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안나 카레니나 (블루레이)

울프팩 2013. 7. 31. 23:18
'전쟁과 평화' '부활'과 함께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3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안나 카레니나'는 그동안 10여차례에 걸쳐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 등으로 제작됐다.
그만큼 나중에 나온 영화들은 내용이 익히 알려졌으니 볼거리로 승부 할 수 밖에 없다.

얼마나 문학적 상상력을 영상으로 구현했는 지, 문학작품 최고의 여주인공으로 꼽히는 안나 카레니나를 얼마나 그럴 듯 하게 소화했는 지가 승부를 가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조 라이트 감독의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 2012년)는 절반의 성공이다.

조 라이트 감독이 워낙 미술과 의상 조명 구도 등 미장센에 공을 들이는 만큼 볼거리는 훌륭하다.
감독은 특이하게도 이 작품을 연극 무대처럼 꾸민 세트에서 대부분 촬영했다.

으례히 러시아 문학을 영화화하는 경우 광활한 러시아 땅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렇다 보니 같은 작품을 여러 번 영화로 만들면 풍경도 비슷할 수 밖에 없다.
조 라이트 감독은 이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러시아의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는 대신 한 장소를 다르게 꾸며서 찍는 세트 촬영이라는 역발상이었다.
마치 연극 무대처럼 동일 공간이 정신없이 바뀌는 장면을 보면 혼란스럽기도 하고 어리둥절하지만 좀처럼 다른 영화에서 보기 힘든 파격이다.

특히 연극적 무대 장치에 어울리는 화려한 미술이 눈길을 끈다.
정교하게 재현한 19세기 러시아 귀족사회의 풍경과 색감이 돋보이는 의상, 은은한 조명과 잘 어울리는 실내 장식과 벽 색깔 등은 '어톤먼트' '오만과 편견' 등에서 보여준 조 라이트 감독의 꼼꼼한 연출 감각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안타까운 것은 주인공이다.
과거 동명 영화에서 안나 카레니나 역할은 그레타 가르보, 비비안 리, 소피 마르소 등 뛰어난 미모와 연기력을 갖춘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맡았다.

과연 키이라 나이틀리가 그만한 배우인 지는 의문이다.
'어톤먼트' '오만과 편견' '러브 액츄얼리' 등 소소한 멜로 드라마나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처럼 가벼운 오락물에서는 개성 강한 외모와 톡톡 튀는 그의 매력이 빛을 발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안나 카레니나의 모습 위로 '캐리비안의 해적' 이미지가 계속 중첩되며 오히려 작품에 대한 몰입을 방해했다.
원작을 보면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안나 카레니나가 출중한 미모의 여인으로 나오는데, 키이라 나이틀리는 경국지색과 거리가 있다.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안나 카레니나 역할에 실망하다보니 영화 전체에 대한 매력도 반감된다.
더불어 파격이고 특이하긴 하지만 공간의 재활용이라는 연극적 설정도 별다른 설명없이 진행되다 보니 관객들에게 혼란을 준다.

분명 볼거리가 화려해서 눈을 즐겁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위대한 원작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새삼 무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톨스토이가 얼마나 위대한 작가인 지를 느끼게 된다.

1080p 풀HD의 2.40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의 화질은 예리한 맛은 덜하지만 시머스 맥가비 촬영감독이 의도한 은은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영상을 잘 살렸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또한 공간을 은은하게 감싸며 영상과 조화를 이룬다.

부록으로 감독 해설, 삭제장면, 의상, 세트, 제작과정 등이 들어 있으며 감독 해설을 제외하고는 한글 자막을 지원한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 play 표시가 있는 사진은 play 버튼을 누르면 관련 동영상이 나옵니다.*
조 라이트 감독의 부모는 '리틀 엔젤스'라는 인형극장을 운영했다. 공간을 연극 무대처럼 꾸민 설정은 기존 작품들과 차별화하려는 의도와 어린 시절에 대한 감독의 기억이 반영돼 있다.
의상을 담당한 재클린 듀런은 이 작품으로 제 85 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을 받았다. 그만큼 이 작품은 의상이 돋보인다.
조 라이트 감독은 의상을 고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디자인을 도입하기를 원했다. 여기 맞춰 재클린 듀런은 1950년대 디자인에 작품 배경이 되는 1870년대 분위기를 섞었다. 치마 뒷단이 길게 늘어지는 것은 1870년대 스타일이다.
안타깝고 실망스런 안나 역할의 키이라 나이틀리. 그는 오히려 웃지 않을 때가, 맨 얼굴보다 살짝 얼굴을 가렸을 때가 더 매력적이다.
한 편의 풍속화를 보는 듯한 영상. 바뀌는 무대 세트는 영국 런던 근교의 세퍼든 스튜디오에 만들었다. 조 라이트 감독은 리허설에 큰 비중을 두기 때문에 약 한 달에 걸쳐서 리허설을 했다.
무도회 장면을 위해 배우들은 전문 무용단과 한 달에 걸쳐 춤 연습을 했다.
의상을 맡은 재클린 듀런은 안나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위해 발렌시아가와 크리스찬 디올의 작품들을 참고했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실망스러웠다면, 주드 로는 충격이었다. '리플리'의 꽃미남은 온데간데 없고 너무나 무기력해 보이는 중년 남성만 남았기 때문. 주드 로는 대머리처럼 보이도록 머리를 깎았다.
음악은 조 라이트 감독의 '어톤먼트'에서 음악을 맡아 아카데미상을 받은 다리오 마리아넬리가 담당.
안나가 연인과 밀회를 즐기는 소풍 장면은 스톤헨지 유적지로 알려진 솔즈베리 평원에서 촬영.
원래 촬영 감독은 필립 루셀롯이었다. 그러나 그가 사전 제작단계에서 심한 좌골신경통을 앓아 '어톤먼트'에서 조 라이트 감독과 함께 작업한 시머스 맥가비가 맡게 됐다.
드넓은 평원에 사람들이 일렬로 늘어서 낫질을 하는 풍경은 이 작품에서 흔치 않은 야외 찰영 장면이다. 가장 러시아적인 느낌이 살아 있는 시퀀스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샤넬로부터 200만 달러 상당의 스파클링 다이아몬드 장신구 세트를 협찬받아 무도회 장면에서 착용했다. 만찬에 참여한 순정파 지주 레빈 역할로 제임스 맥어보이도 물망에 올랐다.
촬영은 와이드한 영상을 압축해 촬영한 뒤 복원해서 보여줄 수 있는 애너모픽 렌즈로 촬영했다. 지방 풍경 장면은 러시아 키렐리아 공화국의 오네가 호수 인근 키시 섬에서 찍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기도 한 이 곳은 과거 목조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 라이트 감독은 배우들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것을 고려해 봤으나 연기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포기했다. 올바른 판단같다.
정부 고위관료의 부인인 안나 카레니나의 마음을 훔친 브론스키 백작을 연기한 애런 존슨. 로버트 패틴슨도 브론스키 백작 역할로 거론됐다.
시머스 맥가비 촬영 감독은 카메라 렌즈를 크리스찬 디올의 스타킹으로 감싸서 촬영했다. 이 방법은 앙리 아르캉 촬영감독이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사용한 방법이다. 앙리 아르캉은 할머니의 스타킹을 사용했다. 이렇게 찍으면 스타킹을 통해 빛이 걸러 지면서 영상이 전체적으로 은은하고 부드럽고, 조명을 받은 인물들의 피부가 환하게 빛난다.
안나 까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저/박형규 역
안나 카레니나 : 블루레이
Joe Wright 감독/키이라 나이틀리 출연/주드 로 출연/Aaron Johnson 출연
안나 카레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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