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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그을린 사랑(블루레이)

울프팩 2015. 2. 21. 15:08

때로는 묻어 뒀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을 때, 진실의 무게는 더 없이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Incendies, 2010년)은 그런 영화다.

와이디 무아와드의 희곡을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가상의 중동 국가에서 일어난 일을 다뤘다.

 

어느날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유언장을 집행하는 쌍둥이 남매가 그동안 몰랐던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겪게되는 이야기다.

그 과정은 참으로 무서우면서도 끔찍하고 가슴 아프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자란 아이들의 삶은 행복할까, 과연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의 남은 생은 평온할까 하는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더불어 어머니는 왜 이토록 비극적이고 끔찍한 과거를 굳이 자식들에게 알리려 했을 지 의아하다.

 

하지만 그 답은 명확하다.

역사이기 때문이다.

 

비록 종군 위안부 같은 아픈 역사여도 그런 일들이 여러 곳에서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세상에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이를 해내지 못한 어머니가 남긴 "세상을 등질 수 있도록 나의 시신을 엎어서 나체로 묻어달라"는 유언이 이해가 간다.

 

빌뇌브 감독은 가상의 국가를 설정해 이야기를 풀어갔지만 중동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레바논의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1982년 레바논의 기독교계인 바시르 제마엘 대통령이 폭탄 테러로 암살당한 뒤 팔랑헤당의 기독교 민병대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테러리스트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이스라엘군이 봉쇄하고 있던 이슬람 난민촌 사브라와 샤틸라를 급습해 무차별 학살을 벌였다.

 

민병대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살해한 뒤 죽은 사람들의 가슴에 칼로 십자가를 그렸다.

팔랑헤당의 학살을 방조한 이스라엘은 쉬쉬 했지만 뉴욕타임스 특파원의 보도로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스라엘은 비난을 받았다.

 

명작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http://wolfpack.tistory.com/entry/바시르와-왈츠를-블루레이)이 이 내용을 다뤘다.

이 작품은 '바시르와 왈츠를'처럼 직접적으로 그 사건을 다루고 있지 않지만 분쟁의 틈바구니에 낀 사람들이 겪게 되는 비극을 드라마틱하게 펼쳐 놓았다.

 

특히 빌뇌브 감독은 촘촘한 연출로 모든 장면 하나 하나를 버릴 게 없도록 만들었다.

각 장면들이 강렬한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복선이 된다.

 

그만큼 구성이 치밀하다.

더불어 영화는 문화적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블루레이 부록에 실린 중동 여성들의 인터뷰를 보면 딸이 주인공 어머니처럼 이교도와 사랑에 빠질 경우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모두 하나같이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기 때문에 죽여야 한다. 그것밖에 할 게 없다"는 대답을 진지하게 하는 것을 보면 문화적 간극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 인터뷰를 보면 중동 여성이 아닌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추리극처럼 어머니의 유언장을 따라 가는 과정을 플래시백을 섞어 보여 주며 흥미를 유발하는 점도 칭찬할 만 하다.

참혹한 내용과 충격적인 막판 반전을 갖고 있는 이 작품은 진실은 두 눈 뜨고 역사를 똑바로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의 것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워 준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깔끔한 윤곽선과 선명한 색감이 돋보인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리어 활용도가 좋다.

전투기 굉음 소리가 후방 스피커를 가득 채우며 요란하게 울리는 등 방향감도 확실하다.

 

부록으로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이 한글 자막과 함께 HD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처음 볼 때는 모르지만, 매 장면이 전체 영화의 각 부분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구성이 치밀하다. 초반에 흐르는 노래는 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다. 

이 영화는 공포와 위대한 사랑이 하나가 된 작품이다. 분노와 공포가 낳은 복수의 끝에는 결국 모든 것을 끌어 안는 사랑이 들어 있다. 

캐나다 출신의 드니 빌뇌브 감독은 요르단에 세트를 만들고 이라크 난민 지구 사람들을 캐스팅해서 영화를 찍었다. 

빌뇌브 감독은 4시간에 이르는 원작 연극을 본 뒤 원작 희곡을 쓴 와이디 무아와드를 만나 영화 판권을 샀고, 원작의 내용을 줄이거나 뺀 뒤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 영화를 만들었다. 

원작자 와이디 무아와드는 1968년 레바논에서 태어나 8세때 내전을 피해 프랑스로 이주했다. 이후 캐나다 몬트리올로 건너가 연극 일을 시작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비운의 여주인공은 루브나 아자발이 맡았다. 

영화는 전쟁 중인 모든 나라를 상징하는 가상의 국가가 배경이다. 촬영지인 요르단에는 이라크,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에서 피난 온 수십만 명의 난민들이 살고 있다. 

감독은 이 작품을 "분노에 관한 영화"라고 정의했다. 

블루레이에 실린 중동 난민들의 인터뷰는 영화 내용 만큼이나 충격적이다. 난민촌의 한 팔레스타인 노인은 "유대인과 싸울 아이들을 많이 낳기 위해 7명의 부인을 뒀다"는 대답을 한다. 그만큼 시대와 공간을 관통하는 이들의 증오는 뿌리 깊다. 

또다른 이라크 난민은 "민병대가 조카들인 어린 남매를 납치한 뒤 몸값을 내지 못하자 아이들의 목을 잘라서 쓰레기와 함께 버렸다"는 얘기를 털어 놓는다. 

"엄마를 잘 봐둬라. 나중에 알아볼 수 있도록." "언젠가 너를 꼭 찾을거야." 초반 등장하는 대사는 모녀의 비극을 잉태한 역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분노에 갇혀 있었다. 너도 그 분노를 물려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원작자 와이디 무아와드가 쓴 희곡의 대사다.

그을린사랑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그을린사랑 : 블루레이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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