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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마리 달마시안(블루레이)

울프팩 2020. 4. 25. 16:58

디즈니 애니메이션 역사에 있어서 변화를 초래한 기념비적 작품들이 몇 편 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디즈니뿐 아니라 영화 사상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이었고, '신데렐라'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경영난을 겪던 디즈니를 살린 작품이다.

 

극장용 멀티 사운드 시스템 개발의 계기가 된 '환타지아'는 흥행에 실패해 월트 디즈니가 작품을 고를 때 흥행을 우선하도록 만들었고, '레이디와 트램프'는 디즈니가 자체 배급사인 브에나비스타의 설립 계기가 됐다.

멀티 플레인 기술을 처음 개발해 적용한 '밤비'는 애니메이션에 3차원 원근법을 도입하게 된 최초의 작품이었고, 나중에 드림웍스를 설립한 제프리 카젠버그가 영입돼 만든 '인어공주'는 1980년대 부서 폐쇄까지 심각하게 고려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부활을 알린 작품이다.

 

혁신적인 기술의 승리

위에 작품들보다 유명세는 상대적으로 덜 하지만 클라이드 제로니미, 해밀턴 러스크, 울프강 라이트만이 공동 감독한 '101마리 달마시안'(One Hundred And One Dalmatians, 1961년)도 디즈니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내용은 달마티안 강아지를 훔쳐서 가죽을 벗겨 코트를 만들려는 악당들에게 잡혀간 강아지들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벌이는 달마티안 한 쌍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손으로 일일이 아세테이트지에 원화를 옮겨 그리며 셀 작업을 하던 디즈니 스튜디오에 처음으로 기계를 도입하게 만들었다.

그 기계는 바로 제록스가 개발한 복사기였다.

 

디즈니가 이 작품을 준비하던 1960년에 제록스는 복사기를 내놓았다.

월트 디즈니의 친구이자 '미키 마우스'를 그린 애니메이터 업 아이월크스는 제록스 복사기를 연구해 종이가 아닌 아세테이트지 위에 이미지를 투사하는 방식의 기계를 만들었다.

 

덕분에 101마리 달마티안 강아지마다 각기 다른 검은 점 문양을 어떻게 옮겨 그려야 하나 걱정하던 디즈니의 고민이 일시에 해결됐다.

디즈니는 복사기 덕분에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이 앉아서 일일이 아세테이트지에 옮기지 않아도 원화와 똑같은 셀 필름을 제작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을 줄이게 됐다.

 

비용 절약은 곧 인력 감소를 의미한다.

굳이 원화를 옮겨 그리는 사람이 필요 없게 돼 이 일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그런 점에서 디즈니 역사에 이 작품은 명암을 드리운다.

정작 월트 디즈니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한 복사기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당시 복사기 기술의 한계 때문에 원화가 깨끗하게 복사되지 않고 선이 번지듯 거칠었기 때문이다.

깔끔한 손 그림을 좋아한 월트 디즈니는 마치 밑그림 스케치가 드러난 듯한 거친 선의 복사 그림을 싫어했으나 사람들에 따라서는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다른 이 작품의 색다른 그림을 좋게 봤다.

 

실제로 작품을 보면 마치 스케치 선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놔둔 그림 같다.

하지만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거친 윤곽선의 그림체는 오히려 작품 내용과 잘 어울렸다.

 

그렇다고 그림이 엉망인 것은 아니다.

작품의 무대가 된 런던 거리 풍경이나 달마티안을 키우는 로저의 집안을 그린 그림을 보면 세련된 도회풍 잡지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보는 것 같다.

 

여기에 개가죽으로 옷을 만들려는 희대의 악당은 마치 힙합 패션 같은 시대를 앞서간 독특한 외양으로 눈길을 끈다.

무려 101마리나 되는 달마티안도 제각기 다른 검은 점의 모양과 위치로 개성을 발휘한다.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은 강아지들을 헷갈리지 않기 위해 검은 점의 모양을 별자리처럼 표시했다.

그림뿐 아니라 이야기도 흥미롭다.

 

영국의 동화작가 도디 스미스가 아이들을 위해 1956년에 펴낸 원작 동화 '101마리 강아지'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개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즉 개가 자신을 기르는 주인을 반려동물처럼 여기며 스스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는 부분이 재미있다.

 

개들은 지역 통신망까지 갖춰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등 사람과 다른 그들만의 협업 세계를 보여준다.

그림도 개의 눈높이에서 그렸다.

 

그러다 보니 노래와 춤이 주가 되는 뮤지컬 방식의 이전 디즈니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노래와 춤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101마리 달마티안이 악랄하면서도 어수룩한 악당들과 벌이는 아슬아슬한 추격전이다.

 

이를 위해 디즈니는 독특한 방식을 도입했다.

자동차 모양을 종이로 만들어 촬영한 뒤 이를 보고 그림을 그린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3D 모델링을 무려 60년 전에 종이로 구현한 셈이다.

그만큼 이 작품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은 위대하고 뛰어났다.

 

'왕을 거스른 남자' 켄 앤더슨의 고통

그러나 이 때문에 고통을 받은 사람이 있다.

이 작품의 미술감독 켄 앤더슨이다.

 

월트 디즈니는 이전 작품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그림 스타일을 밀어붙인 켄을 죽을 때까지 미워했다.

지금 다시 봐도 획기적인 기술과 방법을 도입해 개성 강한 그림으로 흥행에 성공까지 했으나 월트 디즈니는 자신의 스타일을 따르지 않은 켄 앤더슨을 이후 작품에서 완전히 배제시켰다.

 

디즈니 왕국의 절대 군주인 월트 디즈니의 심기를 거스른 대가였다.

이후로 디즈니에서는 켄 같은 혁신가를 다시 볼 수 없었다.

 

늘 같은 방식의 이야기와 그림체로 비슷비슷한 작품을 되풀이해서 만들어냈다.

그 바람에 디즈니는 1967년 '정글북' 이후 1989년 '인어공주'가 등장할 때까지 오랜 기간 애니메이션 침체기를 겪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인어공주' 이전에 디즈니 스튜디오가 보여준 혁신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1080p 풀 HD의 4 대 3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뛰어나다.

 

1960년대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색감이 찬란하고, 오래된 작품인데도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게 복원됐다.

DTS HD MA 7.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진 편은 아니다.

 

이 작품도 음량이 좀 작다.

이는 디즈니 타이틀 특유의 고질적 문제다.

 

부록으로 극 중 TV 애니메이션, 제작과정, 개 관련 단편 다큐멘터리, 캐릭터 소개, 원작자와 월트 디즈니의 교류, 뮤직비디오와 삭제 장면 등 다양한 내용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일부는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참고로 이 타이틀은 개별 디스크 또는 개별 기기의 문제일 수 있으나 오포 203 4K 블루레이 플레이어, LG전자의 PC용 GGC-H20L 블루레이 롬 드라이브에서 일부 장면이 튄다.

오포에서는 1시간 18분 46초 부분이 튀고, H20L에서는 1시간 18분 38초에서 46초 부분을 재생하지 못한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달마티안은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 지방이 원산지다. 달마티아는 지금의 두브로브니크다.
이 작품은 제록스 복사기 방식을 셀 작업에 도입한 덕분에 애니메이터를 300명으로 줄였다. 일일이 셀을 수작업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600명의 애니메이터가 투입됐다.
원작자인 도디 스미스는 영화 판권을 구입한 월트 디즈니와 서신을 주고 받으며 교류했다. 도디 스미스는 런던 리젠트 공원을 그릴 수 있도록 각종 런던 사진을 디즈니에게 보내기도 했다.
월트 디즈니는 원작에서 회계사인 로저의 직업을 작곡가로 바꿨다.
악당 크루엘라의 목소리는 '메리 포핀스'에 출연한 배우 베티 루 거슨이 연기했다. 이와 별도로 '내사랑 루시'에 나온 배우 메리 윅스가 크루엘라의 동작을 연기해 이를 보고 애니메이터들이 그림을 그렸다.
TV 시대를 반영하듯 악당들과 개들이 TV를 보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360만달러를 들여 만든 이 작품은 1961년 개봉 당시 9주간 흥행 1위를 하며 북미에서만 5,700만달러를 벌어들여 경영 압박을 받던 디즈니 스튜디오를 살렸다.
이 작품은 디즈니가 뮤지컬 형식에서 벗어난 최초의 작품이다. 노래가 나오지만 대사를 대신하지는 않는다.
이 작품이 흥행하면서 유럽에서 달마티안을 기르는 사람들이 늘었으나 워낙 달마티안이 말을 듣지 않는 편이어서 유기견도 늘었다.
드래곤볼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는 이 작품을 보고 그림 그리기에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제작진은 흰 카드보드지로 차 모형을 만들어 여기에 실을 매달아 검은 천 위에서 움직이며 동작을 촬영한 뒤 이를 그림으로 재현했다.
원작자 도디 스미스는 이 작품을 보고 원작의 단점을 보완해줬다고 극찬했다.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101마리 달마시안 : 블루레이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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