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기타노 다케시 12

아웃레이지

비정한 조폭들의 세계를 다룬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하나비'나 '소나티네'가 인상깊었다면 '아웃레이지'(Outrage, 2010년)를 볼 때는 두 작품을 잊는게 좋다. 같은 감독이 각본 연출 편집에 주연까지 했지만 기대에 크게 못미쳤기 때문이다. 심지어 '브라더스'만도 못하다. 기타노 다케시가 만든 이 작품은 그의 특기인 야쿠자 영화다. 조직에서 출세하기 위해 배신과 권모술수를 일삼는 야쿠자들의 비정함을 다룬 내용. "더 이상 의리를 찾지 않는다"는 대사처럼 예전같지 않은 야쿠자들의 세계를 잔혹 폭력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기타노 다케시 특유의 조직에 매몰되지 않은 사내의 비장미는 보이지 않고 밑도 끝도 없는 폭력만 남았다. 아무리 기타노 다케시가 "죽이는 방법을 먼저 생각하고 이야기를 만든" 영화라고는 ..

자토이치 (기타노 다케시 컬렉션 중에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자토이치'(2003년)는 참으로 독특한 영화다. 전통적인 검객이 등장하는 무협 영화에 슬랩스틱 코미디와 신명나는 탭댄스가 곁들여졌다. 거기에 맹인 검객 자토이치는 짧게 깎은 머리를 금색으로 물들였다. 장르에 설정까지 모두 뒤섞인 이 영화를 굳이 표현하자면 퓨전 영화로 부를 수 있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맹인 검객이 마을의 악당들을 일소하는 내용의 이 영화는 전혀 어색하지 않고 아주 재미있는 시대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워낙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작품들이 독특해서 이런 스타일 또한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덕분에 이 작품은 베니스영화제 감독상과 토론토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다. 실제로 전광석화같은 칼싸움에 양념처럼 끼어든 코미디, 막판 탭댄스가 서로 조화를 이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기타노 다케시 컬렉션 중에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작품 가운데 처음보고 홀딱 반해버린 작품이 바로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1992년)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년이 파도타기에 빠져들면서 벌어지는 잔잔하면서도 애틋한 일화를 다룬 이 작품은 서정적인 영상과 아름다운 음악이 한 편의 시화처럼 어우러졌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 작품 가운데 그가 출연하지 않으며 깡패와 폭력 장면이 전혀 없는 유일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일상 속의 소소한 유머와 허무주의는 변함이 없다. 생의 목표와 사랑을 바다가 집어삼켜도 세상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너무나도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마치 스크린 뒤에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특유의 냉소를 띄고 바라보는 듯 하다. 이번에 11장의 디스크로 구성돼 출시된 기타노 다케..

브라더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감독의 '브라더'(Brother, 2000년)는 미국판 '소나티네' 같은 영화다. 야쿠자 조직의 싸움에서 수세에 몰린 야마모토(기타노 다케시)는 일본을 등지고 홀로 미국 LA로 떠난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야마모토는 LA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약을 팔며 근근이 살아가는 배다른 동생과 흑인 건달들을 모아 깡패 조직을 만든다. 조직이 커가면서 이탈리아 마피아들과 부딪치게 되고 야마모토는 다시 원치 않는 조직 간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일본의 야쿠자 영화를 미국에 가져가고 싶었다"는 기타노 다케시는 바람대로 LA를 휘젓는 일본 깡패영화를 만들었다. 기타노 특유의 피비린내 나는 강도 높은 폭력 묘사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액션이 아니라 스산한 음악이다...

피와 뼈

재일교포 감독인 최양일이 만든 '피와 뼈'(血と骨, 2004년)는 강렬한 제목만큼이나 흡입력 강한 작품이다. 제11회 야마모토 주고로 문학상을 수상한 양석일의 원작을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 때 오사카로 건너가 파란만장한 삶을 산 김준평(기타노 다케시 北野武)이라는 사내의 이야기다. 젊은 시절 꿈을 안고 도일한 그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에게 더없이 폭력적이고 위악적이다. 아내와 자식들은 물론이고 타인에게도 가혹한 폭력을 휘두르는 그는 사람들에게 가장이자 아버지이기 이전에 동물적인 본능을 내세운 남자이며 광기에 휩싸인 괴물로 기억된다. 최 감독은 일본 무사들의 동성애를 다룬 '고하토'에서 함께 연기한 기타노 다케시를 주연으로 기용해 세상을 험하게 산 사내와 가족의 이야기를 선 굵은 그림으로 보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