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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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키친(블루레이)

앤드리아 버로프 감독의 '더 키친'(The Kitchen, 2019년)은 때로는 여성들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갱단의 일원인 남편들이 강도짓을 하다가 체포된 뒤 먹고살기 위해 여성들이 조직을 접수하는 내용이다. 원작은 올리 매스터스와 밍 도일의 그래픽 노블이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3명의 여자가 헬스 키친으로 알려진 뉴욕 맨해튼의 웨스트사이드 지역을 차지하는 과정을 다뤘다. 나약하고 심지어 남편에게 얻어맞으며 죽은 듯 살아가던 여인들이 갑자기 용기가 치솟아 남자들도 못하는 일을 해낸다. 다른 조직과 흥정을 벌여 거대한 공사를 따오기도 하고 정적들을 제압하기도 한다. 언뜻 보면 여성 전사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활약을 펼치는 여성들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처..

에너미 앳 더 게이트(블루레이)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에너미 앳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s, 2001년)는 저격 영화의 정수 같은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구 소련군의 저격수였던 실존 인물 바실리 자이체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15년 첼라빈스크주 에라노마치에서 태어난 자이체프는 우랄 산맥의 산속에서 자라며 어려서부터 사슴 사냥으로 사격 솜씨를 갈고닦았다. 1936년 해군에 입대해 군사경제학교를 나온 뒤 러시아 태평양 함대에서 회계 반장으로 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소전이 발발하자 그는 흑해 함대로 지원해 해군 육전대의 저격수가 됐다. 다시 육군으로 소속이 바뀌어 제284저격사단 산하의 1047저격연대에 배속된 그는 독일군이 쑥대밭을 만든 스탈린그라드에서만 242명을 사살하는 등 종전까지 총..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4K 블루레이)

개인적으로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는 의외의 선물이었다. 조앤 롤링의 원작 소설이 별 감흥이 없어서 영화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는 소설과 달리 의외로 아주 재미있었다. 글만 읽어서는 원작자의 상상력을 쫓아가기 버거웠는데 영화는 이를 눈으로 확인시켜 줬기 때문에 재미가 배가 된 듯 하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Harry Potter and the Chamber of Secrets, 2002년)은 다분히 키치적인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마법학교, 하늘을 나는 빗자루, 괴물 등 유럽의 어린이라면 다들 한번 쯤 그려봤을 만한 공상의 세계다. 이를 우리 관객들도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글로벌 시대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2편은 1편보다 더욱 사악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호..

더 킹(블루레이)

한재림 감독의 '더 킹'(2017년)은 개봉 시점이 지금이라면 논란이 됐을 만한 작품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조사 때문에 정치 검찰 논란이 불거지면서 검찰 개혁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어느 때보다 뜨겁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 검찰 이야기다. 정치권에 줄을 잘 서서 자신들의 입신과 양명을 위해 매진하는 검찰들을 통해 검찰 공화국이 무엇인가 잘 보여주는 영화다. 내용은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된 태수(조인성)가 검찰 내 실세인 선배들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권력의 맛에 취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태수가 권력의 핵심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몸담게 된 극 중 전략부는 검찰의 특수부를 빗댄 부서다. 전략부의 핵심인 한강식(정우성) 부장과 양동철(배성우), 태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블루레이)

에단과 조엘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2007년)를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섬뜩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단발머리의 무표정한 얼굴의 사내가 들고 다니는 공기탱크는 역대 최강의 무기였다. 소리도 없고 불꽃도 없으면서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문짝의 열쇠 틀이 통째로 뽑혀 날아갈 만큼 무시무시한 파워를 과시했다. 이를 사람의 머리에 대고 버튼을 누르면 순식간에 죽는 줄도 모르고 쓰러진다. 어떻게 저런 무기를 생각했을까, 절로 감탄하며 봤는데 알고 보니 거대한 소를 도살할 때 쓰는 도구를 개조한 무기였다. 살인자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의 무표정한 얼굴 또한 공포 그 자체였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에 낮게 깔리는 목소리, 여기에 우스꽝스러운 단발머리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