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전체 글 2635

더 허슬(블루레이): 여성들의 사기극

크리스 에디슨 감독의 '더 허슬'(The Hustle, 2019년)은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애버트와 코스텔로식 코미디 영화다. 뚱뚱이와 홀쭉이의 원조인 애버트와 코스텔로는 상반된 외모와 성격에도 불구하고 콤비를 이뤄 죽이 잘 맞는 희극을 선보였다. 오히려 서로 다른 극단적 외모와 성격의 불균형이 뜻하지 않은 웃음을 유발했다. 이후 애버트와 코스텔로는 불일치의 조화라는 모순된 코미디의 전형을 이룬 셈이다. 이 작품에서 앤 해서웨이와 레벨 윌슨은 애버트와 코스텔로 역할을 한다. 기발한 사기극으로 꽤 많은 돈을 모은 조세핀(앤 해서웨이)은 우연히 만난 초보 사기꾼 페니(레벨)와 짝을 이뤄 부호들을 털기 위한 대형 사기극을 공모한다. 마치 한편의 연극처럼 잘 꾸민 그들의 사기극에 여러 남자들이 걸려들어 돈을 털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블루레이): 끔찍한 젊은날의 기억

사람의 기억이란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거나 과장되는 등 왜곡되기 마련이다. 특히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면 온전한 기억을 간직하기란 쉽지 않다. 리테쉬 바트라 감독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2017년)는 왜곡된 젊은 날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어느 노인이 젊어서 좋아했던 여인의 기억을 되짚어가는 내용이다. 주인공 노인은 가치관 등 여러가지가 여인과 맞지 않아 헤어졌고, 그 여인이 친구와 사귀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바트라 감독은 노인이 기억을 더듬는 과정을 마치 미스터리 소설처럼 수수께끼를 풀 듯 헤쳐 나간다. 아름답고 빛났던 청춘의 한때라고 여겼던 기억의 이면에는 돌이킬 ..

헌터 킬러(블루레이), 잠수함의 공포

잠수함 영화의 특징은 물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소리로 묘사하는 것이다. 어차피 잠수함 밖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육안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상상력과 소리만으로 묘사할 뿐이다. 그렇다 보니 바다속에서 벌어지는 수중전이 마치 육상 전투처럼 폭발과 함께 불꽃이 일어나는 등 시각적 상상력이 총동원된다. 여기에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소리다. 잠수함의 음파 탐지병들이 음파 탐지기인 소너를 통해 들려오는 적 함들의 움직임이나 마치 바람을 가르듯 물속을 헤집고 돌진하는 어뢰의 소리를 과장해서 묘사한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키운 소리와 가상의 영상들이 잠수함 영화의 기본 골격이 된다. 도노반 마시 감독의 '헌터 킬러'(Hunter Killer, 2018년)도 이런 범주에 드는 영화다. 내용은 러시아 장..

강변호텔(블루레이), 홍상수 김민희 이야기를 보다

'강변 호텔'(2018년)은 홍상수 감독의 23번째 장편 영화다. 그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이렇다 할 사건 없이 이상한 대화로 흘러가는 심드렁한 내용이지만 제71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제56회 히혼 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 남우주연상 등 해외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다만 이번 작품이 약간 다른 것은 남녀 간의 강박적 사랑에 목을 맸던 예전 작품들과 달리 한 사람의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죽음에 이르는 여정 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홍 감독의 특징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일반적인 작품이라면 병에 걸리거나 자살로 내몰릴만한 우울한 일들을 겪는 등 인물을 둘러싼 죽음의 징후가 보일 텐데, 이 작품 속 주인공은 그야말로 멀쩡하게 있다가 느닷없이 죽음을 맞는다. 그..

갱스 오브 뉴욕(블루레이)

미국을 상징하는 도시 뉴욕은 그렇게 아름답거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이 아니다. 19세기만 해도 이곳은 미국의 온갖 부조리를 안고 있는 쓰레기장 같은 곳이었다. 가난과 기근을 피해 유럽 각지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은 미국 토박이들과 끊임없는 마찰을 일으켰다.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한다고 생각한 토박이들은 이민자들을 적대적으로 대했다. 이민자들은 이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갱단을 조직하면서 그야말로 19세기 뉴욕은 지옥도를 방불케 하는 무법과 폭력의 아수라장 같은 도시였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만든 '갱스 오브 뉴욕'(Gangs Of New York, 2002년)은 바로 19세기 혼돈의 뉴욕을 다루고 있다. 1928년에 출간된 허버트 애스베리의 원작 소설을 토대로 만든 이 작품은 아일랜드 갱의 후손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