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뜨거운 것이 좋아 (블루레이)

울프팩 2012. 7. 24. 09:45

빌리 와일더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 1959년)은 무려 53년전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재미있다.
두 명의 악사가 갱단의 살인현장을 목격한 뒤 쫓기면서 살아남기 위해 여장을 하고 여성밴드에 들어가 벌이는 소동을 다뤘다.

스토리를 따라 흘러가며 엎치락 뒤치락 벌어지는 소동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스크루볼 코미디인 이 작품은 2000년 미국영화연구소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코미디 100편 가운데 1위를 했다.
그만큼 각본까지 쓴 빌리 와일더 감독의 연출이 훌륭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인 존재는 마릴린 먼로다.
당시 먼로는 세 번째 남편인 극작가 아더 밀러와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했다.

여기에 로렌스 올리비에와 촬영한 전작인 '왕자와 무희'도 혹평을 받는 등 전체적으로 슬럼프였다.
그런 그를 구제해 준 것이 바로 이 작품이었다.

본인은 단순히 백치미의 섹스심벌로만 취급되는 것을 싫어했지만 그는 백치미의 미녀를 연기한 이 작품 덕택에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다시 화려하게 재기했다.
그 정도로 이 작품 속에서 먼로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먼로 특유의 육감적인 몸매를 흔들며 섹시하게 부르는 노래와 춤을 보면 왜 그가 섹스심벌이었는지 절로 알게 된다.
특히 순진무구한 표정과 토니 커티스를 녹이는 뜨거운 키스 장면 등을 보면 먼로가 갖고 있는 비극성과 선정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봐도 유쾌한 이 작품을 만든 4명의 거장은 이제 세상에 없다.
먼로는 1962년 36세의 나이로 가장 먼저 세상을 떴고 잭 레몬(2001년), 빌리 와일더(2002년)에 이어 토니 커티스마저 2010년 뒤를 이었다.

그러고보니 올해가 먼로 타계 50주년이다.
이 작품은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여배우를 추모하며 다시 보기에 손색없는 명작이다.

1080p 풀HD의 1.66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흑백 영상이어서 화질의 흠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일부 장면에서 지글거림이 보이는 등 화질 편차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괜찮은 화질이다.

음향은 DTS-HD 5.1 채널을 지원하지만 서라운드 효과는 거의 없다.
음성해설과 제작과정 등 다양한 부록이 실려 있지만 한글자막이 전무하다.
심지어 DVD 타이틀에 한글자막이 들어 있던 부록마저 자막이 누락돼 아쉽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뮤지컬적 요소를 도입한 이 작품은 1950년대의 아이콘이었던 마릴린 먼로의 미모와 육감적인 몸매, 춤과 노래 등 진가를 제대로 보여준다. 와일더 감독이 제작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흑백으로 찍은 이유는 남자 배우들의 여자 화장이 너무 어색해 이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여장 연기로 웃음을 선사한 토니 커티스와 잭 레몬. 토니는 2010년 85세 나이로 급성심장마비, 잭 레몬은 2001년 85세 나이로 사망했다.
촬영 당시 먼로는 아더 밀러와 결혼생활이 위기였고 전작의 실패로 슬럼프에 빠져 어려움을 겪었지만 촬영이 끝나면 MGM스튜디오 옆 포모사카페에서 잭 레몬, 토니 커티스 등과 함께 술잔을 자주 기울였다.
갱단의 살인 장면은 알 카포네의 성 발렌타인데이 학살을 연상케 한다.
노래를 잘 부르고 기타를 곧잘 쳤던 먼로는 이 작품에서도 몇 곡을 불렀다. 먼로는 촬영 중 한 줄 짜리 대사를 제대로 못외워 와일더 감독이 여러 곳에 대사를 붙여 놓았다.
잭 레몬과 조 E 브라운 커플이 특히 유쾌한 웃음을 빚어낸다. 당시 의상담당이었던 오리 켈리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았다.
먼로가 부른 노래 중 압권은 연인을 그리워 하며 부르는 'I Wanna Be Loved By You'이다. 뇌쇄적 눈빛과 촉촉한 목소리가 단연 백미다. 먼로가 공개석상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생일 축하파티였다. 그는 거기서 유명한 'Happy Birthday Mr. President'를 불렀다..
해변 장면은 샌디에이고 코로나도 호텔서 촬영. 부록 영상에서 밀려든 사람들때문에 먼로가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먼로는 유명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 극작가 아더 밀러와 결혼 및 이혼을 반복했고 존 F 케네디 대통령 형제와 염문설이 불거진 뒤 1962년 사체로 발견됐다.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이었으나 살해 의심도 끊이지 않고 있다.
먼로와 토니 커티스가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은근히 선정적인 암시로 가득차 있다. 세간에는 토니 커티스가 "먼로와 키스하는 것이 히틀러와 키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부록을 보면 토니 커티스는 "먼로가 키스를 하며 자극해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고 말한다.
여장과 남장을 오가며 연기한 커티스는 당시 여자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여장 장면에서 다른 성우가 더빙을 했다.
두 연주자가 여장을 하고 여성 밴드에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는 독일의 '사랑의 팡파레'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본명이 노마 진인 먼로의 삶은 불행했다. 1942년 16세 나이에 첫 결혼을 했고, 먹고 살기 위해 49년 달력용 누드 사진을 찍었다. 배우가 됐을 때 이 점이 문제되자 그는 어려웠던 삶을 얘기해 오히려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그때부터 먼로는 동정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냈다. 조 디마지오와 결혼 직후인 54년 일본으로 신혼 여행을 갔을 때 한국에도 4일간 들려 주한미군을 위문하기도 했다.
막판 백만장자의 청혼에 당황한 잭 레몬이 남자라는 사실을 밝히자 백만장자가 "그래도 좋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장면은 절로 웃음이 터지게 나오는 명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