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동성애 10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블루레이)

1990년대 후반, 특이한 취재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언론을 통해 처음 커밍 아웃을 하게 된 어느 여성이다. 한창 혈기방장한 20대에 어울리게 가죽 옷을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담배를 피워물던 그는 록커 느낌이 물씬 났다. 아닌게 아니라 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고, 다소 약간은 겉멋처럼 동성애에 빠져든 그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서울 신촌 사거리에 있는 여성 동성애자들의 아지트 같은 카페를 방문했다.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출입을 막지는 않았지만 금남의 집이나 다름없는 그 곳에 여기저기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개중에는 정장에 넥타이를 맨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소개로 하나 둘 만나보니 그곳에 남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큰 키에 청바지와 남방을 받쳐 입고, 머리를 군인처럼 짧게 자른 선머슴 ..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

어느날 엄마가 세 딸들 앞에 애인을 데려온다. 그런데 애인이 하필 여자다. 알고보니 엄마가 레즈비언이었던 것. 스페인의 여류 감독 콤비인 다니엘라 페허만과 이네스 파리스가 만든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A Mi Madre Le Gustan Las Mujeres, 2002년)는 엄마가 동성애자라는 소재를 다룬 코미디다. 성에 대해 개방적인 유럽 영화답게 출발부터 독특한 이 영화는 동성애자 엄마 때문에 괴로워하는 딸들의 고민을 담았다. 딸들은 엄마의 애인을 떼어놓기 위해 둘째인 엘비라(레오노르 와틀링)가 나서 엄마의 애인인 엘리스카(엘리스카 시로바)를 유혹한다. 일단 흔치 않은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점은 신선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상황이 억지스럽다. 일과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는 ..

프랑소와 오종 단편집

예전 알토미디어에서 나온 '프랑소와 오종 컬렉션' DVD에 포함된 '프랑소와 오종 단편집'(Short Films of Francois Ozon)은 5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수록작은 '진실 혹은 대담'(Truth or Dare, 1994년), '어떤 죽음'(Little Death, 1995년), '썸머 드레스'(A Summer Dress, 1996년), '베드씬'(Bed Scene, 1998년), '엑스2000'(X2000, 1998년) 등이다. 이 작품들은 성에 대해 당혹스러울 정도로 개방적인 오종 감독의 시각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왕게임을 연상케 하는 10대들의 놀이와 게이 및 레즈비언 커플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그 내용이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고 담대해 보는 이에게 충격을 주며 ..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

유럽 감독들이 흔히 그렇듯 프랑소와 오종 감독도 성에 대해 자유로운 시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동성애, 변태성욕, 양성애 등 다양한 성적 표현들이 그의 영화에 등장한다.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Water Drops On Burning Rocks, 2000년)도 마찬가지. 이 작품은 50대 남성이 20대 청년을 유혹해 함께 사는 게이 커플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한 사랑으로 맺어졌는 지는 의문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에 맞출 것을 고집하는 중년 남성과 양성애를 즐기는 청년 등 삶의 모습들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두 남성 연인만 놓고 보면 이 작품은 퀴어영화지만 두 여성이 끼어들면서 영화는 양성애로 변질된다. 오종 감독은 스스로 자신의 작품들을 "양성애 영화'라고 언급했다. 동성애와 이성애의..

로프

영국 희곡작가 패트릭 해밀턴의 원작을 각색한 '로프'(Rope, 1948년)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공동설립한 영화사 트랜스애틀란틱의 첫 작품이자, 히치콕의 첫 번째 컬러영화다. 히치콕은 해밀턴의 희곡에 유명한 실화인 레오폴드와 로엡 사건을 섞었다. 1924년 미국 시카고대 학생이며 동생애 연인이었던 네이던 레오폴드와 리차드 로엡은 니체의 초인론에 빠져 우수한 두뇌를 입증하려고 이유없이 친구를 살해했다. 결국 꼬리가 밟혀 둘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히치콕은 이야기 뿐 아니라 구성도 연극을 그대로 따랐다. 즉, 영화는 마치 연극처럼 컷 없이 처음부터 한 씬으로 쭉 이어진다. 엄밀히 말하면 배우의 등을 크게 클로즈업으로 잡는 식의 트릭을 써서 컷을 넘겼지만 영화 속에서는 어찌나 자연스럽던 지 눈여겨 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