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첼리스트 고슈

울프팩 2013. 6. 17. 23:47

평생을 가난하게 산 일본의 시인 겸 작가 미야자와 겐지는 꽤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났다.
전당포 주인이었던 아버지는 벌이가 쏠쏠했다.

그런데 겐지의 생각은 달랐다.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해 돈을 벌고 싶지 않았던 그는 농고를 나와 농업학교 교사가 됐다.

일부러 허름한 오두막에 살며 직접 농사를 짓고, 비료를 이용한 새로운 농사법도 연구했다.
또 고단한 농민들을 위해 연주할 목적으로 첼로를 배웠다.

하지만 장마와 냉해로 애써 연구한 농업 기술이 무효가 됐다.
농민들은 기대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자 그에게 등을 돌렸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어렵사리 자비로 펴낸 한 권의 시집과 한 권의 동화집은 딱 다섯 권 팔렸다.
당시 일본 사회는 군부 주도의 군국주의가 한창 팽배하던 시절이라 시집과 동화책이 파고들 틈이 없었다.

시름 시름 결핵을 앓던 여동생도 세상을 떴다.
그렇게 브나로드 운동을 폈던 겐지는 혹독한 노동과 간고한 삶에 피폐해졌고, 결국 결핵에 걸려 1933년 뜻한 바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불과 37세였다.
그가 죽고 나서 친구들은 유품 속에서 원고를 하나 발견했다.

두 친구가 은하열차를 타고 가면서 만난 사람들 얘기를 다룬 '은하철도의 밤'이라는 동화였다.
훗날 전설적인 TV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원작이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던 겐지는 생전 이루지 못한 꿈을 죽어서 글로 이루었다.
그가 남긴 다소 이상적이면서 향토색 짙은 동화들은 다시 조명을 받았고 영화 연극 등으로 재탄생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중편 애니메이션 '첼리스트 고슈'(1981년)다.
시골 악단의 첼리스트가 밤마다 동물들과 연습하며 자연스럽게 뛰어난 연주가가 되는 이야기다.

이 와중에 동물들은 그의 음악을 들으며 위안을 얻고 아픈 곳이 낫기도 한다.
그렇게 깨우친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니, 결국 자연과 사람은 하나인 셈이다.

그 합일의 메시지를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것은 더 할 수 없이 서정적인 영상이다.
마치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농담 짙은 수채화풍 그림은 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배경그림을 그린 무쿠오 다카무라도 1992년 사망했다.
무쿠오 다카무라는 '엄마찾아 삼만리' '베르사이유의 장미' 등에서 뛰어난 배경을 맡았던 인물.

여기에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테마로 사용해 마치 동양판 '환타지아'(http://wolfpack.tistory.com/entry/환타지아-SE-블루레이)를 보는 것 같다.
그만큼 영상과 음악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런 편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플리커링이 보이고 초반 프레임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색감이 더 좋았더라면 물의 농담이 제대로 살아날 텐데 아쉽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제작자와 감독 작화가 등의 인터뷰가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서양 소설이나 동화가 저패니메이션의 주류이던 시절, 순수 일본 작품을 원작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기획됐다.
캐릭터는 사이다 토시츠쿠 혼자서 그렸다. 그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엄마찾아 삼만리' '은하철도 999' 등에도 참여했다.
처음 제작 회의에는 미야자키 하야오도 참여해 레이아웃을 맡기로 했으나 사정이 생겨 빠졌다.
첼로 연주 장면을 위해 제작진은 8mm 필름으로 아마추어 악단의 연주를 녹화한 뒤 영상을 연주했고, 첼로연주자에게 운지법과 활 다루는 법 등을 따로 배웠다.
그래서 작품 속 첼로 연주 장면은 음악과 맞아 떨어지며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무쿠오 다카무라는 칠을 한 뒤 물을 발라 농도를 조절하고 그 위에 색을 칠한 뒤 말린 다음 다시 물을 바르고 색칠하기를 여러 번 되풀이했다. 덕분에 물과 색이 번지면서 여러 색이 자연스럽게 겹쳐 보인다.
고슈가 연주하는 첼로 음악은 마미야 미치오가 연주했다. 그는 극 중 나오는 '인도의 호랑이 사냥' '유쾌한 마차가게' 등 두 곡을 작품을 위해 작곡했다. 처음에는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조곡을 사용하려고 했으나 마미야가 작곡을 해 이를 사용했다.
원작자인 미야자와 겐지는 노동에 지친 농민들에게 위안이 되도록 첼로 연주를 배웠다. 또 첼로 연주곡을 남기기도 했다.
첼로켜는 고슈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미야자와 겐지 전집 1
미야자와 겐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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