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추천 DVD / 블루레이

환타지아 SE (블루레이)

울프팩 2011. 8. 7. 23:07

언제나 사람들에게 꿈과 낭만을 심어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월트 디즈니는 1940년 '환타지아'(Fantasia, 1940년)로 클래식과 애니메이션의 만남이라는 환상적인 결합에 도전한다.
당시 디즈니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성공으로 꽤 많은 돈을 벌었기에, 자신의 생각이 큰 성공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했다.

갖고 있던 모든 자산을 털어부은 것은 물론이고 1,000여명의 제작진이 3년 간 오로지 이 작품에 매달렸다.
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클래식 사운드를 위해 스테레오가 나오기도 전에 최초의 극장용 멀티시스템인 판타사운드라는 독특한 음향 시스템까지 개발했다.

그러나 이렇게 공들인 디즈니의 작업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가 얘기한 꿈과 환상은 제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사람들이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판타사운드 재현을 위해 64개의 스피커를 천장에 설치하겠다고 나서는 극장이 없었다.

결국 '환타지아'의 처참한 실패는 이를 연작으로 만들려던 디즈니의 계획을 무산시켰고, 이후 디즈니의 작품 선택이 흥행 위주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잊혀져가던 비운의 작품 '환타지아'가 다시 조명을 받은 것은 플라워 무브먼트, 즉 히피들 덕분이었다.

1960년대 사이키델릭 붐이 일던 시절, 미국의 청춘들은 클래식 선율과 함께 나타나는 환상적인 영상에 취했다.
덕분에 컬트 영화처럼 이 작품은 다시 사랑을 받았고, 훗날 LD, 비디오테이프 등 부가판권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의 묘미는 바흐부터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슈베르트, 스트라빈스키 등 최고의 클래식 작곡가들의 명곡을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눈과 귀가 즐거운 영화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의 지휘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연주는 물론이고 음악을 절묘하게 영상화한 디즈니 작화가들의 솜씨가 뛰어나다.
특히 컴퓨터 그래픽도 없던 시절 허먼 슐타이스가 고안한 특수효과 기법은 지금 다시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마디로 위대한 예술가들의 땀과 꿈이 녹아든 명작이다.

1080p 풀HD의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영상이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물로 씻은 듯 잡티하나 없이 깨끗하다.
무려 70년 전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색감도 영롱하고 화질이 좋다.

음향은 DTS-HD 7.1 채널을 지원한다.
디즈니가 최초의 멀티사운드를 꿈꾸며 공들여 녹음한 만큼 소리의 이동을 정확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서라운드 효과가 환상적이다.

부록으로 디즈니 연구가의 음성해설과 디즈니 뮤지엄, 특수효과 설명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훌륭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클래식의 시각화라는 금자탑을 세운 작품. 지휘는 디즈니 팬이던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맡았다.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쓰는 악곡을 뜻하는 판타지아라는 제목은 스토코프스키가 제안했다.
곡과 곡 사이 해설을 맡은 인물은 당시 유명 클래식 평론가 겸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였던 딤스 테일러였다. 특이하게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서서 해설하는 모습이 격식을 파괴한 느낌을 줬다.
디즈니는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조곡 중 '꽃의 왈츠'가 흐를 때 객석에 향기를 날리는 방법까지 생각했다.
이 작품 가운데 너무 유명한 뒤카의 교향시 '마법사의 제자'. 디즈니에게 미키마우스는 행운의 부적같은 존재였다. 이 작품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했지만, 이 부분만 유일하게 스토코프스키가 직접 고른 100명의 연주자가 따로 녹음했다.
'마법사의 제자' 편에 나온 거만한 마법사는 월트 디즈니가 모델이다. 마법사 이름 옌시드(Yen Sid)는 디즈니를 거꾸로 쓴 것이며,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는 표정 또한 디즈니의 특징이다.
이 작품의 뒤에는 유명한 특수 효과 담당인 독일계 허먼 슐타이스가 있다. 아마추어 인류학자이자 고고학자였던 그는 1933년 이탈리아 여행 중 실제로 베수비오스 화산 폭발 장면을 목격하고 찍었던 사진과 경험을 토대로 화산 폭발 장면을 만들었다. 이 장면은 물에 흰 페인트를 흘려 퍼지는 장면을 촬영한 뒤 거꾸로 현상했다.
허먼 슐타이스의 특수효과가 빛을 발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이 장면은 실수로 렌즈를 잘못 끼우고, 지진이 발생해 무려 3번이나 찍었다. 허먼 슐타이스는 50년대 과테말라 여행 중 정글에서 실종됐다.
'봄의 제전'을 작곡한 스트라빈스키는 이 부분에서 스토코프스키의 지휘가 형편없다고 혹평했다.
디즈니는 이 작품을 위해 판타사운드를 고안했다. 여러 개의 마이크가 각각의 악기 파트를 녹음한 이 기법은 총 8트랙으로 녹음했으나 극장들이 시스템 설치에 난색을 표해 결국 모노 녹음으로 개봉했다.
스토코프스키는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 사용을 반대했다. 너무 유명한 곡이어서 진부하게 보일까봐서였다.
베토벤의 '전원'에서 페가수스가 하늘을 미끄러지듯 나는 장면은 훗날 많은 영화들이 참고했다. 말이 공중에 떠있을 때 다리 모양과 착지 자세 등은 지난해 개봉한 '타이탄'이 그대로 흉내냈다.
폰키엘리의 '시간의 춤'에 나오는 발레 장면은 발레리나인 아리나 바로노바의 춤을 촬영해 그렸다.
물의 요정 발레는 1938년 개봉한 영화 '더 골드윈 폴리스'에서 발레리나 베라 조리나가 풀에서 나오는 장면을 흉내냈다. 베라 조리나는 거장 발레리노인 조지 발란신의 아내다.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촬영을 위해 디즈니는 수평 크레인 카메라를 만들었다. 무려 90~120cm에 이르는 판유리에 그림을 그린 뒤 크레인으로 카메라를 패닝하며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