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제목을 가진 블라디미르 보르트코 감독의 '개의 심장'(Sobachye Serdtse, 1988년)은 미하일 불가코프의 유명한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원작 소설은 구 소련 체제에서 탄압을 받아 50여년 동안 제대로 출판이 되지 않았다.
이유는 당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를 은근히 비꼬고 풍자했다는 것.
특히 구 소련 당국은 스탈린에 대한 모독이 들어 있다고 봤다.
아닌게 아니라 누가 봐도 이 작품은 구 소련 체제에 대한 조롱이 여기 저기 들어 있다.
작가는 이를 SF적이면서 블랙 유머를 섞은 내용으로 교묘하게 풀어 냈다.
내용은 떠돌이 개가 사람의 뇌와 생식기를 수술로 이식받고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다.
사람의 외모로 변한 뒤 두 발로 걷고 말도 하게 된 개는 곧 당의 공식적인 자리를 얻어 공무원까지 된다.
하지만 개였을 때는 불쌍하고 순하기만 했던 존재가 사람이 된 뒤 탐욕스럽고 추악한 일면을 드러낸다.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를 수술한 의사는 한마디로 짚어낸다.
"무서운 것은 그가 이제 개의 심장이 아닌 사람의 심장을 가졌다는 사실이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추악한 마음 말일세."
작가는 그만큼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당연히 구 소련 정부에서 좋아할 리 없었다.
1940년 사망한 블가코프의 모든 작품은 출판 금지 됐다.
스탈린 사후 1960년대 작가의 복권과 함께 많은 작품이 출판됐지만 이 작품 만은 예외였다.
결국 이 작품이 다시 빛을 본 것은 1987년 잡지 '즈나미아'에 소개되면서 부터였다.
보르트코 감독은 이듬해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었다.
암울했던 구 소련 체제의 시대적 배경을 살리기 위해 흑백화면의 4 대 3 풀스크린으로 찍었다.
영화는 원작의 소설을 충실하게 따라 사람이 된 개가 겪는 황당한 과정을 그대로 재현했다.
무엇보다 외모조차 사람이 된 개를 연상케 하는 블라디미르 톨로코니코프의 천연덕스런 연기가 눈길을 끈다.
여기에 감독은 가능한 긴 테이크를 통해 배우들의 연기 호흡을 유지하는 절제된 영상으로 메시지 전달을 위한 집중력을 높였다.
그러면서 화자의 시점에 따라 눈높이를 달리 하는 앵글로 영상의 적절한 변화를 꾀했다.
비록 전반부가 늘어지긴 하지만 적절한 영상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로 재기 발랄한 이야기를 충실하게 잘 살렸다.
결국 체제의 부조리와 여기 순응하지 못한 인간성의 말살을 묘사한 이 작품은 공상과학과 코미디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본질은 정치 드라마인 셈이다.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블루레이에 비하면 떨어지지만 그런대로 볼 만 하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전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배급을 기다리며 빵집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 원작 소설을 쓴 미하일 불가코프는 러시아 혁명 이후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 개혁 작업들이 사람들의 삶을 더 황폐하게 만든 현실을 개의 시각으로 풍자했다.
불가코프는 1926년 발표한 이 작품에서 구체적 실명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스탈린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반 소비에트 작가로 규정돼 모든 작품의 출간과 연극 공연이 금지됐다. 영화 속 권력자의 외모도 스탈린을 연상케 한다.
이후 불가코프는 해외 망명을 요청했으나 스탈린이 거부해 1940년 죽을 때까지 러시아에 머물렀다. '개의 심장'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다.
평범한 떠돌이개가 사람이 된 뒤 추악해 진다는 내용을 쓴 불가코프는 1891년 키에프에서 태어났다. 25세때 키에프 의대를 졸업한 뒤 러시아 곳곳을 떠돌며 의사로 일했다. 이후 27세때인 1919년 사회주의 정부와 과거 제정 러시아 시절 귀족들인 백군 사이에 내전이 발발하면서 그는 백군 군위관으로 징집된다.
내전에서 백군이 패배한 뒤 불가코프는 소비에트 체제에 참여해 블라지카프카스 지역의 문학지국 담당자로 일했다. 하지만 일련의 작품들에서 반 소비에트 성향을 보였다는 이유로 1940년 죽을 때까지 모든 작품의 출판이 금지됐다.
불가코프는 의사였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뇌하수체를 개의 뇌하수체에 이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이를 과감히 무시하고 사회를 비판한 정치 소설을 썼다.
왠지 개를 닮은 듯한 외모의 블라디미르 톨로코니코프. 그는 1943년 구 소련의 알마아타에서 태어났다.
작가 겸 감독인 블라디미르 보르트코는 1946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원작자인 불가코프의 고향 키에프에서 자랐고, 상트페테르스부르그에서 살았다.
불가코프는 당시 사회주의 혁명으로 새로 탄생한 사회주의형 인간을 풍자한 이 작품에서 유일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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