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쿠엔틴 타란티노 17

재키 브라운

인기 감독이라고 무조건 모든 영화가 훌륭한 것은 아니다. 더러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아쉬운 작품이 나올 때도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재키 브라운'(Jackie Brown, 1997년)이 그런 영화다. 이 작품이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 결코 뒤떨어지거나 못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타란티노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펄프픽션' '바스터즈' '킬 빌' '데쓰프루프' 등 그의 화려한 필모그래피에 비춰봤을 때 허를 찌르는 역발상의 재기 넘치는 구성과 충격적인 영상에서 다소 밀렸다. 내용은 총기밀매상의 숨겨놓은 돈을 모두를 속이고 가로채려는 흑인 중년 여성의 음모를 다뤘다. 흑인 중년 여성을 강조한 이유는 타란티노 감독의 제작 의도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돈 없고 ..

아들을 동반한 검객

미스미 겐지 감독의 '아들을 동반한 검객'(1972년)은 흔히 찬바라 영화라고 알려진 일본 사무라이 영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찬바라란 칼날이 부딪칠 때 나는 소리와 피가 쏟아지는 소리를 합친 말이다. 그만큼 칼날이 번뜩이며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검객 영화를 뜻한다. 이 작품은 누명을 쓰고 자객이 돼서 떠도는 무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특이한 것은 어울리지 않게 유모차를 밀고 다닌다는 점. 그런데 어린 아들을 태운 유모차가 보통 유모차가 아니다. 바퀴에서 칼날이 튀어나오고 손잡이 등 곳곳에 무기를 숨겨 놓았다. 영화를 보다보면 유모차의 활약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언뜻보면 말도 안되는 황당한 영화같지만 만화적 상상력과 화끈한 폭력 묘사가 시선을 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코이케 카즈오와 코..

데스페라도 (블루레이)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데스페라도'(Desperado, 1995년)는 얼마나 잘 노는 지 보려고 멍석을 깔아줬더니 제대로 흥을 보여준 신명나는 놀이마당 같은 느낌이다. 마리아치 3부작 가운데 두 번째인 이 작품은 뜻하지 않은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콜럼비아사가 작심하고 돈을 대서 만들었다. 덕분에 안토니오 반데라스, 셀마 헤이엑, 스티브 부세미 등 호화 배역진이 총출동해서 로드리게즈 감독의 재능을 한껏 빛내줬다. 재료가 좋으니, 로드리게즈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영상이 빛을 발했다. 줄거리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복수에 나선 기타리스트의 이야기다. 설정만 비슷할 뿐 내용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굳이 전작을 보지 않았어도 상관없다. 요란한 총질도 모자라 로켓탄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종잇장처럼 날아가..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탐미적인 폭력을 즐긴다. 유희하듯, 때로는 공들여 도자기를 빚듯이 그가 만들어 내는 폭력은 잔혹하면서 미적인 감각이 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 속 거친 폭력 장면들은 영화를 위한 액세서리처럼 빛난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도 예외가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가상의 미군 특공대가 말 그대로 나치 사냥을 하는 얘기다. 야구방망이로 죽을때까지 사람을 두드려패고, 인디언처럼 시체의 머리가죽을 벗겨낸다. 폭력 앞에서는 나치만 사악하고 잔인한 것이 아니다. 전쟁통에 휩쓸린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미군이나 독일군이나 더 할 수 없이 잔혹하고 위악적이다. 인간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폭력의 맨 얼굴을 솔직하게 바라본 점이 바로 이 영화의 특징이자 타란티노식 미덕이다. 그렇다고 이 ..

영화 2009.11.01

킬 빌 1 (블루레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 촬영장에서 커다란 음악 소리에 맞춰 흥에 겨워 몸을 건들거리며 춤을 춘다. 그 모습만 보면 일하는 것인지, 노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영화 '킬 빌1'(Kill Bill vol.1, 2003년)을 보면 그가 빠져들었던 60, 70년대 액션 영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죽음 일보 직전까지 몰렸던 여인이 복수를 하는 과정을 다룬 이 작품은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영화의 꿈을 심어준 과거 액션 작품들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차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배우들의 의상은 물론이고 배경, 무대, 소품, 음악 하나 하나까지 과거 액션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도록 꼼꼼히 챙겼다. 덕분에 이 작품은 B급 액션영화로는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최고의 작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