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읽었던 업톤 싱클레어의 소설 '정글'은 대단히 재미있으면서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1900년대 초반 미국 시카고의 가축 도축장 풍경을 마치 눈 앞에 펼쳐 놓는 듯 생생하게 묘사한 다큐멘터리 같은 소설이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이, 열악하고 고된 작업 환경 속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고기 분쇄기에 떨어져 소시지가 되는 장면이었다.
항상 사회고발적인 작품을 썼던 싱클레어는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글의 힘을 믿었다.
실제로 그가 쓴 '정글'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미국에서 식품의약품위생법 및 육류검역법을 만드는 단초가 됐다.
지금도 손꼽히는 명작인 이 소설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 2007년)는 바로 업톤 싱클레어의 소설 '오일'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1800년대 말 미국에서 막 유전 개발 붐이 일면서 석유로 부자가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찌보면 석유로 흥한 주인공을 통해 미국 초기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맨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어떻게든 석유를 캐내기 위해 광기에 젖은 주인공은 종교적 열정이 지나친 광신도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앤더슨 감독은 석유자본가와 종교 지도자라는 미국을 지탱한 두 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일반적인 드라마와 달리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여서 큰 흥미를 못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작 이 영화에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이야기의 구성보다 인물이다.
'펀치 드렁크 러브' '부기 나이트' '마스터' '매그놀리아'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언제나 인간의 내면에 천착하기를 좋아하는 앤더슨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과 주변인물들을 통해 주인공의 내면으로 파고 든다.
이 과정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놀라운 연기가 펼쳐진다.
시종일관 돈줄인 석유에 미쳐 광기에 젖은 눈을 번들거리며 폭발하는 듯한 그의 연기는 숨을 멎게 할 만큼 압도적이다.
사실상 이 작품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표현력이 압권이다.
2시간 30분 가량의 상영 시간 동안 다니엘 데이 루이스만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감독의 차분하면서도 절제된 연출 속에 미칠 듯한 욕심과 분노로 점철된 한 인간의 용광로 같은 삶이 녹아서 꿈틀 거리는 작품이다.
1080p 풀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난한 하질이다.
입자감이 두드러져 보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캘리포니아의 황량한 풍경에 잘 어울린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적당한 서라운드를 들려준다.
이번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DVD가 함께 들어 있는 합본팩인데, 부록 역시 동일하다.
사진 자료, 제작과정과 석유이야기 등 다양한 부록들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업톤 싱클레어의 소설 '오일'에서 일부분만 떼어내 영화로 만들었다. 거의 르포르타주에 가까운 싱클레어의 작품이 너무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석유사업은 1859년 에드윈 드레이크가 펜실베이나에서 유정을 파내며 시작됐다. 각 석유회사에서 고용한 지질학자들이 유정을 발굴하면 유정탑을 세우고 시추했다. 극 중 배우들이 뒤집어 쓰는 석유는 초콜릿 밀크세이크 등을 이용해 만든 가짜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아들로 나온 소년 딜론 프리지어는 배우가 아니다. 텍사스의 한 초등학교 학생이다. 다 자란 루이스의 아들 역할은 러셀 하바드가 연기했는데, 그는 실제 청각장애인이다.
석유 매장이 확인되면 회전식 드릴을 내려보내 지층을 뚫은 뒤 니트로글리세린으로 석유가 포함된 사암을 폭파시킨다. 이때 압력이 강하면 유정탑 위로 솟구치기도 한다.
음악은 라디오헤드의 멤버 조니 그린우드가 담당.
텍사스 마르파에서 촬영. 같은 기간 인근에서 코엔 형제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찍었는데, 유정 화재 장면에서 발생한 연기 때문에 코엔 형제의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싱클레어가 '오일'에서 모델로 삼은 인물은 미국의 석유왕 에드워드 도헤니이다. 루이스는 도헤니와 닮아 보이도록 수염을 길렀다.
돈에 눈이 먼 석유자본가 못지 않게 광기에 젖은 종교지도자 역할은 폴 다노가 연기했다. 원래 켈 오닐이 이 역할을 맡았으나 언제나 광적일 정도로 역할에 빠져드는 루이스에게 위협을 느껴 중도에 그만뒀다.
거대 석유회사들은 유정 근처에 작은 마을을 만들어 직원들이 생활하도록 했다. 앤더슨 감독은 영화 산업 초창기에 쓰인 파테 카메라와 43mm 렌즈를 갖고 있는데, 고아가 된 아들을 안고 기차에서 잠이 든 주인공의 모습을 저해상도의 이 카메라로 찍었다.
부자가 된 루이스가 사는 저택은 실제 석유왕 도헤니가 1926년 비벌리힐스에 건설한 그레이스톤 맨션이다. 도헤니는 이 집을 아들 네드에게 1928년 결혼선물로 줬는데, 이듬해 네드는 비서가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비서도 자살했는데, 부인이 둘을 죽였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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