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애니메이션 174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블루레이)

나가이 다츠유키 감독의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心が叫びたがってるんだ, 2015년)는 말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들을 다룬 아픔과 치유의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인 나루세 준은 어린 시절 무심코 목격한 일을 이야기했다가 부모가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면서 "네가 한 말 때문에 이렇게 돼 버렸다"며 어린 딸을 책망한다. 결국 나루세 준은 그 일이 상처가 돼서 이후 입을 다물어 버린다. 오히려 말을 하면 배가 아픈 심인성 질환을 앓게 된다. 그런 그에게 담임 선생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뮤지컬을 만드는 일을 맡긴다. 언뜻보면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학교 친구들과 함께 하며 나루세 준은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나가이 다츠유키 감독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말 때문에 상처받는 일을 섬세하..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

도대체 이 영화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로테 라이니거 감독의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The Adventures Of Prince Achmed)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다. 다양한 색감의 배경을 바탕으로 마치 종이를 오려낸 듯한 캐릭터들이 움직인다. 캐릭터들의 문양이나 장식 등이 어찌나 섬세한 지 오랜 세월 쪼아낸 조각같다. 그런데 이토록 섬세한 캐릭터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니 신기하다. 물론 컴퓨터그래픽이 발달한 요즘은 일도 아니지만 이 작품의 제작 연도는 자그마치 90년전인 1926년이다. 영화를 만든 여류 감독 로테 라이니거는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개척자로 꼽히는 사람이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란 그림자 놀이와 흡사하다. 등불에 비친 손 모양이 만드는 그림자로 각종 동물을 만드는 놀이처럼 종이를 오..

노인들

흔히 치매로 알려진 알츠하이머병은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박사가 발견했다. 퇴행성 뇌질환인 이 병은 서서히 진행되는 점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기억을 잘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언어 능력을 상실하고 급기야 판단력이 떨어져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보통 65세 이후에 발병하는데 더러 40대 미만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재한 감독의 '내 머리속의 지우개'라는 영화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젊은 여성 이야기를 다뤘다. 젊은 나이에 걸리면 병의 진행속도가 빠르다. 발병 원인은 간단하게 말해 뇌 기능을 저하시키는 단백질이 과도하게 생성되면 그렇다는데, 유전적 요인이 절반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가족 중에 이 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발병 확률이 높다. 문제는 아직까지 치료방법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블루레이)

일본 저패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매년 여름이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찾는 산장을 신슈에 갖고 있다. 그는 그 곳에 친구 내외와 딸을 자주 초대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당시 10세 남짓한 친구의 딸이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또래 소녀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구상했다. 그렇게 만든 작품이 바로 장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년)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단순히 영감을 받은 것 뿐만 아니라 주인공 치히로의 모습도 친구 딸과 똑같이 그렸다. 나중에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본 친구 부부는 딸이 나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영화 개봉 뒤 많은 사람들은 작품 해석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미하엘 하네케 감독 말마따나 그것은 보는 사람들의 시각일 뿐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평론가..

고양이의 보은(블루레이)

저패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猫の恩返し, 2002년)은 새로운 지브리 스튜디오 시대의 출발을 알린 작품이다. 그전까지 지브리 스튜디오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번갈아 가며 작품을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그렇다보니 두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나이가 든 두 사람의 뒤를 이을 후계자 양성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러던 차에 1999년 일본의 한 테마파크에서 고양이를 소재로 한 20분 분량의 작품을 의뢰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전에 만든 작품 '귀를 기울이면'에 등장하는 고양이 바론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구상했다. 이를 토대로 '귀를 기울이면'의 원작 만화를 그린 히이라기 아오이에게 스토리 구성을 의뢰했다. 아오이가 그린 만화는 나중에 '바론 고양이 남작'이라는 만화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