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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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워(블루레이)

울프팩 2020. 4. 18. 17:36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콜드 워'(Cold War, 2018년)가 그린 사랑은 처절하고 아프다.

1949년부터 이어진 두 남녀의 사랑은 지난하게 이어지면서도 차갑고 엄혹한 현실에 면도날처럼 가슴을 베인다.

 

감독의 부모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 작품은 폴란드의 마주르카 문화예술단원인 두 남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마주르카 예술감독이었던 빅토르(토마즈 코트)와 신입단원 줄라(요안나 쿨릭)는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 와중에 폴란드의 전통 음악을 알리기 위해 창단된 마주르카 예술단은 구 소련의 입김이 점점 강해지면서 정치색 강한 공연을 요구받는다.

이를 견디지 못한 빅토르는 줄라와 폴란드를 벗어날 계획을 세운다.

 

두 사람은 동베를린 공연을 기회로 보고 탈출하기로 하지만 줄라가 합류하지 못한다.

결국 혼자 파리로 떠난 빅토르는 그곳에서 줄라를 기다린다.

 

두 사람은 각자 결혼하거나 애인도 있지만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한다.

마주르카가 해외 공연을 할 때마다 어렵게 만남을 이어가던 빅토르는 결국 줄라를 못 잊어 힘든 결심을 한다.

 

망명처럼 떠난 조국 폴란드로 줄라를 찾아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

빅토르에게는 죽음이나 다름없는 회귀다.

 

실제로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부모는 40년간 냉전 시대를 관통하는 힘든 사랑을 했다.

폴란드 상류층 출신의 발레단 무용수였던 어머니는 의사였던 아버지와 유럽 각지를 오가며 고통스러운 사랑을 했다.

 

그 사이 어머니는 영국인과 결혼도 했으나 나중에 아버지와 다시 연을 이어갔다.

감독의 부모는 1980년대 폴란드에서 결합했으나 1989년 세상을 떠났다.

 

공교롭게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감독의 부모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

감독은 모든 것에 이념이 우선했던 냉전 시대에는 사랑도 힘들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비단 이야기뿐만 아니라 영상도 흑과 백의 두 가지 무채색으로만 표현했다.

여기에 냉전 시대 흑백 TV처럼 4 대 3 화면비를 통해 감옥에 갇힌 것처럼 고통스러운 상황을 묘사했다.

 

아무래도 와이드 스크린보다 시야가 좁은 4 대 3 풀 스크린은 이런 답답한 상황에 잘 어울린다.

두 사람의 힘든 사랑은 음악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서방으로 달아난 빅토르는 1970년대 유행했던 파리의 클럽에서 재즈를 연주하며 살아간다.

냉전 시대 공산국가에서는 서방의 퇴폐 음악이었던 재즈를 금지했다.

 

하지만 빅토르에게 재즈는 곧 자유의 상징이었다.

아울러 조국 폴란드 그리고 연인 줄라와 함께 할 수 없는 고통의 음악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떨어져 있던 연인은 서로의 다른 음악만큼이나 사랑만으로 시간의 간극을 좁히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줄라 역시 재즈는 자신을 버리고 사라진 빅토르의 보이지 않는 세월을 대변하는 음악이다.

 

이는 곧 줄라에게 고통의 세월이며 질투의 시간이기도 하다.

하필 빅토르는 파리에서 자신을 돌봐준 여류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줄라가 부르도록 한다.

 

이를 견디지 못한 줄라는 취입한 노래가 크게 히트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빅토르 곁에 남지 못하고 폴란드로 돌아간다.

이후 빅토르에게 재즈는 더 이상 자유의 음악이 아니다.

 

고통스러운 사랑을 끊임없이 되씹게 하는 번뇌의 음악이다.

결국 빅토르가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비롯해 모든 것을 버리고 줄라를 찾아 폴란드로 떠나는 것은 줄라만이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누구의 사랑과 희생이 더 컸는지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 없다.

그런 빅토르의 존재 자체가 줄라에게도 평생 지울 수 없는 낙인 같은 기쁨이요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카메라는 마지막 결말에서 빈 자리를 비춘다.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아도 스산하면서도 쓸쓸한 풍경을 통해 처절하면서도 불꽃같은 사랑의 결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칭찬하고 싶은 것은 냉전 시대 치열하게 대립했던 이념만큼이나 등장인물들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둔 깔끔한 연출이다.

덕분에 스스로 감정 과잉으로 치닫지 않으면서도 보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움, 괴로움, 즐거움, 슬픔, 분노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요동치게 만든다.

 

특히 흑백 고전영화처럼 암전을 이용한 장면 전환이 인상적이다.

상황 정리와 더불어 고양된 감정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더불어 남녀 배우들의 연기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줄라를 연기한 요안나 쿨릭의 연기가 발군이다.

 

개성 강한 외모의 쿨릭은 극 중 모든 노래를 직접 부르면서 복잡 다단한 감정을 다양한 표정 연기로 잘 표현했다.

그의 서늘한 눈빛은 수많은 대사를 뛰어넘는 힘이 있다.

 

새삼 영화를 보고 나면 이념뿐 아니라 사랑도 냉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는 고요하고 무탈해 보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사람의 감정은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질투, 애정과 분노, 회한과 연민이 복잡하게 소용돌이치기 때문이다.

 

포리코브스키 감독을 다시 보게 만드는 훌륭한 작품이다.

1080p 풀 HD의 1.37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정갈한 흑백 영상이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적당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공연 장면이나 클럽 장면에서 리어 채널을 적절하게 활용해 공간감을 강조했다.

 

부록으로 칸 영화제 기자회견, 제작과정, 제작진 인터뷰, 예고편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모든 영상은 HD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화는 빅토르가 폴란드 각지를 돌며 사람들을 만나 전통음악을 수집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지역 곳곳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소리를 발굴해 사람들에게 들려주겠다는 마주르카 예술단의 취지를 보여준다.
냉전 시대 남녀의 사랑을 다룬 이 영화는 결국 이념조차도 갈라놓을 수 없는 남녀의 치열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촬영은 '이다'와 '러빙 빈센트'를 찍은 루카스 잘이 맡았다.
감독이 선택한 4 대 3 화면비는 갇힌 듯 답답하면서도 깊어 보인다. 즉 외연을 확장할 수 없지만 안으로 파고드는 깊이감을 통해 끝 모를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화면비일 수 있다.
감독은 폴란드의 마조프셰 민속음악단을 토대로 극중 마주르카 예술단을 표현했다. 마조프셰 민속음악단은 폴란드 전통음악을 알리기 위해 1949년 창단됐으나 나중에 정치적 선전 수단으로 쓰였다.
제작진은 실제로 마조프셰 민속 예술단의 음악을 담았다. 요안나 쿨릭은 반년간 폴란드의 마조프셰 민속음악단과 같이 지내며 각종 전통 음악과 춤을 배웠다.
감독은 거짓처럼 보이기 싫어서 흑백영화로 찍었다. 냉전시대는 흑과 백 영상처럼 적과 아군 두 가지 뿐이었다.
포리코브스키는 감독이 되기전에 음악도 했고 사진촬영과 글을 쓰는 일도 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작품 속에 골고루 녹여 냈다.
과거 유고슬라비아였던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에서도 촬영. 포리코브스키는 유고에서도 오래 살았다.
감독은 처음부터 여주인공 역할로 요안나 쿨릭을 염두에 두고 대본을 썼다.
알렉사 카메라와 울트라 프라임 렌즈를 사용해 촬영.
요안나 쿨릭은 눈을 감은 얼굴이 매력적이다. 그는 묘하게도 눈을 감았을 때 얼굴에 더 많은 감정이 드러난다.
주제가인 노래 '심장'은 요안나 쿨릭이 직접 불렀다.
파리의 지붕밑에 혼자 남은 빅토르. 감독은 10년 이상 이 작품을 준비했다. 그는 이 영화로 제71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감독은 발레리나와 의사였던 부모의 직업 및 출신 등을 영화에 맞게 바꿨다. 감독의 부모는 유럽 각지를 오가며 힘든 사랑을 한 끝에 1980년대 폴란드에서 합쳤으나 1989년 우여곡절 끝에 사망했다.
포리코브스키 감독은 10대 시절 영국에서 자랐고 프랑스와 폴란드, 유고 등지에서 살아서 6개 국어를 한다.
요안나 쿨릭은 감독의 전작인 '이다'에서 주연을 했고 전도연이 출연한 '집으로 가는길'에도 전도연과 같은 감방을 쓴 여성으로 나온다. 그는 배우 이전에 가수 준비를 해서 노래를 잘 부른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콜드워 (1Disc)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요안나 쿨릭, 토마즈 코트 (출연)
 
콜드 워 (1Disc 풀슬립 한정판)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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