어서 흑백 영상이 많고 화질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음향은 PCM스테레오를 지원하며 부록으로 카랴안이 직접 쳄발로를 연주하며 지휘를 한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과 모음곡 2번을 수록한 32분 가량의 영상물이 들어 있다.

참고로, 이 타이틀은 오스트리아에서 제작된 수입반이지만 지역코드가 없고 한글 자막이 들어 있어 편안하게 볼 수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카라얀은 1957년 TV로 중계된 일본 공연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미디어의 위력을 깨닫고 음반 녹음과 영상 촬영에 적극 나섰다.

미국에서 활동한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TV 프로그램 '영 피플즈 콘서트'에 적극 출연하며 많은 시청자를 확보한 것도 카라얀의 영상 제작에 불을 지폈다. 카라얀은 번스타인의 이런 행동을 질시했다.

카라얀은 영화감독 앙리 클루조와 손잡고 6편의 음악영화를 만들었다. 유명한 '공포의 보수' '디아볼릭' 등을 만든 앙리 클루조는 히치콕이 경쟁 상대로 삼았던 스릴러 거장이었다.

카라얀은 클루조 감독에게 영상 기법을 많이 배웠으나 6번째 작품인 베르디의 '레퀴엠'이 마음에 들지 않아 클루조와 결별했다.

클루조와 결별한 카라얀은 휴고 니벨링 감독을 만나 베토벤 교향곡 시리즈 영상을 찍었다. 니벨링은 음악에 맞춰 악기를 접사해 촬영해 지판을 보여주는 등 독특한 영상을 만들었다.

니벨링은 오케스트라를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대각선으로 잡고 알루미늄판을 굽혀서 여기 어른거리는 영상을 찍는 등 독특한 그림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카라얀은 자신의 모습을 많이 찍지 않는 그의 연출 스타일을 싫어했다.

튀는 영상 때문에 사람들이 음악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카라얀은 니벨링의 편집을 무시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재편집한 영상을 투자사인 독일 ZDF 방송에 보냈다. 그러나 ZDF는 카라얀 버전을 거절했다. 카라얀은 결국 영상에 대한 견해차이로 니벨링과 결별했다.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카라얀은 일본을 방문할 때 소니를 찾아서 최신 기기를 시험해 봤다. 1980년대 소니 사장이었던 오가 노리오 사장은 카라얀이 마음껏 소니 기기를 사용해 볼 수 있도록 그의 호텔방에 각종 기기를 한가득 설치해 줬다.

카라얀이 임종 전에 통화하거나 만난 사람이 두 명이었다. 하나는 그의 비서였고 다른 하나는 바로 소니의 오가 사장이었다. 카라얀은 그와 이야기하다가 옆으로 쓰러져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오가 사장은 2011년 타계했다.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은막의 마에스트로 -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 - Maestro for The Screen) (Blu-ray)(한글자막) (2016) - Herbert von Karajan
Herbert von Kara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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