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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영웅들 SE

울프팩 2013. 9. 4. 10:30

새뮤얼 풀러 감독의 전쟁 영화 '지옥의 영웅들'(The Big Red One, 1980년)은 저주 받은 걸작이다.
풀러 감독은 제 2 차 세계대전 때 참전했던 경험을 살려 영화를 만들었으나, 제작자는 마구잡이로 난도질해 영화를 113분으로 줄여 놓았다.

풀러 감독은 다시 4시간짜리와 2시간짜리 편집본을 다시 제출했으나 제작사는 이마저도 거절했다.
결국 개봉 후 제작사인 로리마는 파산했고, 필름은 워너브라더스 창고로 직행했다.

이를 제작자 겸 평론가인 리차드 쉬클이 발견하고, 필름을 다시 편집해 50분이 늘어난 163분의 재편집본을 내놓았다.
비록 풀러 감독이 다시 편집한 것은 아니지만 2004년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재편집본은 뜨거운 환대를 받으며 풀러의 진정한 걸작으로 재평가 받았다.

풀러 감독은 우리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 뤽 고다르, 빔 벤더스 같은 유럽 거장들이 존경했고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쿠엔틴 타란티노 등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 장 뤽 고다르는 '미치광이 피에로'에 풀러 감독을 출연시키기도 했다.

풀러 감독은 '미치광이 피에로' 촬영 당시 '영화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영화는 전쟁터 같은 것"이라는 유명한 답변을 남겼다.
인간의 애증, 분노, 연민 등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란다.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지옥의 영웅들'이다.
국내 제목은 이상하게 바뀌었지만 원작이 의미하는 '커다란 붉은 숫자 1'은 바로 미 보병 제 1 사단의 사단 마크 겸 상징이다.

보병 1 사단은 미 육군의 상징 같은 존재다.
1917년 원정 1사단으로 창설돼 제 1 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1918년 프랑스 전역에서 미군 최초의 승리를 거뒀으며, 제 2 차 세계대전 때인 1942년 재편돼 유럽 전선에 최초 파견됐다.

이후 베트남전, 1990년 걸프전, 2003년 이라크전 등에 두루 파병돼며 미국이 치른 대외 전쟁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특히 제 2 차 세계대전때 북아프리카 상륙, 시실리 상륙, 노르만디 상륙작전, 발지대전투 등 유럽의 굵직한 주요 전장을 모두 누볐다.

풀러 감독도 보병 1사단의 일원으로 제 2 차 세계대전을 치렀으며, 16mm 카메라로 역사를 기록했다.
그만큼 이 작품에는 그의 참전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어 아주 사실적이다.

땅을 파고 숨어 있는 미군 병사들 머리 위로 독일군의 수 많은 탱크들이 굉음을 울리며 지나가고, 아랍 병사들이 독일군의 귀를 잘라 미군에게 파는 에피소드 등은 모두 감독의 경험에서 나온 실제 이야기들이다.
더불어 노르만디 상륙작전에서 비정한 방갈로어폭약 설치장면이나 해변에서 내장을 드러낸 채 숨진 병사들의 모습 등 냉혹할 정도로 사실적인 영상은 훗날 '라이언일병 구하기' 등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고 무조건 총질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전투와 전투 사이에 막간 휴식 같은 병사들의 모습 및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는 풍경 등이 자주 나온다.

언뜻보면 전쟁 영화에 저런 장면들이 왜 필요할까 싶지만 풀러 감독은 전쟁을 기다림의 연속으로 봤다.
그는 참전 경험을 되짚어 "실제 전쟁에서 전투 시간은 10%에 불과하며 나머지 90%는 지루하게 보내는 시간들"이라고 회고했다.

영화는 이처럼 무의미한 시간 낭비로 이어지는 살육과 고통, 공포 등 전쟁의 무자비한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무엇보다 그는 여성과 아이들을 자주 등장시켜 전쟁이 참전 군인들 뿐만 아니라 미망인과 고아를 만들어 여성과 아이들에게도 끔찍한 희생을 강요하는 점을 지적했다.

그만큼 반전 메시지가 강한 이 작품은 새뮤얼 풀러 감독을 다시 보게 만드는 수작이다.
더불어 촬영 당시 54세였던 리 마빈이 하사관을 연기하기에는 지나치게 나이가 많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를 포함해 마크 해밀 등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1.66 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화질은 장면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아무래도 재편집판이어서 뒤늦게 찾아낸 영상들은 지글거림도 심하고 화질이 좋지 않다.

그래도 분량이 대폭 늘어난 작품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타이틀이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제작자 리차드 쉬클의 음성해설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새뮤얼 풀러는 그를 존경한 여러 감독들의 작품에 배우로도 출연했다.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를 비롯해 빔 벤더스의 '미국인 친구', 스티븐 스필버그에 '1941' 등에 나왔다.
상륙에 앞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M1 총구에 콘돔을 씌우는 사실적인 장면은 풀러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스타워즈'의 주인공 마크 해밀이 극 중 병사인 그리프를 연기.
사막 전투 장면 등 주요 장면은 이스라엘서 촬영.
풀러 감독이 목격한 독일군 시체에서 귀를 자르는 장면은 재편집판에 추가됐다.
병사들이 무기를 정비하고 휴식을 취하며 망중한을 보내는 등 전쟁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독일군 전차로 나온 탱크는 이스라엘군의 슈퍼 셔먼. 감독은 총 6대의 탱크를 계속 돌려 사용했다.
리 마빈이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총을 맞는 장면은 실제 그의 경험을 재현했다. 제 2 차 세계대전때 해병대로 참전한 리 마빈은 사이판 전투에서 등에 총을 맞아 영화 장면처럼 무릎을 꿇듯이 쓰러졌다.
풀러 감독은 빈치 역할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원했으나 그가 '분노의 주먹' 촬영 때여서 불발됐다.
시실리 상륙전에서 일어나는 폭발은 예상보다 크게 터져 배우들이 실제로 혼비백산했다.
미군이 숨어 있는 동굴 앞으로 수없이 지나가는 독일 전차들은 실제로는 1대가 계속 돌며 여러 대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독일군이 동굴로 뛰어들다가 계속 죽는 장면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황당하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풀러 감독은 전쟁통에 고아가 되는 아이들을 전쟁의 첫 번째 희생자로 봤다.
극장 개봉판의 경우 영화감독 짐 맥브라이드가 맡은 해설도 감독의 의도와 달리 나중에 추가됐다.
리 마빈은 출연 당시 54세여서 하사관을 연기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었다.
노르만디 상륙작전 장면에 나오는 방갈로어 폭약. 긴 원통형 폭약을 이어 붙여 적진에 들이민 뒤 터뜨린다. 문제는 적진까지 끌어가는 장면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숱한 희생자들의 피로 벌겋게 물든 바닷물, 쓰러진 병사의 손목시계를 강조한 클로즈업, 내장이 삐어져 나온 시체 등 상륙작전의 처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상은 훗날 '라이언일병 구하기' 등에서 더 세세하게 재현됐다.
리 마빈이 이끄는 주인공 분대와 집요하게 얽히는 악연의 독일군을 연기한 지그프리드 라우쉬.
참혹한 전쟁을 사실적으로 다루었지만 풀러 감독이 피를 싫어해서 의외로 피가 낭자한 유혈 장면 등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버려진 독일 전차를 이용해 아기를 받는 장면. 미군 병사는 수술 장갑 대신 콘돔을 끼고 받는다.
미친 여자 행세를 하며 독일군의 목을 무차별 도려내는 여성 저항군 역할은 프랑스 배우 스테파니 오드런이 연기했다. 그는 유명한 프랑스 감독 클로드 샤브롤의 아내다.
종군기자로 깜짝 출연한 인물이 바로 새뮤얼 풀러 감독이다. 그는 한때 '뉴욕그래픽'이란 타블로이드 신문에서 기자로도 일했다.
마크 해밀이 연기한 그리프 역은 원래 로버트 캐러딘이 맡기로 했으나 마크 해밀이 캐스팅되면서 캐러딘은 잽 역할로 바뀌었다.
마크 해밀은 2005년 콘솔용으로만 출시된 게임 '콜 오브 듀티2 : 빅 레드 원'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발지 전투 때 미군 병사로 위장 잠입한 독일군을 처치하는 장면은 리 마빈이 격앙돼 일찍 촬영을 마쳤다. 그날 리 마빈의 절친한 친구 로버트 쇼가 죽어서 마빈이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히틀러를 지지하며 미군들을 막아선 독일 민병대 역할은 유대인들이 맡았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감시를 맡은 독일군 역할들도 인근 이스라엘부대의 군인들이 연기했다. 풀러 감독도 유대인이다.
기회주의적인 독일 백작 부인을 연기한 크리스타 랭은 풀러 감독의 아내다.
폐허가 된 고성 전투 장면은 아일랜드의 낡은 성에서 촬영. 풀러 감독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도 출연하기를 원했으나 음악 작업 때문에 무산됐다.
풀러 감독은 영화처럼 체코의 폴크노 강제수용소를 해방시켜 종전을 맞았다.
지옥의 영웅들 SE (2disc)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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