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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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플린트

울프팩 2012. 7. 22. 14:52
래리 플린트만큼 미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인물도 드물다.
그는 '플레이보이'와 쌍벽을 이루는 도색잡지 '허슬러'를 창간해 억만장자가 됐고,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과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갔으며 콘돔 착용에 반대하고 숱한 포르노 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그를 정말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미국의 저명한 목사 제리 폴웰과 벌인 법정 다툼이다.
그는 허슬러지에 폴웰 목사가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내용과 함께 '패러디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라'는 문구를 넣은 술 광고를 게재했다.

이에 분노한 폴웰 목사는 명예훼손 혐의로 플린트를 고소했고, 대법원까지 가는 싸움 끝에 법정은 플린트의 손을 들어 줬다.
이유는 수정헌법 1조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 때문이다.

당시 미국 대법원은 "공무원이나 공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에 대한 풍자는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유명한 이 사건은 언론관련법을 배울 때 반드시 나오는 사례로, 대학원 수업때 들은 기억이 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아마데우스' 등 명작을 만든 체코출신 밀로스 포먼 감독이 래리 플린트를 소재로 만든 영화가 '래리 플린트'(The People vs. Larry Flynt, 1996년)이다.
래리 플린트가 도색잡지를 창간하고 프리섹스 주의자이며 실제로 부인과 함께 혼교 등 난잡한 성생활을 즐긴 인물이니 영화도 야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화는 관련된 내용들을 언급하지만 야한 장면 보다는 플린트가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제도에 맞서 싸운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플린트는 돈벌이를 위해 허슬러를 만들었지만 표현의 자유에 꽤나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포먼 감독이 그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 이유도 바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지 공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논리정연하고 때로는 허를 찌르는 플린트의 대사를 들어보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 많다.

예를 들어, 유해성 논란 때문에 허슬러 판매금지 움직임이 일자 플린트는 법정에서 "애들이 술집에서 술 마사다가 걸린다고 술을 판매금지 시키진 않는다"는 말로 일침을 놓는다.
또 "음란물이 싫다면 내게 불평하지 말고 사람의 성기를 만든 창조주에게 하라" "섹스 행위는 불법이 아닌데 왜 그런 사진은 불법이냐" "진짜 외설은 성을 추잡하고 죄악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 등 주옥같은 대사들이 많다.

그 중에 압권은 "나 같은 쓰레기가 헌법의 보호를 받는다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보호받을 것"이란 말이다.
왜 수정 헌법 1조가 미국 헌법의 정신을 대표하는 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사다.

플린트의 삶과 기행은 쉽게 납득이 안되지만 그가 주장한 표현의 자유는 여러가지로 공감이 가는 작품이다.
특히 명예훼손을 과하게 적용해 외국 언론에서 문제로 지적하는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생각의 전환을 위해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이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샤프니스와 색감이 떨어지지만, 극장 개봉시 삭제된 영상이 추가돼 반갑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한다.
부록으로 제작과정, 2편의 음성해설, 삭제장면, 래리 플린트 인물소개 등 다양한 내용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우디 해럴슨이 연기한 래리 플린트.

플린트는 어려서 흙바닥으로 된 집에서 살만큼 극빈층이었다. 그는 아이 때부터 밀주사업으로 돈을 모았고 이 돈으로 나중에 술집을 운영한다.

플린트는 71년 오하이오에 6개의 비키니클럽을 소유했으며, 클럽 댄서들을 소개하는 소식지를 발행했다. 이 소식지를 모태로 1974년 7월 '허슬러'를 창간해 1억달러 이상을 벌었다.

래리 플린트의 동생 지미 역은 우디 해럴슨의 친동생인 브렛 해럴슨이 연기. 플린트는 허슬러에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이었던 재클린 오나시스의 누드를 게재해 판매부수가 2배로 뛰면서 떼돈을 벌었다.

중간에 판사로 나오는 인물이 실제 래리 플린트. 그는 제리 폴웰 목사와 3년간 재판을 벌였다.

변호사로 나온 에드워드 노튼. 당시 그는 무명이었다. 노튼이 맡은 변호사는 실제 플린트가 고용했던 여러 명의 변호사를 하나로 합친 인물이다. 미국은 주 마다 법이 달라 여러 주에서 재판이 열릴 경우 여러 명의 변호사를 고용해야 한다.

플린트가 아주 사랑한 부인 앨시아 역은 록밴드 홀의 멤버이자 사망한 너르바나의 보컬 커트 코베인의 부인이었던 코트니 러브가 맡았다. 코트니 러브는 이 작품을 찍으면서 에드워드 노튼과 연인이 됐고, 촬영 후 헤어졌다.

코트니는 마약 전과 때문에 제작사에서 반대했으나 포먼 감독이 강행했다. 플린트의 부인 앨시아는 플린트처럼 자유섹스주의자였다.

플린트는 1983년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출마했으나 재판 때문에 교도소에 수감되며 중도하차했다. 이 장면은 강한 미국을 상징하는 인물인 조지 패튼 장군을 다룬 '패튼대전차군단'에서 패튼의 연설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플린트는 재판을 받고 나오다가 변호사 진 리브즈와 함께 저격을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플린트는 전동 휠체어를 싫어해 누군가 밀어주는 금도금한 수동 휠체어를 탄다. 그는 재판 당시 성조기로 만든 기저귀를 차고 나오고 판사에게 오렌지를 던져 화제가 됐다.

부인 앨시아는 남편이 다친 뒤 진통제를 놓아주다가 마약과 알코올에 빠졌으며, 훗날 마약주사 바늘로 추정되는 경로를 통해 에이즈에 감염됐다. 앨시아는 1987년 약물 중독으로 죽었고, 플린트는 영화 개봉 후 1년 뒤 개인 간호사였던 리즈 배리오스와 재혼했다.

영화 속 래리의 집은 실제 플린트가 살았던 집이다.

플린트의 기행 중에는 한국과 관련있는 일도 있다. 그는 1983년 KAL 007편이 캄차카반도의 구 소련 영공에 들어섰다가 구 소련 전투기에게 격추됐을 때 우익의 음모를 주장하며 전용기로 실제 비행경로를 날아보겠다고 알래스카까지 날아갔다. 그러나 알래스카에서 미군의 발포로 강제착륙당했다.